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고은랑의 책세상

412호 홍합

▲ 한창훈

▣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세상에 나왔다. 세상은 몇이랑 밭과 그것과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잠수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사십 전에는 기구할 거라는 사주팔자가 대략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음악실 디제이, 트럭 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이런저런 배의 선원, 막 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따위의 이력을 얻은 다음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와 한국작가협회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원고 쓰고, 이웃과 뒤섞이고,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고 있다.

▣ 독자들의 한줄생각&한줄느낌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시골 풍경 그대로인데 순전히 너무 재밌어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니!

눈으로 읽지만 보고 듣는 거 같은 생생함이라니!!

-이야기를 풀어가는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오리지널 전라도 사투리의 정겨움과 각기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맛깔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걸쭉한 입담이 읽을수록 작품에 빠져들고, 노총각 문기사와 과부 승희네의 로맨스는 두근두근 야릇한 스릴이 느껴진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해학이 넘치고, 때론 구슬프지만 따뜻한 위안이 스며있다.

-짠내 나는 홍합 아지매들, 삶보다 진한 소설이 어디 있을까.

-맛깔스럽고, 서럽지만 신명 나고

▣ 책속에밑줄긋기&다시한번 생각해보기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겨우내 겨울잠 자던 물이 몸 풀고 흘러내리는 봄이나 풀과 나무가 기운을 뿜어내다가 도가 지나쳐 얼굴이 붉어지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죽에 윤기가 도는 가을이면 시간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손아귀로 움켜쥔 한 줌 물처럼 절로 흘러가버리는 거였다. 그것은 인생에서 청춘과 같아 지금이 좋을 때구나 싶어지면 이미 화려한 시간대의 끝물이어서 사람의 생이란 게 언제나 시간보다는 한 호흡 뒤지는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사랑이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저도 모르게 저이랑 손잡고 사람 없는 바닷가 모래밭쯤을 걸어보기라도 한다면 싶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붉어지고, 고개가 돌려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러다가 억지로 손에 일을 잡는 것도 사랑이라면 글쎄 사랑이었다. 승희네가 보기에 문기사의 긴 머리가 손가락 걸기 좋아하던 남자와 닮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이름하여 부르기 어려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파고들어 몸을 가볍게 했다.

▣ 작가 한마디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누렇게 삭아버린,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던 생활계획표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

▣ 은랑생각

-여수 근처의 홍합 처리 공장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중심인물인 여인네들의 건강함이다.

상냥하고 잘 배우고 교양있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사람도 없다. 모두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한숨만 나오는 사연인데도 그다지 슬프지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다.

맞아서 눈 주위가 퍼렇게 되어버린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선생에게 촌지로 찔러주고 온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웃기다. 음담패설 조차 야하지 않고 건강하게 바꿔버리는 중년 여인들의 건강함은 그대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홍합 공자에서 일하는 8명의 사연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는 진행된다. 말을 하고 보면 말도 안 될 것 같은 상황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구는 이러고 있을 것 만 같다.

-뼛속까지 바닷 사람인 작가의 책에선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단지 아름답고 혹독한 바다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구석구석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구석 홍합 공장의 삶의 현장 속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노동을 본다. 제각각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인생사를 구구절절 풀어내고 있다.

삶의 동력, 웃음 그리고 해학 그들의 서러운 인생사를 녹록지 않은 인생을 작가는 그저 구슬프게 읊지 않고 신명 나고 능청스럽게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