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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3-09-21 00: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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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 스카프
▲ 윤복순


윤약국약사

윤복순

 

똑같은 스카프를 하고 사진 찍는 게 재미있다. 마침 기온이 올라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하고 온 머플러는 무거운 감이 있다. 누가 먼저라 것도 없이 모두 새 것으로 갈아 둘렀다. 화사한 꽃 여인이 되었다.

한 달 전 쯤 후배가 청와대 구경을 하자고 한다. 작년에는 창경궁 후원을 구경시켜줬는데 올해 또 초대를 하니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답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음만 바쁘고 받아 놓은 날이라 금방 닥치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행 중에 올해 회갑인 자가 있다고 한다. 작년에 내가 만들어 준 스카프가 맘에 든다고, 회갑선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이번에 처음 만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그녀와는 초면이다. 우리는 약사문인회 회원이다.

아무 결정도 못했고, 미리 말을 하면 재미도 없어 답을 안했다. 청와대 구경을 주관하는 그녀가 애가 탔는지 익산에 사는,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는 후배에게 까지 연락이 왔다고 한다. 회갑인 그녀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맘먹고 있다.

날은 빠작빠작 다가온다. 여름이면 인견 옷을 잘 입고 다니는 할머니가 약을 사러 오셨다. 당신이 재봉틀로 꿰매 입는다고 했다. 인견을 사고 싶다고 하니 구시장 어느 집을 알려준다.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단다. 당신이 허리가 아파서 사다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택시타고 다녀와야겠다, 맘먹고 있는데 쉽게 나서지지 않았다. 할머니 전화다. 딸이 인견으로 속옷이랑 잠옷을 만들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한단다. 딸 차로 가니 당신이 베를 떠다주겠단다.

인견 폭이 얼마인지, 몇 마(碼)를 해야 하는지 몰라 포목점 주인에게 스카프 열장 만들만큼 물어서 사다주면 좋겠다고 했다. 내 하는 일이 항상 이렇다.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 하는 게 아니라 주먹구구 좌충우돌 이다. 최선이던 차선이던 처음 해 본다는 것으로 만족이고 손수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할머니가 유모차에 인견을 실고 왔다. 꽤 묵직하다.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허리만 안 아프면 당신이 박아주겠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단다. 사다 주신 것만도 반절 일은 끝났다.

내 스카프 길이만큼씩 자르는데 남편보고 잡아 달라 했다. 어릴 때 어머니는 가위를 넣으면 쭉 나갔는데 나는 어찌 나가지 않고 삐뚤빼뚤 나가다 멈추고 나가다 멈춘다. 보다 못한 남편이 자기가 해 보겠다고 가위를 가져갔다. 웬 걸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실오라기는 풀풀 날리고 방바닥이 난리다.

어떻게 계산을 했는지 스카프 열장이 아니라 스무 장도 더 나오겠다. 이걸 다 자르다간 부부싸움 하게 생겼다. 행여 비뚤어질까 손은 덜덜 떨리지 진도는 안 나가지, 드디어 남편이 어찌 안 하던 것을 하냐고 한 마디 한다. 인견을 혼내야지 왜 나를 혼낼까. 애기 키울 때 애기가 밥상이나 어디에 걸려 다치면 상을 때리며 ‘넥끼 왜 우리 아가 다치게 했어.’ 하며 밥상을 때려줬었다. 내가 처음 하는 일이고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가상하니 남편이 “네 이놈 인견, 쭉쭉 잘 나가야지, 왜 내 각시를 힘들게 해.” 하며 내 편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어찌어찌 다섯 장을 잘났다. ‘그만합시다. 몸살 나겠네.’ 다섯 장을 약국에 가지고 나와 살림 잘하는 고수에게 전화를 했다. 폭이 넓어 반으로 자르면 열장이 된다. 짧은 것도 못 잘라 난리를 쳤는데 길이를 반으로 나누는 것은 나에겐 무리다. 아주머니께 부탁을 했다. 어머니처럼 가위가 쭉 나간다. 스카프를 다 만든 기분이다.

점심시간 수선 집에 가서 가(둘레)를 박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값이 만만치 않다. 바금질 까지 하니 정말 스카프가 되었다.

무슨 염색을 할까. 작년에 사다 놓은 지초와 치자가 있다. 지초는 분홍색이다. 올 봄 핑크스카프를 유행시켜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냉장보관 안 하고 한쪽에 두었더니 봉투에 붉은 색이 베어 나왔다. 참 곱다. 옳거니 이런 색이 나오면 최상이지. 어깨가 들썩거린다.

퇴근 후 한 봉지를 다 넣고 핑크물이 우려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찬물이라서 일까. 큰 냄비에 옮겨 약한 불에 올려놓았다. 불 앞에 서서 봉지의 색이 나오길 기도했다. 얕게 분홍색이 나온 것 같아 사기국자로 떠 보았다. 조금 우려 나왔다. 화장지를 넣어 보니 전혀 색이 나오지 않는다. 더 열을 가하면 더 진하게 나올 것 같았다. 팔팔 끊였다. 어머머 빨간색이 없어지고 검은 구름색이 나왔다. 유효기간이 지나서일까.

멋지게 만들어 후배들에게 선물하고, 동네사람들한테 맨 날 받기만 해서 이번 참에 하나씩 주고, 잘 되면 나머지도 만들어 친정 언니 동생들에게 주려고 했다. 청와대 가는 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언제 지초를 사러갈까, 또 색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까. 남편은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또 한 마디 한다.

다음 날 치자를 잘라 물에 푸니 노란색이 선명하게 퍼진다. ‘그래 이거지. 여보 이리 와봐.’ 환호성이 터졌다. 명반을 녹여 인견을 넣으니 치자물이 곱게 든다. 진하게 다섯 장 조금 옅게 다섯 장을 들여 건조대에 널었다. 딸 시집보내는 날보다 더 잔치 집 같다. 베란다에 앉아 스카프 멍 때리기를 했다.

퇴근하기 무섭게 한 장 한 장 다림질을 했다. 얇아서 잘 다려질 줄 알았는데 쉬 펴지지 않는다. 다림질 하면서 보니 치자과육이 스카프에 붙어 있다. 치자 우려낸 물을 가는 채로 걸렀어야 하는데 채가 없어 얌전히 따라지만 과육이 들어간 것이다. 다행히 손으로 문지르니 바로 떨어진다. 개나리보다 민들레보다 예쁘다. 이래서 천연 염색 천연 염색 하는구나. 정성스레 개켜 지퍼 백에 담았다. 드디어 내일이다. 후배들 얼굴에 스카프를 매치시켜본다. 설레어 잠이 들지 않았다.

용산역에서 다섯 명이 만났다. 진한 색과 옅은 색 반반 가지고 가 취향에 맞게 나눠 가졌다. 후배들의 칭찬에 한 달여의 고생이 기쁨으로 넘친다. 만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 나만의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청와대를 구경하는 동안 촌스럽게 똑같은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침류각의 백모란 보다 아름다운 우리들, 항상 봄이다.


23-05-0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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