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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2-06-27 09: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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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 #13. 길, 철인동 길
▲ 폭발사고로 주저앉은 철인동 판자촌은 서울 가는 대로에 밀려나고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익산대로 변 성모간호전문학원(과거 공용터미널이 있던 곳)

 


익산의 남북을 가르는 익산대로(시외버스 터미널-함열) 이리역 앞 길이 끝났던 곳

 

1977년 발생한 이리역 폭발사고는 역세권의 모습뿐만 아니라 지도를 바꿔놓았다.

"닥지닥지 붙어있던 판잣집들이 폭삭 주저앉았어. 한순간에 평지로 변해 버린 거야"

김영규 회장이 익산대로 변에 있는 원광지역자활센터 앞에 서서 손약국 사거리 쪽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저 쪽이 공용버스 정류장이었는데" 김 회장이 건너편에 있는 성모간호전문학원을 가리켰다.

"폭발사고 전에는 여기에서 우마차 길이 끝났어. 여기서부터 저쪽은" 하면서 김 회장의 손바닥이 북쪽 허공을 횡으로 쓸었다.

"다 판자촌이었어. 철인동이라고 불리는 동네였지. 그때는 이리역이 철인동에 소재했던 거야" 익산대로는 북쪽으로 완만하게 언덕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언덕 왼쪽 옆으로는 폭발사고 이후에 지어진 덩치 큰 상가건물 두 동이 나란히 서 있다.

 


창인동 매춘골목으로 유인하는 여인숙 간판

 

오른쪽 옆으로는 박물관에 있어야 할 여인숙이 골목 안쪽에 개미집처럼 자리 잡고 매음굴로 잔존하고 있다.

"역을 등지고 섰을 때 왼쪽 철인동 저기 손약국 사거리 언저리까지 언덕배기에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에 길이 난 거야"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익산대로가 건설되기 전 이곳은 서민들이 사는 동네였다.

이리역 폭발사고는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골목만을 허용하고 석류알처럼 박혀있던 가옥들을 단숨에 밀어버린 것이다.

판판하게 변한 그 위에서 익산대로 건설을 구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으리라.

6,042동의 가옥이 부서지고 780동이 절반 정도 부서졌으며 811 동의 가옥이 전부 파괴됐다고 하니 철인동의 판잣집이 수백 동에 달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폭발사고 뒤에 사람들이 쉰아홉명이 죽었다고 발표했는데, 사실은 그 다섯 배는 되지 않았겠나, 아무리 못해도 세배는 됐을 거야"

 


남성여고 정문이 있었던 이불 할인마트와 구 소정형외과 건물 사이 골목

 


폭발사고 직전까지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이뤘던 집창촌(철인동) 자리

 

이름 없는 사람들의 마을

 

앞서 걷던 김 회장이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다.

그는 놀라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때 여기저기에서 흘러든 몸 파는 여자들은 대개 주민등록이 없었어. 죽었어도 신원을 알 수 없었고, 난리통이라 사망자 수에도 끼지 못한 채 처리됐겠지"한다.

철인동이 치외법권 지역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역 폭발사고는 치안이 확립되지 않고 행정력이 현장에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어수선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던가 보다.

언뜻 계산해 보니 폭발사고가 났던 1977년은 이 겨레가 전쟁을 겪은 지 불과 27년이 지난 시기였다.

"보상도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타다 남은 돈 조각이라도 있어야 얼마라도 보상을 받지. 무조건 내가 얼마를 갖고 있었네 하면 그걸 보상해 주나. 집도 건축물대장이 있어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고개를 들어 창인 주공아파트를 바라본다.

박정희 정부의 '새 이리 건설 계획'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노후된 건물은 여전히 그 날 이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재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꽤 되었다.

이제 완전히 과거를 지울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

김 회장은 철인동과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창인 주공아파트 앞에 한참 동안을 서서 그때 사고 상황 얘기를 했다.

