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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복순


윤약국 약사

윤복순

 

사모님이 또 잣을 보냈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한 동안은 사모님께 전화 드리는 것이 쉽지 않아 몇 번을 망설이다 전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가슴이 먹먹한 것까지 다 없어지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지낸지는 근 40년이 되어 간다. 남편이 합참본부에 근무할 때 같은 사무실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 당시 남편이 제일 막내였다. 과장님을 중심으로 네 가족이 뭉쳤다. 모두 집이 서울이고 우리만 익산이다.

사모님과 나는 띠 동갑이다. 큰 언니처럼 잘 챙겨주셨다. 나는 애들이 어리고 주말부부고 시골에 살다보니 서울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사모님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당신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당신 집에서 우리 부부를 재우고 경복궁 창덕궁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청계천 국립미술관 박물관 등을 구경시켜 주셨다. 촌 여자인 내가 출세할 수 있었다.

강화도 용인 양평 수안보 수도권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난 빈손으로 갔다. 사모님과 서울 사는 회원들이 아침저녁 먹을 반찬이며 식사 준비를 다 해왔다. 지방 산다는 핑계로 대접받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도 일지회 회원들을 우리 집으로 불렀다. 전라도 구경하기다. 대아리 저수지길, 백양사, 부안 순창 정읍 심포의 조개잡이 고창 등을 다녔다. 고창의 어느 야산에서 고사리를 뜯을 수 있었다. 그 뒤로 2~3년 고사리여행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근무지가 달라졌어도 1년에 두어 번은 만났다. 그 사이 진급도 하고 자식들이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손자들이 생기고 좋은 일이 많았다. 회비 외에 찬조금이 쌓여갔다. 그런 사이 퇴직을 하게 되었다. 해외여행도 여러 번 했다.

어느 해 중국 여행 때다. 길거리 상인들이 마구 따라다니며 이것 사라 저것 사라 귀찮게 할 때다. 어린 아이가 잣을 가지고 와 사라고 했다. 그 당시 중국 것은 가짜라는 인식이 많을 때여서 거의 사지 않았다. 다섯 봉에 만원이라고 했다가 차가 떠날 때쯤에 여덟 봉 아홉 봉을 주기도 했다.

하도 안 사니까 맛보기로 조금씩 주었다. 고소하니 좋다. 사모님이 친정이 가평이라 잣은 잘 아는데 잘 말린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살림을 못하니 고수들이 좋다고 하면 백 프로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일행들 보다 두 배는 샀을 것이다. 이때 사모님이 내가 잣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남편이 퇴직하고 포도농사를 하니 매년 출하가 끝나는 10월이면 농장으로 그들을 불렀다. 우리는 가을 하늘만큼이나 웃음소리가 컸고 살아오면서 이런 인연 만난 것은 행운이라며 덕담을 나눴고 실로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돌아가는 차에 포도가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싣고 갔다.

4~5년 전이다. 어느 날에 포도밭에 내려오시는지 전화를 드렸다. 올해는 못 내려갈 것 같다고 했다. 여름 여행 때 집을 손봐야 할 것 같다고 했기에 그런 줄 알았다. 오래된 주택이라 이번 참에 원룸으로 바꿀까 한다고 사모님이 그러셨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총무한테 청천병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과장님이 뇌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보훈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했다. 포도밭에 못 오신다고 했을 때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때고 예후가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똑 같다고 했다.

문병을 갔다. 과장님이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테니스를 같이 치고 등산을 하고 여행을 같이한 시간들이 스쳐가며 눈물이 확 쏟아졌는데 쉬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말도 기억도 웃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의술이 좋으니까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계속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좋아지지 않았고 말소리는 조금씩 어눌해져 갔다. 과장님과 통화는 남편이 사모님과 통화는 내가 했다. 사모님을 어려움을 표시내지 않으려 항상 밝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모두들 조금씩 소원해졌다. 나는 마스크 때문에 지쳐갔고 아들딸도 내려오지 못하는 때라 과장님 면회는 상상도 못했다. 사모님께 전화도 못 드렸다.

작년 10월 과장님이 많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뇌암의 말기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모님도 면회를 못한다고 했다. 너무너무 통증이 심한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가 볼 수도 없고 뭐라 위로드릴 수도 없고, 무슨 말이 이런 상황에서 힘이 되겠는가. 마지막을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같이 하지 못하니 최악의 순간이다.

이렇게 지난 1월 과장님이 가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화기만 들었다 놓았다 여러 번 했다. 남편이 조문을 갔을 때 사모님은 코로나로 격리 중이라 장례예식장에도 못 나오셔 만나 뵙지 못하고 왔다.

먼 길 올라왔는데 그냥 가서 어떻게 하냐고 전화를 하셨다. 사모님이 우리 걱정 할 때인가. 사모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훅 터져 말도 제대로 못했다. 과장님이 많이 고통스러워했는데 그 아픔에서 해방 됐다고 생각하자며 나를 위로해 준다.

장례식이 끝나고 코로나 거리두기도 끝났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하신다. 이렇게 전화를 하고 목소리를 듣고 지내자고 한다. 당신은 언제나 일지회 회원이고 아우님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언제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기차타고 익산에 내려오시라고 했다. 문서기관 가족과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잣을 보내왔다. 여전히 보내는 사람은 과장님이다. 전화기를 들 때마다 망설여진다.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게 내가 사모님 입장이면 좋을까. 잣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23-05-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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