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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 김성중

 


김성중 범죄학박사

 

딱 이맘때의 일입니다. 중학교 소풍날. 보물찾기가 끝나고 장기자랑을 하는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이 나와서 유행가도 부르고 유명 그룹의 춤을 흉내 내는 등 각자 장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나와서 윤동주의 서시를 낭독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놀랍게도 그 모습에 모두가 환호성을 보냈고, 지금도 그 학생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은 이렇듯 시가 없어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시를 멋지게 만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친 듯이 시를 썼습니다. 삶의 고통을 혼자 지닌 듯 써 내려간 글들이 위안이 되었고 행복했습니다. 누에가 시를 뽑아내듯이 그렇게 쓴 시들.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겉이 두꺼운 멋진 그 시작 노트를 모닥불에 태웠습니다. 마치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의식을 거행하는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시작 노트의 던짐을 내내 후회하였는데 요즘은 깨닫게 됩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을. 내가 그것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것들은 나 자신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이것을 설약(說略)이라고 했습니다. 시가 바로 설약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시에 대하여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예술이 바로 시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시가 우리 생활에서 어떤 모습인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한 편의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속도에 대한 세상의 숭배에 저항하는 것이며, 숱한 마음 놓침의 시간을 ‘마음 챙김의 삶’으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시적 언어는 개념적 의미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안도현의 ‘연탄재’는 더 이상 연탄재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입니다.

시는 고독과 감성의 산물입니다. 시인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의 풍경과 느낌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찰나와 같은 생의 이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 편의 시를 암기한다는 것은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 인식의 큰 그릇을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 한 편이 담고 있는 세계는 매우 큽니다. 시는 큰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태백이 읊은 달과 우리가 보는 달은 그 차원이 다름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시 300수를 의무적으로 암송하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를 암송하는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편, 가곡은 시에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 시가 낭송되면 시에 날개를 다는 셈이며, 가곡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면 낭송 때보다 더 큰 날개를 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시가 낭송되고, 가곡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자주 오르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시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삭막한 삶에 윤활유와 활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는 진정성의 공감이 있어야 살아 숨 쉽니다. 자기도 감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화려한 그릇에 담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못합니다.

‘간장게장’을 주제로 한 시가 있습니다. 시제는 ‘스며드는 것’입니다. 간장이 쏟아지는 그릇 속에서 엄마 꽃게는 가슴에 알들을 품고 어쩔 줄 모릅니다.

어둠과 같은 간장을 뒤집어쓰면서 더 이상 가슴에 품은 알들을 지킬 수 없게 된 엄마 꽃게가 알들을 쓰다듬으며 말을 합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간장게장’은 이미 간장게장이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 꽃게의 목소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메아리치며 공감을 줍니다. 간장게장을 먹기가 꺼려질 정도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우리의 정서도 그렇습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한 줄기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는 시인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권합니다. 유연한 시적 사유는 비단 세계 인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23-05-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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