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넘게 로컬푸드를 외쳐 왔지만 익산시민이나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로컬푸드체제를 체험하지 못한다. 유통구조를 고치는 일이라, 말이 쉽지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말하며, 로컬푸드체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익산시는 도시와 농촌이 통합된 곳이라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부러울 정도로 많은 들녘이 있는데, 농민과 소비자는 여태 직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농촌은 죽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우선 농협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지나치게 2,3차 산업의 부흥에만 몰입했기 때문이다.

농촌과 농민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죽는다.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은 모든 산업과 물질문명의 토대이며, 외부에 먹을거리를 의존하는 것은 쇠락으로 가는 길이다.

세계 무역구조 속에서 식량은 점차 무기로 변하고 있다. 공산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은 소수 대기업과 주주들의 이익을 늘리지만, 먹을거리를 수입하며 밖으로 돈을 유출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만든다.

최근 20여 년 동안 농업의 구조에도 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농업이 규모화 되는 추세에 따라 농촌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깊어지고 있으며, 소농이 사라지고 있다. 소농은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정책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공장과 농지가 규모화 되는 것은 다르다. 공장은 규모화 될 경우 수익을 늘릴 수 있고, 협력업체를 양산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고용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농업은 규모화 되면 겉으로는 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먹을거리 생산의 다양성이 사라지며, 기계화된 영농으로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다.

제조업과는 달리 소농이 없어지고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농약과 화학물질을 과다하게 투여해야 한다. 또 농업의 규모화는 시장의 변화에 따른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 농산물은 제 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재고에 따른 위험이 너무 크다. 

게다가 농업이 규모화 된다 해도 유통구조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농민과 소비자는 거대 유통기업의 ‘봉’일 뿐이다. 농민과 소비자는 손해보고 유통기업만 재미를 보는 구조, 지역의 돈이 지역에 풀리지 않고 유통기업으로 몰리는 구조가 바뀔 수 없다. 대기업이 가져가는 과다한 유통마진은 원래 농민과 소비자의 주머니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로컬푸드체제다.

완주군 용진농협이 설립한 ‘로컬푸드직매장’은 우리 농업과 유통이 나갈 방향을 어느 정도 감지하게 해준다.    

소비자는 신선농산물을 중간유통 마진 없이 값싸게 살 수 있고 어떤 농민이 생산한 것을 먹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농민들은 큰 욕심 내지 않고 농산물 값이 폭등하든 주저앉든 일정한 가격을 매긴다. 대농이든 소농이든 물건만 좋으면 납품할 수 있고, 품질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식당이나 유통업자가 대량으로 주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량 이상은 팔지 않는다.
소비자는 돈을 아끼고, 농민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다.

무엇보다 농촌에 사람이 들어와 살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건 로컬푸드의 위대한 가치다. 농민이 가격을 결정하고 유통의 주체가 됐으며, 소비자의 욕구를 직접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혁명적인 일이다.

지역에 돈이 돌기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충족시킬 것이다.
용진농협이 로컬푸드매장을 열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농민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완주군은 수년 전부터 로컬푸드를 상품화하기 위해 많은 예산과 노력을 쏟았으며, 농협은 매장을 열기 전 1년 6개월 동안 농민조합원을 설득하고 교육했다. 익산시가 서동축제를 할 때 완주군은 로컬푸드(와일드푸드) 축제를 했다.

용진농협에서 맨 처음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하겠다는 농민은 세 명이었는데, 1년도 채 되지 않아 3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제는 500명이 교육을 받으러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익산시는 로컬푸드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20만 명이 몰려 있는 도심이 있고, 농지는 넉넉하다.

그런데도 농민은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하며, 농업이 대물림되지 않아 농촌은 갈수록 공동화되고 있다.

익산시 입장에서는 대형마트 규제보다 중요한 것이 로컬푸드체제를 빨리 도입하는 것이다. 로컬푸드체제가 확립되면 다른 부문이 쇠퇴하지 않을까 걱정할 일이 아니며, 농협은 대형마트나 다름없는 하나로마트를 늘릴 때가 아니다.

농협과 익산시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강한 의지를 다져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