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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 윤복순



윤약국 약사


윤복순


 


비가 온다. 오랜 봄 가뭄에 내리는 비라 외출이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오늘은 국립대전현충원에 간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어느 해 추석 성묫길에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죽으면 이곳(가족묘지)으로 올까 국립묘지로 갈까?” “국립묘지로 가고 싶네.” 국립묘지로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는 화장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다.


우리 집안엔 현충원에 안장된 분이 한 사람도 없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선국선열 등등도 없고 6.25전사자도 없고 군대생활 하다 사고 당한 사람도 순직자도 없다. 조상대대로 훌륭한 사람도 없지만 보통 서민으로 무탈하게 살아온 것 같다. 남편이 30년 가까이 군대생활을 했기에 현충원에 갈 자격이 있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는지 오늘 비도 오는데 처음으로 간다. 남편은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 두세 번 가보았다고 한다. 매일매일 사망자가 현충원에 오지만 바로 봉안식을 하지 않고 그 당시엔 일주일에 한 번 했다고 한다. 그때 특히 사병 사망자가 많을 경우 장교들이 봉안식에 가 주었단다. 남편이 예편한지도 2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에서 관광안내소에 가 물으니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머리를 써서 3번 출구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거리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걷기로 했다. 바람까지 분다. 현충원 방향 쪽으로 나왔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저씨 한 분이 가게 앞에서 트럭에 타려고 하고 있다. “이쪽으로 쭉 가면 현충원이 나올까요?” 아저씨는 웃으며 차에 타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걸어갈 만 하다고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신호에 걸려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타라는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 아저씨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을 뿐 아니라 바람에 맞서 걸으려니 쉽지 않다. 무엇보다 두 번이나 사양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주는 것만 복 짓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복 받는 일이다. 차에 탔다. 당신도 현충원에 가는 길이란다. 형님이 그곳에 계셔 자주 가는 편이라며 참배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2Km도 넘어 비가 오니 걷기엔 좀 멀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현충원에서 걸을 만한 둘레길에서 내려 줬으면 했더니 “저랑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한다. 차를 태워줘서 시간을 30~40분 벌었는데 그 정도는 대접해야 할 것 같았다. “잘 됐어요, 밥을 어디서 먹을까 했는데 아시는 곳으로 갑시다.” 현충원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무료 국수 공양을 하는 구암사 나눔의 집 “나마스테”다. 아저씨는 일을 하러 나왔는데 비가 와서 일도 못하고 누구랑 점심 먹으러 갈 사람도 없어 이곳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게 문 다시 열려고 막 나왔을 때 우리를 만났다고 했다.


나마스테는 다섯 군데에서 보시를 한다고 쓰여 있다. 이곳은 3호점으로 2013년 4월 1일부터 연중무휴라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이 없다. 바로 국수 한 그릇을 받았다. 사찰음식이라 잔치국수 맛이 일품이다. 이 국수는 우리 농산물을 쓰니 국물도 남기지 말라고 쓰여 있다. 배가 불러 국물을 남겼는데 아저씨는 빵까지 챙겨와 주신다. 뜨거운 대추차도 같이. 비 오는 날 대추차, 두 말이 필요 없다. 몸이 따뜻해 졌다.


아저씨는 가게 문을 열겠다고 일어나며 이리저리 돌아보라며 방향을 알려준다. 셔틀버스가 운행되는데 만의 하나 일요일이라 안 하면 또 데리러 오시겠단다. 지금까지의 친절도 감동이고 이야기꺼리도 많다고 하니 당신도 오늘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릇을 반납하며 보니 복전함이 있다. 아저씨 몫까지 조금 넣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하도 넓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장교나 사병이 같은 묘역이다. 장군은 따로 있다. 남편은 장군이 아니니 장병묘역 쪽으로 가다보니 국가원수 묘역이 있다. 대통령은 동작동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궁금해 올라가 보니 최규하님과 영부인 홍기님의 합장묘와 비석이 있다. 두 세분이 더 오실 수 있다. 어느 대통령이 이곳으로 올까.


