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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담배 생각에

칼럼리스트

김성중



햇볕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낙엽 밟는 소리를 배경으로 오솔길을 걸으면서 신선한 햇볕을 온몸으로 느끼는 이 쾌감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든든한 행복입니다.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길 가 벤치에 앉아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년의 신사를 보니 문득 호젓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유혹까지도 느낍니다. 때론 담배 생각에 잠 못 이룬 적도 있었으니까요.

미국 원주민에게 담배는 평화와 협동을 상징했습니다. 17세기 미국을 횡단한 프랑스 선교사 자크 카르티에는 원주민에게 담배를 건네면 무기를 내려놓는 것을 본 후 담배를 ‘평화와 전쟁의 신이자 삶과 죽음의 중재자’로 평했습니다. 이러한 담배는 미국 원주민으로부터 유럽을 통해 인도양을 거쳐 일본 또는 중국을 통해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반에는 담배 피우는 일에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성이 남성보다 더 피웠다고 합니다. 당시 유교적인 굴레에 얽매인 여성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양반댁 마나님들은 외출할 때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든 담배 전담 여종을 뒤따르게 할 정도였습니다.

누구 앞에서나 담배를 피워도 논란이 없다가 광해군이 궁중에 숙직하는 문관들이 모여 흡연하는 것을 보고는 “입 냄새가 좋지 않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담배에 관한 예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후로 서민이나 하인들은 상전 앞에서,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기시되었습니다.

저자 이옥(李鈺·1760~1815)이 쓴 '연경(煙經)'이란 책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담배를 경전의 반열까지 올렸습니다. 그는 담배가 조선에 전래된 지 200년이 넘어 일상용품이 됐으며 각종 흡연도구도 지천으로 깔려 있고, 그 품종 또한 다양함에도 그에 전문서적이 없음을 한탄해 이 책을 지었다고 본문에서 밝혔습니다. 조선에 담배가 들어 온 연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 가운데 정조가 가장 유명한 담배 예찬론자입니다. 정조는 "담배가 아니면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꽉 막힌 심정을 뚫어주지 못한다."며 "담배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 하고자 한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이를 계기로 백성들이 비상약으로 담배를 구비해 남녀노소가 활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피카소와 헤밍웨이의 손에는 늘 담배가 있었습니다. 처칠, 맥아더, 임어당, 마크 트웨인도 유명한 애연가였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내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천 번이나 끊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설 자리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금연하는 것이 시대적 대세가 되었습니다. 모든 이가 애용하는 기호품으로 인기가 있었던 담배가 지금은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양이도 쥐를 잡을 때는 도망갈 곳은 남겨 두고 몬다는데 한국에서 흡연자들은 이보다도 못한 처지로 몰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습니다.

사무실, 공원, 광장, 버스정류장 등으로 금연구역은 늘어났지만 걸어가면서 피우거나 뒷골목에 떼로 모여서 피우는 흡연자들이 늘면서 비흡연자들도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흡연자들을 죄인처럼 취급하는 사회풍속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죽하면 흡연자 900만 명이 뭉쳐 ‘애연가당’을 만들자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정당이 생긴다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도 궁금해집니다.

최근 비가 쏟아지면 한 번씩 겪는 도심 속 '물난리'는 아직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장마철에만 겪었던 이러한 물난리는 열대성 소나기의 영향으로 더 자주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섞이면서 빗물이 빠져나가는 통로를 막아 역류가 발생하여 온 마을이 침수 피해를 당하는 장면을 자주 봅니다. 꽁초를 길바닥에 과감하게 버리는 것보다 빗물받이에 쑤셔 넣어 보이지 않게 하고, 청소부들이 발견하지 못하게 꼭꼭 숨기려 하는 흡연자의 착한 마음씨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22-11-1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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