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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의 삼남대로를 찾아서(2-1)
▲ 여산, 황화정에서 쑥고개까지



채수훈(왕궁면장)



 삼남대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남 지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조선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각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9개 대로가 있었고, 삼남대로가 제7로에 해당한다. 이 대로는 원래 한양 숭례문에서부터 제주 관덕정까지 이르는 길이다.?한양 도성에서 출발하여 한강 동작나루, 경기도 과천, 유천, 청호역(수원), 진위, 성환역, 충청남도 천안과 차령, 공주시의 공주, 노성, 은진, 익산의 여산과 왕궁, 완주 삼례역, 정읍시의 태인과 정읍, 갈재, 전라남도 장성, 나주, 영암 그리고 해남에서 배를 타고 제주 조천포에서 내려 관덕정까지 970리 길이었다.
  호남의 관문 익산의 삼남대로는 여산면을 관통하고 왕궁면 경계를 지난다. 그 구간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인 쟁목고개에서 시작하여 여산과 왕궁의 경계인 쑥고개를 넘어서 백제 왕도 왕궁과 완주의 경계인 우주로를 타고 삼례나들목 부근까지 총 19.2km에 해당한다.
  우리는 여산과 왕궁으로 나누어 옛길을 찾아가 보고자 한다. 첫 번째가 여산면 대로로써 쟁목고개 ? 월곡마을 ? 여산면 소재지 ? 신막마을 ? 연명교차로 ? 쑥고개까지 총 6.8km이다. 옛 삼남대로는 일제강점기 반듯한 국도 1호로 다시 현대에 4차선 신 국도가 뻥 뚫리면서 한적한 시골길로 변모하였다. 오랜 세월 속에 사람이 걷던 길이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로 기능이 변화된 셈이다.
  여산면의 삼남대로는 한양에서 제주로 향할 때 옛 익산군 여산부 황화면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논산시 연무읍으로 바뀌었다.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전북 땅을 충남으로 강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황화에는 전라도 관찰사가 부임할 당시 신구임무 교대식을 하는 황화정이 있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대신 황화3리 경로당 앞에 황화정비가 있어서 그 기록을 유추할 수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행정 경계인 쟁목고개를 넘어서면 여산 땅에 들어선다. ‘호남의 첫 고을, 월곡’이라는 표지석이 반겨 맞이해 준다. 달빛이 골짜기에 가득한 마을 이름이 정겹게 느껴진다.
  여산은 1912년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까지 익산의 중심지였다. 조선 정종 때 여량과 낭산 두 고을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서 여산현(礪山縣)이라 했다. 세종 때 어머니 원경왕후의 외향이라서 군으로 승격하였다. 또, 다시 숙종 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본향이라서 부로 승격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익산군에 병합되면서 여산면이 되었다. 여산은 옛 문헌에도 심심찮게 언급된다.
   『난중일기』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에 오르며 여산에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
  “1597년 4월 21일. 맑음. … 저녁에 여산 관노의 집에서 잤다. 한밤중에 홀로 앉았으니, 비통한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했다.
   『춘향전』에는 이도령이 전라도에 암행어사로 행차하며 여산을 지나는 대사가 나온다.
  “황화정이, 지아미 고개를 얼른 넘어 여산읍을 당도하였고나. 그때의 어사또는 여산이 전라도 초입이라 서리 역졸을 각 처로 분발헐제”
  다산 정약용이 1801년에 한양에서 형 정약전과 남도로 유배를 떠날 때 동행했던 길이기도 하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이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의 깃발 아래 조선 왕조를 척결하기 위해 한양으로 진격했던 길이다. 이처럼 삼남대로는 519년의 조선 역사만큼 수많은 애환이 스며있는 길이다.
  옛날 사람들이 한양과 남도를 오르내렸던 여산. 그 흔적이라도 알 수 있게 소박한 전시실이라도 갖춰놓으면 어떨까 싶다.
  여산면 소재지는 한적한 농촌이다. 익산의 오래된 고을답게 여산동헌과 수령 5백 년 넘은 느티나무, 여산향교, 사찰 등이 옛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을 가늠케 한다. 여산에 인물을 빼어놓을 수 없다. 동헌 옆의 척화비, 선정비 등 9기가 있는데 시대별 인물상을 짐작할 수 있는 금석문이라 할 수 있다. 여산 송씨의 시조 묘가 천호산 자락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여산 관아는 여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여산동헌과 숲정이는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동서양 종교사상이 충돌했던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천주교인들이 가혹한 형벌로 순교 당한 곳이다.
  여산면 소재지에서 연명교차로까지 구간은 삼남대로이자 국도 1호와 겹친다. 일제가 구불구불한 삼남 길을 식량 수탈을 위한 반듯한 신작로를 건설하면서 일부 구간이 겹치고 있다. 그 중간의 신막은 새 술막의 한자표기이다. 이 마을은 한양 나들이 큰길로써 도로 양쪽에 술집과 숙박시설이 있었고, 관에서 운영하는 영녕원이 인근에 있었다. 여산의 대표적인 마을로써 도로에는 두 개의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산의 삼남대로는 연명교차로에서 이별을 고한다. 연명(延命)의 우리말은 삼거리로써 여산, 금마, 왕궁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이 있다. 남쪽으로 직진하면 여산 원수리와 왕궁 용화리의 경계인 쑥고개를 넘어 금마 쪽 국도 1호인 호남로로 향한다. 연명교차로에서 서쪽 길로 들어서면 옛 삼남대로로써 쑥고개가 있다. 연명삼거리와 왕궁 도내골 사이의 고개 이름이다.
  여산서 왕궁으로 넘어가는 두 고개가 쑥고개로 공교롭게도 명칭이 같다. 쑥고개는 숯을 굽던 고개라 하여 숯고개라고도 불렸으며 한자어로 탄현(炭峴)이라 한다. 고개의 명칭이 같기에 헷갈릴 수 있다. 쑥고개는 익산의 주산 천호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삼남대로의 쑥고개를 넘어 시대산으로 내려온다. 이 산에서 국도 1호의 쑥고개인 생태통로를 넘어 용화산과 미륵산에서 호남평야를 마주하며 우뚝 솟아오른다.
  이같이 연명교차로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두 길은 왕궁의 동서 경계를 타고 삼례에서 다시 만나 전주로 이어진다.


23-03-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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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 조합장님! 감사드립니다!
청년 농업인 응원합니다
익산애 감사합니다
역시 익산! 역시! 한병도!
슬픈세상 슬픈 현실
길, 문득 사라지고 9
눈높이 사랑
재미있는 사자성어 (고사성어)
없다고 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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