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관계없이 혼란 야기.. 지역사회 후폭풍 고스란히

시민혁명을 내세우며 요란하게 익산시청에 입성했던 박경철 시장의 입장이 풍전등화다.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항소심 당선무효형이라는 결과만으로도 지역사회에 크나큰 혼란을 야기한 것은 사실이기에, 박 시장의 자성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지난 항소심에서 그의 변호인은 ‘공적지위에 있는 자는 정당하기만 해서는 불충분하고, 정당하게 보여야 할 책무도 가진다’는 미연방 대법관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취임 이후 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사상초유의 ‘시정질문 공무원 전원 불참’이나 ‘정치인 축사 생략’ 등 파격적이고 돌출적인 불통 행보로 인해 줄곧 지적을 받아 온 것은 물론이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인해 공인으로서 ‘정당하게 보여야 할 책무’를 저버린 박 시장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주위의 충고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야인에서 시민의 대표로.. 결과는 ‘위기’

오뚝이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2전 13기만에 당선의 영예를 안은 그가 지난해 7월 익산시장으로 취임하자, 기존 정치인들의 오랜 구태에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익산시민들의 눈과 귀는 온통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더욱이 지난해 6·4전국동시지방선거는 민주당과 새정연의 통합 이후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내분, 무공천 철회로 야기된 공천파행 등 구태정치를 답습하며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전북지역에서 최대 이변으로 꼽힌 무소속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하지만 박경철 시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11개월여의 시정운영 성적표에는 물음표가 잔뜩 붙어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하루가 멀다하게 파격적인 행보로 연일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시민들이 기대했던 인간 박경철 특유의 강직함이나 시원함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가 아니라, 정치·행정 경험 부족이나 소통 기피에 따른 독단과 독선, 무소불위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시의 행사 및 시가 지원하는 민간 행사에서의 축사 문제로 불거진 의회와의 갈등과 정치인들의 축사 생략, 시정질문 공무원 전원 불참, 모현 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 광역상수도 전환이나 시청 일부 함열 이전 등 공약사항 추진을 둘러싼 의회와의 대립, 시대착오적인 언론통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승진인사 등은 이른바 ‘나를 따르라’ 식의 리더십으로 밀어붙인 그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는, 그간의 오랜 정치역경을 딛고 손아귀에 쥔 권력을 가지고 한풀이를 하듯 시정을 운영하는 모습이 부정적인 행태로 도출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불렀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20여년이 훌쩍 넘는 동안 꿈꿔왔던 이상을 펼치려는 순간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현안 문제들이 발생하자,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공격적인 성향을 띠며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 불통의 아이콘

당선 이전까지의 인간 박경철의 일생은 줄곧 시민의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점철된다.

실제 박 시장은 당선 이전에 익산시민연합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수십 년간 지역사회를 위한 수많은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시장으로 취임 직후 그는 불통의 아이콘이 됐다.

그가 내세운 주요 공약 사업들은 소통 부재와 현실성 검토 필요성 등을 이유로 줄줄이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며 외면됐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들과 언론의 비판도 모자라 제 식구인 공직사회 내부 노조로부터도 거센 반발을 샀다.

또 취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형사 기소됐고, 적잖은 시간을 검찰 조사와 재판에 불려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지역사회 내에서 부정적 이슈 메이커로서의 그의 행보는 더욱 도드라졌고, 그럴 때마다 불통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그의 시정운영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고, 이는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최소·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사법적인 판단을 거침없이 택한 박 시장은, 현재 스스로도 사법적 판단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신세가 됐다.

원심에 이어 지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박 시장은 “前 시장 측 선거운동원이 고발한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 고법의 5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된 점은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저의 부덕의 소치이고, 이 일과 관련해 시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린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시민이 선출한 민선시장으로서 좌절하지 않고 더욱 심기일전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에 관해 대법원에 상고함으로써 최종적 판단을 구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됨에 따라 저와 1,500명의 익산시 공직자들은 추호의 동요나 흔들림 없이 31만 익산시민과 익산시를 위해 철저히 시정을 다잡고 현안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 결과에 상관없이 지역사회 혼란.. 자성 필요

그는 지난 1988년 13대 총선을 시작으로 13차례나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에 나서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신 끝에 지난해 익산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12전 13기로 꿈을 이룬 ‘오뚝이 정치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의 그의 승리는 반칙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다양한 이유로 유권자들의 소중한 지지를 얻어 당선됐지만, 만약 반칙승으로 최종 결론이 맺어질 경우 이 같은 결과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선거에 따르는 재정적·시간적 낭비는 물론이고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정신적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동안 익산지역에서 벌어진 매번의 선거에서 일정 비율을 차지했던 박경철 후보를 향한 고정 지지세력 외에, 다른 시민들 중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단지 민주당이 싫어서’, ‘단지 3선이 싫어서’, ‘불쌍해서’ 등의 투표 이유를 대는 시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자성이 요구된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들의 선택 또한 엄연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존중돼야 하지만, 이번처럼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선거 불씨가 점화되는 등 지역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신중한 투표의 필요성 또한 제기된다.

특히 반칙승에 대한 제재 외에 이로 인해 지역사회가 입게 될 후폭풍이나, 반칙패에 대한 별도의 제도적 보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필요성은 더욱 크다는 여론이다.

더욱이 세간의 전망대로 만약 재선거가 이뤄질 경우에는, ‘반칙으로 승리를 쟁취한 무소속 시장보다는 차라리 내가 낫다’라는 자신감을 내세우며 후보자들이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 유권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이에 대해 지역 정치단체인 좋은정치시민넷의 손문선 대표는 “지방자치에 있어서 단체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행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크기 때문에, 현재 익산시의 상황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혼란을 최소하기 위해 힘을 모아 돌파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소중한 표를 행사한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유권자인 시민들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함을 잃지 않는 성숙한 모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 재선거 움직임 솔솔

박 시장의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되자, 지역 정가는 이미 재선거를 염두에 둔 움직임들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는 모양새다.

당장 공직사회 내부의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들과 함께, 시민들 사이에서는 재선거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모습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재보궐선거의 가능성 또한 적잖게 열려 있어 이를 대비한 움직임 또한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지역정가의 분석이다.

실제 시민들의 입에 유력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입지자는 대략 7~8명 정도.

사업가로 변신한 이한수 전 시장을 비롯해 지난 선거 직후부터 지역 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헌율 전 행정부지사, 전국 최초의 5선 도의원과 3회 도의회 의장이라는 보기 드문 정치 경력을 자랑하는 김병곤 익산문화재단 상임이사, 김영배·황현·김연근 도의원, 배승철 전 도의원 등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