장병묘역은 봉분은 없고 비석만 있다. 어느 이병 비석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군대 가서 훈련 마치고 겨우 이병을 달았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묻혔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국립묘지에 묻히는 게 영광만이 아니고 비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순국선열의 묘역은 봉분과 비석이 있고 비석엔 경력과 묘비명도 있다. 한 분 한 분의 묘도 넓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으니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될 것이다.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 의사상자 국가사화공헌자 독도의용수비대 등등의 묘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장병묘역이 제일 넓어 나는 나중에 어디쯤에 묻힐까 가늠도 못하겠다. 1982년 8월 27일 사병 안장을 시작으로 1985년 국립묘지 준공, 1996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니 4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 기차시간에 맞춰 나오다 책자 하나 얻으려 민원 안내실에 들렀다. 그곳에서 셔틀버스“보훈모시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현충원 각 묘역을 돌아 현충원역으로 가는 코스다. 배차시간은 30분 간격이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세고 기온이 떨어져 걷기 좋은 날씨는 아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역 까지 왔다. 지하철 타는 곳에 크~게 몇 군데나 보훈모시미 안내가 붙어 있다. 왜 갈 때는 못 봤지. 2번 출구 쪽에서 보훈모시미가 정차 출발하는데 우리가 3번 출구로 나가서 못 본 것 같다.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려고 물어보지도 않고 3번 출구로 나갔던 것은 아닐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아저씨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유가족 및 참배객에게 무료로 중식을 제공하는 나마스테도 몰랐을 것이다. 오늘 비는 반갑고 고마운 비가 맞다. 아니 복비다. 세상은 좋은 사람들 천지다. 나마스테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윤복순


비가 온다. 오랜 봄 가뭄에 내리는 비라 외출이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오늘은 국립대전현충원에 간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어느 해 추석 성묫길에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죽으면 이곳(가족묘지)으로 올까 국립묘지로 갈까?” “국립묘지로 가고 싶네.” 국립묘지로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는 화장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다.


우리 집안엔 현충원에 안장된 분이 한 사람도 없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선국선열 등등도 없고 6.25전사자도 없고 군대생활 하다 사고 당한 사람도 순직자도 없다. 조상대대로 훌륭한 사람도 없지만 보통 서민으로 무탈하게 살아온 것 같다. 남편이 30년 가까이 군대생활을 했기에 현충원에 갈 자격이 있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는지 오늘 비도 오는데 처음으로 간다. 남편은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 두세 번 가보았다고 한다. 매일매일 사망자가 현충원에 오지만 바로 봉안식을 하지 않고 그 당시엔 일주일에 한 번 했다고 한다. 그때 특히 사병 사망자가 많을 경우 장교들이 봉안식에 가 주었단다. 남편이 예편한지도 2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에서 관광안내소에 가 물으니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머리를 써서 3번 출구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거리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걷기로 했다. 바람까지 분다. 현충원 방향 쪽으로 나왔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저씨 한 분이 가게 앞에서 트럭에 타려고 하고 있다. “이쪽으로 쭉 가면 현충원이 나올까요?” 아저씨는 웃으며 차에 타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걸어갈 만 하다고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신호에 걸려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타라는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 아저씨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을 뿐 아니라 바람에 맞서 걸으려니 쉽지 않다. 무엇보다 두 번이나 사양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주는 것만 복 짓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복 받는 일이다. 차에 탔다. 당신도 현충원에 가는 길이란다. 형님이 그곳에 계셔 자주 가는 편이라며 참배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2Km도 넘어 비가 오니 걷기엔 좀 멀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현충원에서 걸을 만한 둘레길에서 내려 줬으면 했더니 “저랑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한다. 차를 태워줘서 시간을 30~40분 벌었는데 그 정도는 대접해야 할 것 같았다. “잘 됐어요, 밥을 어디서 먹을까 했는데 아시는 곳으로 갑시다.” 현충원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무료 국수 공양을 하는 구암사 나눔의 집 “나마스테”다. 아저씨는 일을 하러 나왔는데 비가 와서 일도 못하고 누구랑 점심 먹으러 갈 사람도 없어 이곳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게 문 다시 열려고 막 나왔을 때 우리를 만났다고 했다.


