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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우리 속담에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각(一刻), 즉 15분이 삼 년의 세월같이 여겨진다”라는 뜻입니다. 기다리는 마음이 매우 간절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시간도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간절히 기다릴 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 가는지 모릅니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낸 기준입니다. 지나온 날들과 년 수는 달력의 표시로 구분되지만, 본래 무한 시간의 흐름이 있을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달력과 같은 무심히 흘러가는 의미의 시간을 크로노스(cronos)로, 어떤 사건이나 중요한 일의 발생과 성취 등을 상징하는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장 8절)며 시간의 본질에 대해 말합니다. 즉 날은 하루에 불과하지만, 하루가 천년의 길이를 갖추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하루지만 10~20대의 하루와 3~40대의 하루와 5~60대 그리고 70대의 하루는 그 각각이 완전히 다른 길이를 갖습니다. 또 나이뿐 아니라, 자신의 지위에 따라서도 그 길이는 달라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시간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잴 수 있습니다. 카운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신비는 분석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에 관해서 많은 연구를 했던 성 어거스틴은 시간의 신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늘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자세가 있다고 봅니다. 어려움을 스스로 길게 느끼거나 짧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어려움의 시간을 줄입니다.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때 지금 받는 어려움은 지나가는 한순간에 불과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의로운 이야기는 하루가 천 년의 이야기로 길어지지 않을까요? 한 학생이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에게 상담실로 오라는 쪽지를 받았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상담실에 가서 앉았습니다. “넌 손톱을 곧잘 물어뜯더구나.” 사실 자기는 신경과민이었고 그래서 손톱을 물어뜯곤 했다고 합니다. “너는 아름답고 특별한 아이야. 손도 정말 예쁘지. 너는 그 손으로 많은 사람을 어루만지게 될 거야.”

그리고 선생님은 손가락을 하나씩 잡아 들쭉날쭉한 손톱 끝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향긋한 로션을 양손에 발라주었습니다. 그는 부푼 가슴으로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으며 그곳을 나왔습니다. 신기한 것은 늘 야단을 듣고도 고칠 수 없었던 버릇이었는데, 그날 이후 다시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음악가가 되었고 악기를 연주하며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이따금 자기를 비하하는 동료를 껴안으면서 말합니다. “당신의 삶은 중요해요. 당신만이 줄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을 지녔어요.” 동료는 그 말을 생각하며 이겨 나갑니다. 상담 선생님의 하루의 아름다운 행위가 놀라운 이야기로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꽃 피우고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천 년간….

우리들의 하루는 이처럼 천년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천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의 하루를 길게 늘이십시다. 하루는 24시간이 아닙니다. 하루는 우리가 얼마든지 길게 늘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길게 늘릴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평생 세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인가? 그대에게 가장 값진 시간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는 정답까지도 말해 줍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그대와 함께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이다. 가장 값진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시인은 하루의 중요성을 노래합니다. 신비인 오늘은 영원과 이어져 있기에 지금 나는 영원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인생이 얼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가 내게 가장 큰 선물임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그 마음으로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3-11-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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