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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2-11-21 13: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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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아름다움
▲ 윤복순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한다. 50부터 75세 까지가 가을이란다. 가을을 다 보내지도 않은 나이인데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런 상태로 백세까지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변화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아직 겨울은 맞보지도 못하고 늦가을도 남았는데.

돌이켜 보니 무얼 배울 때가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림? 악기? 혼자서도 배울 수 있고 이웃에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생각하다 캘리그라피를 떠 올렸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몇 강좌가 있다. 당장 배워보기로 하고 붓을 사러 갔더니 동네 문방구에 없다. 딸이 바로 사 보내겠단다.

저녁때 5~6년 전에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아주머니가 왔다. “또 공부하네.” 그녀는 내가 소설책을 보거나 법화경을 쓰고 있어도 공부한다고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도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냐며 관심을 보였었다.

그때 그녀는 영어공부를 한다고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 세탁기가 고장 나서 A/S를 신청하려는데 모델명을 물었다고 한다. 영어를 몰라 잘 안 보인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단다. 자존심이 상하고 부아가 나서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주민자치센터에 마침 영어반이 있어 등록을 했다. 그런데 A B C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회화 위주라서 당신은 따라 갈 수가 없어 그만 두었단다. 두 번이나 무력감을 경험한 그녀가 딸에게 말해 A B C부터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비타민제를 사러 왔었는데 거기에 쓰여 있는 B D E등을 읽으며 꽤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영어를 읽을 줄 아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칠십 줄인 그녀의 용기가 대단해 그때 박수를 많이 쳤다. 혹시라도 공부하다 모르는 것 있으면 가지고 오시라고 했다. 물론 나도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라도 물어 봐 서로 알아가자고 하니 그녀가 많이 좋아 했다. 영어책을 가지고 온 적은 없다.

그리고 오늘, 이제는 영어 공부도 운동도 다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으니 부럽단다. 사실 나도 재미있는 것이 없으나, 앞으로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모르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고 하니 당신도 할 만한 것을 알려 달라고 한다.

며칠 동안 쓴 아니 그린 캘리그라피를 보여줬다. 형편없어 누구든지 “이 정도는 나도 하지.”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관심을 보인다. 그렇잖아도 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예쁜 글씨 반 모집을 했단다. “이런 것은 배워서 어디 다 쓰냐.” 하고 신청하지 않았단다. 당장은 쓸 데 없어도 앞으로 생길지 모르니 배우자고 했다. 하다못해 손자 용돈 줄 때도 말만 하고 주는 것보다 예쁘게 좋은 글 써서 주면 좋지 않을까?

그녀가 일기를 쓴다고 한다. 딸이 치매 걸리지 않으려면 꼭 일기는 써야한다고 해서 시작했단다. 처음엔 글씨를 정성들여서 썼는데 지금은 삐딱하니 앉아서 대충 쓴다고 한다. 일기쓰기 시작했다는 말에 나는 또 박수를 오래 쳤다. 한 줄을 쓰던 두 줄을 쓰던 정성 드려 쓰라고 하니 이제는 그것도 재미가 없단다.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이렇게 재미가 없어서 어떻게 할까.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니 재미있다, 재미있다 하고 살자고 했다.

익산수필, 약사문예 책 두 권과 제약회사 직원이 주고 간 볼펜을 챙겨 드렸다. 옛날 밥상을 책상으로 쓰는데 그 위에 책을 두고 나를 생각하면 정성껏 쓸 것 같고 오늘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것 같다며 고맙다고 한다.

“오늘은 일기 쓸 거리가 많네.” 많이 안 써도 돼요. 그 대신 정성껏 쓰세요. 처음에는 있었던 일을 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느낀 것을 쓰게 될게예요.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있어 괜찮은 글이 될 것이라고 하니, “정말 그럴까?” 그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나도 정성을 다해 쓴다. 아니 선을 긋는다. 붓 잡는 방법을 몰라 선의 굵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지가 않다. 힘을 똑같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줄 하나 긋기가 이리 어려운 줄 몰랐다.

글씨연습을 하는 동안 나도 꽤 진지하다. 최근 들어 이렇게 정신집중 하는 것 오랜 만이다. 선생님은 글씨 설명을 하면서 써도 빨라 나는 따라갈 수가 없다. “말에도 꽃이 핀다.”를 쓰는데 나는 ‘말에도’ 밖에 못 썼는데 화면을 정지 시킬 줄을 몰라 애를 태우다 약 사러 온 학생에게 물어 정지, 돌려보기, 전에 본 것 빨리 지나가기, 등을 배웠다. 남들 다 아는 것을 나는 이제 배우면서 신바람이 났다. 꾹 눌러 놓고 천천히 따라 쓸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연세도 있는데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해 준다. 내 또래 아주머니들이 다음 달엔 동사무소의 예쁜 글씨 반에 등록을 해야겠단다. 거기서 잘 배워와 나 좀 알려달라고 했다.

요즘 대화의 언어가 달라졌다. 덥다, 뭐가 얼마 올랐다, 정치인 욕하기가 아니라 “어디 연습한 것 한 번 내놔 봐.”다. 관심사가 달라진 만큼 평상시 쓰던 말이 아니니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나이 먹었다고 그냥저냥 살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다짐을 했다.

얼른 가서 일기 써야겠다며 그녀가 일어난다. 책을 들고 나가는 뒷모습이 뭔가 할 일이 있어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내가 동영상을 보며 캘리그라피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리는 것도 아닌 것을 하며, 골몰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좋다고 멋지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나도 안 해본 것을 하니 호기심이 생기고 자음을 크게 쓸까, 모음을 휘어지게 써볼까, 옆으로 길게 쓸까, 위아래로 길게 쓸까 궁리를 한다. 이렇게 머리를 쓰면 나도 창작자가 되겠다.

백세시대에 칠십 줄의 내가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도전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22-09-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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