나마스테는 다섯 군데에서 보시를 한다고 쓰여 있다. 이곳은 3호점으로 2013년 4월 1일부터 연중무휴라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이 없다. 바로 국수 한 그릇을 받았다. 사찰음식이라 잔치국수 맛이 일품이다. 이 국수는 우리 농산물을 쓰니 국물도 남기지 말라고 쓰여 있다. 배가 불러 국물을 남겼는데 아저씨는 빵까지 챙겨와 주신다. 뜨거운 대추차도 같이. 비 오는 날 대추차, 두 말이 필요 없다. 몸이 따뜻해 졌다.


아저씨는 가게 문을 열겠다고 일어나며 이리저리 돌아보라며 방향을 알려준다. 셔틀버스가 운행되는데 만의 하나 일요일이라 안 하면 또 데리러 오시겠단다. 지금까지의 친절도 감동이고 이야기꺼리도 많다고 하니 당신도 오늘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릇을 반납하며 보니 복전함이 있다. 아저씨 몫까지 조금 넣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하도 넓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장교나 사병이 같은 묘역이다. 장군은 따로 있다. 남편은 장군이 아니니 장병묘역 쪽으로 가다보니 국가원수 묘역이 있다. 대통령은 동작동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궁금해 올라가 보니 최규하님과 영부인 홍기님의 합장묘와 비석이 있다. 두 세분이 더 오실 수 있다. 어느 대통령이 이곳으로 올까.


장병묘역은 봉분은 없고 비석만 있다. 어느 이병 비석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군대 가서 훈련 마치고 겨우 이병을 달았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묻혔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국립묘지에 묻히는 게 영광만이 아니고 비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순국선열의 묘역은 봉분과 비석이 있고 비석엔 경력과 묘비명도 있다. 한 분 한 분의 묘도 넓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으니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될 것이다.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 의사상자 국가사화공헌자 독도의용수비대 등등의 묘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장병묘역이 제일 넓어 나는 나중에 어디쯤에 묻힐까 가늠도 못하겠다. 1982년 8월 27일 사병 안장을 시작으로 1985년 국립묘지 준공, 1996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니 4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 기차시간에 맞춰 나오다 책자 하나 얻으려 민원 안내실에 들렀다. 그곳에서 셔틀버스“보훈모시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현충원 각 묘역을 돌아 현충원역으로 가는 코스다. 배차시간은 30분 간격이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세고 기온이 떨어져 걷기 좋은 날씨는 아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역 까지 왔다. 지하철 타는 곳에 크~게 몇 군데나 보훈모시미 안내가 붙어 있다. 왜 갈 때는 못 봤지. 2번 출구 쪽에서 보훈모시미가 정차 출발하는데 우리가 3번 출구로 나가서 못 본 것 같다.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려고 물어보지도 않고 3번 출구로 나갔던 것은 아닐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아저씨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유가족 및 참배객에게 무료로 중식을 제공하는 나마스테도 몰랐을 것이다. 오늘 비는 반갑고 고마운 비가 맞다. 아니 복비다. 세상은 좋은 사람들 천지다. 나마스테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윤복순


 


비가 온다. 오랜 봄 가뭄에 내리는 비라 외출이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오늘은 국립대전현충원에 간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어느 해 추석 성묫길에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죽으면 이곳(가족묘지)으로 올까 국립묘지로 갈까?” “국립묘지로 가고 싶네.” 국립묘지로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는 화장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다.


우리 집안엔 현충원에 안장된 분이 한 사람도 없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선국선열 등등도 없고 6.25전사자도 없고 군대생활 하다 사고 당한 사람도 순직자도 없다. 조상대대로 훌륭한 사람도 없지만 보통 서민으로 무탈하게 살아온 것 같다. 남편이 30년 가까이 군대생활을 했기에 현충원에 갈 자격이 있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는지 오늘 비도 오는데 처음으로 간다. 남편은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 두세 번 가보았다고 한다. 매일매일 사망자가 현충원에 오지만 바로 봉안식을 하지 않고 그 당시엔 일주일에 한 번 했다고 한다. 그때 특히 사병 사망자가 많을 경우 장교들이 봉안식에 가 주었단다. 남편이 예편한지도 2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에서 관광안내소에 가 물으니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머리를 써서 3번 출구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거리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걷기로 했다. 바람까지 분다. 현충원 방향 쪽으로 나왔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저씨 한 분이 가게 앞에서 트럭에 타려고 하고 있다. “이쪽으로 쭉 가면 현충원이 나올까요?” 아저씨는 웃으며 차에 타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걸어갈 만 하다고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신호에 걸려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타라는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 아저씨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을 뿐 아니라 바람에 맞서 걸으려니 쉽지 않다. 무엇보다 두 번이나 사양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주는 것만 복 짓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복 받는 일이다. 차에 탔다. 당신도 현충원에 가는 길이란다. 형님이 그곳에 계셔 자주 가는 편이라며 참배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2Km도 넘어 비가 오니 걷기엔 좀 멀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현충원에서 걸을 만한 둘레길에서 내려 줬으면 했더니 “저랑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한다. 차를 태워줘서 시간을 30~40분 벌었는데 그 정도는 대접해야 할 것 같았다. “잘 됐어요, 밥을 어디서 먹을까 했는데 아시는 곳으로 갑시다.” 현충원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무료 국수 공양을 하는 구암사 나눔의 집 “나마스테”다. 아저씨는 일을 하러 나왔는데 비가 와서 일도 못하고 누구랑 점심 먹으러 갈 사람도 없어 이곳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게 문 다시 열려고 막 나왔을 때 우리를 만났다고 했다.


