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 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4월이 되면 너도나도 인용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묘한 매력이 있지요. 바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입니다. 4월의 찬란함과 비통함을 동시에 전달해 주는 듯한 이 말은 바로 시인 엘리엇이 그의 대표작인 <황무지>에 쓴 시구입니다.

<황무지>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가장 현대적인 시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려 433행에 달하는 현대 시 중에서 가장 긴 시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 문장은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가장 적을 것 같은 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 첫 구절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1차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황폐한 황무지로 비유하여 그 황무지에 봄을 맞아 라일락꽃이 피는 회복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패망의 구렁텅이에서도 현대문명의 구원이 오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엘리엇(T. S. Eliot(1888-1965))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극작가입니다. 20세기 시와 비평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1948년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뮤지컬인 <캣츠>의 원작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4월은 우리에게도 잔인한 달로 기억됩니다. 1948년 4월에는 「제주 4.3 사건」이 있었는데 공식 희생자 수만 10만 명이 넘습니다. 1960년에는 「4·19 혁명」으로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2014년 4월에는 「세월호 전복사고」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등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45년 4월에는 독일의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1906-45)가 나치에 항거하다가 39세의 나이에 순교를 당했고, 1968년 4월에는 미국의 목사요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1929-68)도 39세의 나이에 한 백인에 의해 암살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세상을 환히 비추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4월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졌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찬란한 4월은 그 찬란한 만큼 더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이 고뇌를 통해 창조된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4월은 예수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정의와 사랑과 진리가 결국에는 승리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적으로도 4월은 잔인한 달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의 달이기도 합니다.

봄입니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숨 고르고 마른 가지 끝에 매달려 웅크리며 겨울을 버틴 꽃들이 부활하는 찬란한 봄입니다. 그 어떤 계절보다 봄이 특별한 것은 바로 그런 극적인 부활의 상징을 체감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얼어붙은 마른 땅을 뚫고 나오는 씨앗처럼, 우리가 봄을 맞을 자격은 과연 있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부디 우리 현실의 황무지에서 더 이상 과거의 잘못된 야만적 죽음이 끝나고, ‘살림과 사랑’으로 모두가 부활 되는 그런 봄, 그런 4월이 되길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