그의 뇌리에 뿌리내린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모순이 그를 오랫동안 괴롭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철인동에는 집주인들이 살지 않았어. 대부분 부초 같은 사람들이 세를 들어 살았지. 폭발사고로 죽은 사람은 개죽음을 당한 것이고, 산 사람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거지. 그때만 해도 진짜 어리숙했어"

우리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42년 전까지 판잣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는 언덕은 대로로 변해있고 그 위로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건너편 동쪽에서는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에서 중앙시장을 경유한 '중앙로 1'이 익산대로와 교차하며 모현육교(고현로 14)로 곧게 들어온다.

남쪽에서는 익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익산역을 경유한 4차선 익산대로가 서울을 향해 뻗어있다.

이 길들은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에 건설된 길들이다.

김 회장에 따르면, 오래된 길은 남동쪽 영정통에서 북진한 '중앙로 1'과 이곳 손약국 사거리에서 이리여고 후문을 경유해 선화로에 합류하는 '익산대로 26'이다.

이 영정통 길과 학교길은 이리역 폭발사고 이전까지는 시내에 있던 남북로였다.

우리는 익산대로 동쪽으로 넘어간다.

철인동 옆에 있던 남성여고와 그 주변을 답사해보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손약국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200여보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계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희망터널을 오가며 무엇을 희망했을까

 


김영규 회장이 익산대로 밑으로 뚫린 굴(희망터널)을 가리키고 있다.

 


 


 


벽화로 단장한 희망터널(익산대로 28길)

 

표고차가 4m 정도 되는 아래쪽에 굴이 있다.

익산대로 아래로 뚫린 '희망터널'이다.

터널 동쪽으로는 가파른 언덕길이 이리여고 뒷길(익산대로 26)과 교차한 뒤 중앙시장 북쪽 입구 쪽으로 흘러내려간다.

터널 건너편 서쪽에는 철길 주변 마을이 있다.

우리는 벽화로 화사하게 단장한 터널을 건넜다.

 


 


 


 


이리역 폭발사고에도 무너지지 않은 주택들

 

100여보 쯤 되는 터널에서 철길 변까지의 도로 양측에는 주택들이 조밀하게 들어차 있다.

그중에는 이리역 폭발사고에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며 세월을 잊은 건물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희망터널과 철길 사이의 마을길

 

철도변 자투리땅은 누군가에 의해 갈려 씨 뿌릴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허름한 가옥의 벽과 거기에 걸려있는 '월세방 있음'이라는 팻말은 우리를 단숨에 과거로 옮겨놓는 시간여행의 풍경인데, 영어로 쓴 웰컴이라는 팻말이 그 옆에 붙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터널 쪽으로 되돌아와 터널 옆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익산대로로 올라가 남쪽으로 몇 발짝 걸어간다.

 


남중연립 진입로 변의 지붕 높은 적벽돌 집

 


서초등학교 버스정류장 옆 남중연립 진입로

 

김 회장이 몸을 돌려 서초등학교 북측 담장 아래를 바라보며 선다. "여기에 원래 길이 있었는데 학교 부지에 포함되면서 길이 사라져 버렸어" 한다.

덩달아 밀려든 의미 모를 상실감을 털어내듯 몸을 털며 바쁜 듯 움직인다.

서초등학교 버스정류장과 이불 할인마트 사잇길로 들어간다.

 


중앙시장을 경유해 북쪽으로 뚫리는 '익산대로 22길'과 남동쪽으로 영정통과 연결되는 '중앙로 1길'

 


익산역을 경유하며 남쪽으로 뚫린 익산대로

 


이리여고를 경유해 선화로에 합류하는 '익산대로 26길'

 

구 소정형외과 뒤쪽에 남성여고 정문이 있었다는 김 회장의 말을 따라온 곳이다.

50여보 쯤 되는 막다른 길 오른쪽에는 남중 연립이 있고, 길 안쪽에는 오래되었지만 품격이 있는 지붕 높은 벽돌집들이 줄이어 서 있다.

김 회장은 구 남성여고 정문께에서 "남성여고가 옮겨가게 된 것은 철인동에 형성돼 있던 집창촌 때문이었을 거야" 한다.

"짓궂은 사람들이 여학생들에게 '넌 좋겠다 졸업하면 취업할 곳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하고 놀려대곤 했으니까"

 


모현동 이편한세상아파트 옆을 지나는 '고현로 14길'(모현육교)

 

글 공인배·사진 송승욱 기자


19-04-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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