나마스테는 다섯 군데에서 보시를 한다고 쓰여 있다. 이곳은 3호점으로 2013년 4월 1일부터 연중무휴라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이 없다. 바로 국수 한 그릇을 받았다. 사찰음식이라 잔치국수 맛이 일품이다. 이 국수는 우리 농산물을 쓰니 국물도 남기지 말라고 쓰여 있다. 배가 불러 국물을 남겼는데 아저씨는 빵까지 챙겨와 주신다. 뜨거운 대추차도 같이. 비 오는 날 대추차, 두 말이 필요 없다. 몸이 따뜻해 졌다.


아저씨는 가게 문을 열겠다고 일어나며 이리저리 돌아보라며 방향을 알려준다. 셔틀버스가 운행되는데 만의 하나 일요일이라 안 하면 또 데리러 오시겠단다. 지금까지의 친절도 감동이고 이야기꺼리도 많다고 하니 당신도 오늘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릇을 반납하며 보니 복전함이 있다. 아저씨 몫까지 조금 넣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하도 넓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장교나 사병이 같은 묘역이다. 장군은 따로 있다. 남편은 장군이 아니니 장병묘역 쪽으로 가다보니 국가원수 묘역이 있다. 대통령은 동작동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궁금해 올라가 보니 최규하님과 영부인 홍기님의 합장묘와 비석이 있다. 두 세분이 더 오실 수 있다. 어느 대통령이 이곳으로 올까.


장병묘역은 봉분은 없고 비석만 있다. 어느 이병 비석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군대 가서 훈련 마치고 겨우 이병을 달았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묻혔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국립묘지에 묻히는 게 영광만이 아니고 비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순국선열의 묘역은 봉분과 비석이 있고 비석엔 경력과 묘비명도 있다. 한 분 한 분의 묘도 넓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으니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될 것이다.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 의사상자 국가사화공헌자 독도의용수비대 등등의 묘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장병묘역이 제일 넓어 나는 나중에 어디쯤에 묻힐까 가늠도 못하겠다. 1982년 8월 27일 사병 안장을 시작으로 1985년 국립묘지 준공, 1996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니 40년이 넘었다.



서대전역 기차시간에 맞춰 나오다 책자 하나 얻으려 민원 안내실에 들렀다. 그곳에서 셔틀버스“보훈모시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 현충원역에서 현충원 각 묘역을 돌아 현충원역으로 가는 코스다. 배차시간은 30분 간격이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세고 기온이 떨어져 걷기 좋은 날씨는 아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역 까지 왔다. 지하철 타는 곳에 크~게 몇 군데나 보훈모시미 안내가 붙어 있다. 왜 갈 때는 못 봤지. 2번 출구 쪽에서 보훈모시미가 정차 출발하는데 우리가 3번 출구로 나가서 못 본 것 같다.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려고 물어보지도 않고 3번 출구로 나갔던 것은 아닐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아저씨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유가족 및 참배객에게 무료로 중식을 제공하는 나마스테도 몰랐을 것이다. 오늘 비는 반갑고 고마운 비가 맞다. 아니 복비다. 세상은 좋은 사람들 천지다. 나마스테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23-03-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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