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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다가 잘 죽은 인생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국제 NGO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누군가 필자에게 당신은 어떠한 삶이 아름다운 삶이냐 물어 온다면 ‘잘 살다가 잘 죽은 인생’이라 말하고 싶다. 물론 잘 사는 것도 수없이 많고 잘 죽는 것도 여러 가지의 면이 있겠지만 대체로 그리 말하고 싶다.

사람은 어떠한 삶을 원할까?

대체로 사람은 누구든지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기를 원한다. 건강식품이나 운동기구들이 미디어에 엄청나게 소개되고 있다. 지자체에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산책로를 만들고 운동할 수 있는 장소도 개발하고 있다. 필자도 아침 5시면 어김없이 중앙초등학교로 향한다. 산책하며 철봉 대에 매달리기도 하고 걷는다. 익산시 오산면에 위치한 만경강 목천지구 파크골프장에 가면 수많은 6~70대의 남녀들이 파크골프(Park Golf)를 즐기고 있다. 파크골프는 공원에서 하는 골프로 주로 도심지 가까운 천변의 공원에서 즐기는 스포츠이다. 왜 그럴까?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이다.

또한, 부귀와 지위를 갖고 살다 죽기를 원한다. 이는 풍족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남보다 재산이 풍족하고 자위가 높이 있다가 죽었다고 그 사람이 잘 살다 잘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절대 NO다. 이유가 뭘까? 저승은 재산이나 지위를 가져갈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재산을 어떻게 할까?

전부 소비해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던, 남에게 베풀던, 국가·사회에 기증해서라도 모두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게 뭘까? 그것은 저승을 편안히 다녀올 수 있는 법, 말이다. 매일 사람들이 죽음을 맞아 가지만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법은 복(福)이다. 복은 저승 갈 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저승에서 받아 줄 재산이 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복 장만을 많이 할수록 저승길이 편안하고 저승에서 잘 살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승에서 모았던 재산을 어떻게 소비해야 복을 많이 장만할까. 정답은 뻔하다. 많은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한두 사람에게 주는 복은 그만큼 적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잘 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첫째,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람은 가정·직장·사회·국가 속에서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무리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는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일하고, 바르게 행동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즉,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왜 그럴까? 우주에는 하늘의 길(天道)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길(人道)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복을 많이 장만하며 사는 사람이다. 각자의 땀 흘린 노력의 대가로 모아 온 자산을 억울하겠지만 자기는 물론 사회나 국가·세계에 베풀어야 복이 쌓인다. 복은 유산을 만들어 내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유산에는 생활을 풍족하게 주는 물질적인 것과 마음의 양식으로 물려받은 예수님, 부처님, 소태산 대종사님 등 성자들의 교훈을 생활에 활용함으로써 우리도 우리 자손에 물려줄 정신의 유산이 있다.

셋째, 밝은 눈과 밝은 귀를 가져야 한다. 이는 세상에 살되 세상에 풍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밝은 눈과 밝은 귀를 가진 사람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밝은 눈은 먼저 자신의 결점을 바르게 발견할 수 있다. 밝은 귀는 남의 충고를 바르게 들어 자기의 결점을 고칠 수 있다. 이러한 밝은 눈과 귀는 험난하고 거친 파도와 같은 세상의 강을 잘 건 널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자기가 자기 결점을 발견치 못하고 자존심만 내세우고, 내가 최고라 생각하여 남의 충고까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어찌 잘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을 가질 수 있겠는가? 엄청난 재색명리(財色名利)가 펼쳐진 유혹의 세상에 살면서 밝은 눈 밝은 귀를 갖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고 어렵다. 이는 꾸준한 기도의 생활과 참회 생활에서 얻어진다.
 
그럼 잘 죽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죽을 자리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을 용기가 백번 있는 사람은 죽지 못해도 한 번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있다」란 말이 있다. 우리 주위에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사람이 있고, 죽었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살아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기의 일을 못한 사람이다. 「죽어 살은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마친 사람이다. 원불교 교리 중 솔성 요론 13~14장에 보면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하고,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죽을 자리에 서 잘 죽고, 살 자리에서 잘 살 수 있는 힘을 갖추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이다.

둘째, 애착(愛着) 없이 죽는 사람이다. 아무리 잘 살았어도 죽음에 임해서 주위의 인연을 잊지 못하거나 자기가 하던 일에 끌리는 것이다. 애착은 죽음의 길을 방황하게 한다. 그래서 수행 인들이 그 어려운 생사해탈을 기원하고 노력하지 않는가. 생사해탈(生死解脫)이란 곧 죽음을 당하여 한 마음 잘 챙겨 온전한 마음으로 떠나는 뜻이다. 애착의 인연에는 선연보다 악연이 더 무섭다고 했다. 악연을 맺지 않는 데는 평소 감사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악연은 먼 곳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성자들께서 「잘 죽으면 잘 낳는다」고 하신 이유가 있다. 죽음은 곧 새 세상의 새 생명을 얻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도 없는 세월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아침에 해 뜨면 저녁에 해가 사라지지 않고 또 새로운 아침에 되면 해가 솟는다. 봄이 오고 여름, 가을, 겨울이 되면 계절이 없어지지 않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오면 봄이 어디선가 부르지 않아도 온다. 이게 세상의 진리이고 이치다. 인간 세상도 그와 같다. 그런데 어느 때 어느 곳인들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모두 잘 살고, 잘 죽고, 잘 낳아 영겁(永劫)을 한결같이 살 수 있는 인생이 되자.


24-06-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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