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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국제 NGO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하더니 장마와 폭염으로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다.

습관적으로 ‘~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무슨 말이든 뒤에 ‘죽겠다’를 붙여 말하곤 했다. ‘졸려 죽겠다’ ‘화가 나 죽겠다’ ‘목말라 죽겠다’ 급기야 ‘행복해서 죽겠다’고도 했다. 보다 못한 그의 어머니가 “얘야 너는 어째 말끝마다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사느냐? 좀 고쳐라” 하니까 그 사람이 뭐라고 했을까? “예 어머니, 노력할게요. 저도 그 못된 버릇만큼은 고치고 싶어 죽겠어요.”

모두가 꺼리고 두려워하면서도,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너무나 쉽게 내뱉는 말이 ‘죽음’이다. 사(死)자와 음이 같다 하여 생활 속에서 숫자 4를 꺼리면서도 ‘죽겠다’는 표현이 아주 입에 붙어있다.

툭하면 창피해 죽겠고 서러워서 죽겠고 억울해서 죽겠다고 말한다. 뿐인가. 귀여워 죽겠다거나 보고 싶어 죽겠다고도 하며, 심지어 좋아서 죽겠고 즐거워 죽겠고 우스워 죽겠다고까지 한다. 한술 더 떠 재미가 있어도 죽겠고 재미가 없어도 죽겠다고 한다.

배고파 죽겠다거나 무서워 죽겠다면 죽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졸려서 죽거나 심심해서 죽거나 더워서 죽겠다 하고 싶어서는 죽지는 않는다. 하물며 바빠서 죽을 수는 없고 할 일이 없어 죽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물론 여기서 죽겠다는 뜻은 ‘견디기 힘들 정도’라는 뜻을 극도로 강조한 것임은 익히 안다. 그러나 죽겠다는 표현을 너무 자주 남발하다 보니 아예 감각이 무뎌진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도에 넘치는 표현이 동원돼야 직성이 풀리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사(決死))니 사수(死守)니 하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죽기를 각오하는 것이 결사이고 죽을 힘을 다해 지키는 것이 사수인데, 노조나 단체. 각각의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결사와 사수라는 말을 다반사처럼 한다. 그러니 말의 인플레가 심해져 정작 자신의 속뜻을 전하려 할 때는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서로 견해 상 대립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박살(撲殺) 내겠다고 공언하면서 필사적(必死的)으로 달려든다. 그야말로 죽음이란 말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그처럼 격하고 험한 세상에서 악착같이 산다. 그러나 사실은 죽기 싫어서 악다구니를 쓰고 아등바등하는 것임은 정한 이치다.

죽겠다는 것은 지옥 같다는 말과 통한다. 지옥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세계이니까.

어느 불교학과 교수가 물었다. “지옥에는 부처가 있는가?”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마다 답을 낸다. “없다. 부처는 당연히 극락에 있어야지” “있다.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하려면 부처가 지옥에도 있어야지.” 그리스도교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지옥에도 그리스도가 있는가?” 그럼 답을 할 거다. “천만에. 그리스도는 천국에만 있다. 지옥에도 있다는 건 신성모독이다.” 아니면 이런 답이 나올까? “지옥에는 그리스도가 없지만, 연옥에는 그리스도가 있다. 그래야 그들을 구원할 테니.” 그도 아니면 이건 어떤가. “지옥도, 천국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 세상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까.”

운문(雲門·864~949) 선사는 중국의 고승이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란 선구(禪句)로 유명하죠. 그를 찾아온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 선사가 답했다. “마른 똥 막대기다!” 지금도 절집에서 ‘파격 중 파격’으로 꼽히는 대답이다. 부처를 똥 막대기에 빗댔으니 말이다. 이 또한 해석이 분분하다. “부처의 깨달음은 낮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거다. 그러니 운문 스님이 부처를 똥 막대기에 비유하지 않았나. 그렇게 보잘것없고, 초라하고, 소외된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부처처럼 섬겨야 할 대상이란 뜻이다.”

그럼 대답을 바꿔보자. “부처는 금 막대기다!”이건 맞는 말일까, 아니면 틀린 말일까. 부처가 똥 막대기일 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부처다’란 해석이 통했다. 그런데 ‘부처는 금 막대기다’가 되면 그게 통하질 않는다. 금 막대기는 귀하고, 비싸고, 부유한 거니까. 그렇다면 이 말은 운문 선사의 외침에 어긋난 말일까. 부처는 똥 막대기는 될 수 있지만, 금 막대기는 될 수 없는 걸까?

그리스도교에는 “당신의 대문을 두드리는 낯선 손님, 그가 바로 예수다”란 말이 있다. 그 방문객이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이라면 “맞아, 그 말이 맞네.” 맞장구가 나온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어줬는데, 하룻밤 재워줬는데, 그가 심술궂고 이기적이고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여전히 그 낯선 손님이 예수일까, 아니면 나쁜 놈일까.

우리는 늘 갈림길에 서 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금 막대기냐, 똥 막대기냐. 선이냐, 악이냐. 그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선한 사람을 만난 날은 ‘좋은 날’, 악한 사람을 만난 날은 ‘나쁜 날’이 된다. 날마다 좋은 날은 없다. 그런데도 운문 선사는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노래했다. 어떡하면 그게 가능할까?

‘똥 막대기’란 말에 열쇠가 있다. 필자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부처는 똥 막대기다. 그렇게 형편없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도 부처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나. 쇠막대기도, 금 막대기도 똑같은 부처다. 그 공(空)한 바탕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온 세상이 부처다.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다.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운문 선사는 그렇게 똥과 금의 경계를 지웠다. 그러고 보니 “지옥에도 부처가 있느냐?”는 물음이 참 어리석다. 왜냐고요? 지옥이 바로 부처니까. 그걸 못 보니까 지옥이 지옥이 되는 거다.

사람들은 종종 일상을 지옥에 빗댄다. 바빠서, 힘들어서, 슬퍼서 “지옥같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면서도 ‘자신의 지옥’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 소설 「 레미제라블」 의 미리엘 신부는 은촛대를 훔쳐가는 도둑 장발장을 예수로 봤다. 그의 눈에는 모두가 예수였다. 남들이 사는 지옥에서 그 신부는 천국을 살고 있었다. 그가 말한다. 날마다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