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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폭염 속에서 펭귄을 생각하는 매미, 김완수 이야기

편집국장 공인배

그는 치열하다.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열정으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미'다.

프롤로그

칠월 중순, 도심 한복판 주택가에 더부살이 하듯 드문드문 선 나무들 사이에서 매미들이 목 놓아 짝을 찾고 있다. 골목골목 집과 집 사이를 가득 메운 이 소리는 그러나 매미 아닌 존재들의 관심 밖에서 울린다.

앵앵앵 앵.. 그 소리가 작지 않은데 어떤 이에게는 소음에 불과할 뿐이며 어떤 이는 아예 듣지도 못한다. 그 사연이나 뜻을 아는 이에게도 매미가 더 이상 여름의 진객이 아니다. 때가 되면 찾아와 거기에서 온 몸을 한껏 부풀리고 떨다가 때가 오면 또 떠날 것이다.

그들은 그 짧은 기간을 오직 울림을 위해 극한 순간까지 몸에 압력을 가하며 스스로를 밀어붙이지만, 다른 존재들은 그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매미에게나 다른 존재들에게나 폭염은 위협적이다.

매미는 더 절박해진다. 땅속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숨지거나 날짐승들에게 잡아먹히거나, 바로 옆에서 사라져간 동족들을 생각하면 또 다급해진다. 이 열기에 온 몸의 수분이 모두 증발하기 전에 짝을 만나야 한다. 어떤 불볕이라도 견디어내는 불멸의 화신들을 영속시켜 나가야 한다.

다른 존재들은 매미처럼 무모하지 않았다. 피서를 가고, 고통은 멀리하며 피했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았기에 매미에게는 까마득한 시간을 살 수 있었다. 유약하지만 매미는 알 수 없는 계절들을 즐기며 매미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삶을 살아갔다.

그래서 그들은 오만했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종 보전'이라는 숙명도 따르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은 저절로 굴러가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의 사연 따위에 관심 없는 그들은 도시에서 마구 벌목하고 필요한 만큼만 심어두었다.

매미들의 세상은 그만큼 더 좁아졌다. 매미들의 삶은 더 치열해졌다. 그러나 무심한 시간은 흐르고 무위의 태양이 비추는 가운데, 물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만물을 생장시켰고 생명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연대와 공존의 법칙을 따랐다. 다른 존재들만이 그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늘이 전부인 사나이

김완수는 시끄러웠다. 열정이 넘쳤고 전하려는 말이 많았다.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지구의 극지점을 수차례 오갈 수 있었으며 오늘과 내일을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내일은 너무 앞서갔다.

그의 구상은 다른 이들이 발맞추기 어려웠고, 오늘 안에서는 실현하기가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하면 됩니다. 우리 익산도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전제가 깔려있는 그의 말이었지만, 그는 상상하는 방법이 달랐다.

다른 존재들에게 그의 언어는 잘 전달되지 않았고, 소음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던진 내일에 대한 구상을 현실 속에서 펼쳐 보이려고 애쓴다. 사재를 털고 발품을 팔아서 뜻을 모으는 일에 여념이 없다.

그 결실들이 사리사욕을 채워주진 않겠지만, 그는 다른 이들에게 그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동심을 지녔다.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삶의 가치라고 여기는, 앞서가는 사람의 마음은 그러한 것일까.

고난도 기꺼이 감수했다. 익산시장이 독단적으로 서동축제 예산을 전면 삭감했을 때, 김완수는 분연히 일어나 시민들로부터 문화향유권을 박탈할 권한이 시장에게는 없다고 부르짖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동축제를 민간에서 추진하겠다며, 축제 명칭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하는 익산시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굽히지 않고 금마지역 주민 일단을 전면에서 이끄는 그의 사업장을, 익산시 공무원들이 덮쳤다. 들이치는 빗물을 막기 위해 달아낸 처마까지 트집 잡고 철거를 요구했다. 익산시장의 문제적 언행들을 규탄한 내용 일부를 적출해 사법기관에 고발도 했다.

본래 정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런 익산시장의 전횡과 독단에 저항하며 시민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와중에 그는 천년고도 익산을 재발견하게 됐다. 지역에 어마어마한 가치의 관광상품들이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간에서 축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우기 위해 유적지와 익산 구석구석을 누비고 사료들을 뒤지다가 당도한 지점이었다.

"익산에는 4대 종교의 성지가 다 모여 있어요. 나바위 성당이 있고, 원불교 총부가 있고, 미륵사지가 있고, 두동교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예루살렘인 거예요. 이걸 잘 꿰어서 조명하면 한 해에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겁니다."

신명난 그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 "더 놀라운 일이 있어요. 익산에는 4대 보물도 있어요. 미륵사지 석탑이 있고, 나라의 위기마다 땀 흘리는 석불좌상이 있고, 심곡사 금동불감·아미타여래 칠존좌상이 있고, 관음사 목탑 입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선택받은 땅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산들이 잠자고 있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김완수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익산의 유적과 유물들을 교과서에 소개하는 운동을 전개, 국사편찬위원회의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냈고, 지금은 서동축제가 열리는 서동공원 주변의 공수부대 이전운동을 이끌고 있다. 서동공원과 군부대 사이의 금마 저수지가 한반도 모양이라는 점을 착안한 여러 개발 방안도 전파하고 있다.

에필로그

김완수는 극지방 여행가이자 펭귄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주로 펭귄을 카메라에 담아와 엽서도 만들고 익산을 홍보하는 달력도 만들어 보급했다. 펭귄 사진은 지구촌 전역에 걸려있지만, 일곱 차례나 남극을 왕래하며 자신이 찍은 사진 속 펭귄의 다양한 표정과 행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크다.

저절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김완수의 사진들은 여러 나라의 관심을 끌었고, 조만간 도판본 책이 발간되어 팔려나갈 예정이다. 그는 이 수익금을 익산에 설립한 펭귄문화재단에 기부해 재단 소속 10개 공연단체의 펭귄 스토리 공연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또 세계 최초의 펭귄박물관 건립을 구상중인데, 제주도와 성남시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 '펭귄' 관련 관광산업으로 연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다.

그가 보유한 펭귄 사진과 탐험 장비들은 700여 점에 이른다. 남극 최초의 탐험가 아문젠 박물관에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물관 전시자료 규모 면에서 매머드급이라 할 만 하다. 그는 또 세계 100여 곳을 여행하며 수집한 펭귄 관련 작품과 상품들을 함께 선보이려고 한다.

김완수는 본래 농기계를 자체 개발하고 생산·판매하는 회사의 대표다. 그가 어느 날 펭귄에게 사로잡혀 극지방을 안방 드나들 듯 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들끓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또 어느 날 백제 문화도시 익산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올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는 치열하다.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열정으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미'다. 매미란 결국 사랑을 찾는 일에 전부를 거는 존재이기에. 열정의 본말이란 '곧 사랑'이기에. 무모하리만치 치열한 그가 이 뙤약볕 아래서 그와 같은 이를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