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중에 큰 바위 얼굴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사는 소년 어니스트가 마을 앞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길 기다린다는 작품이다.

깍아지른 듯한 바위산의 큰 바위 얼굴은 위대한 인물의 등장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 출신의 위대한 인물이 등장했다며 금의환향을 할 때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과 일치하는 위대한 인물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환영했지만 소년 어니스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어니스트가 고대하는 큰 바위 얼굴은 내면의 아름다움, 깊은 사상과 인간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지성이 겸비된 위인이었기에 큰 바위 얼굴이라며 나타난 돈 많은 부자, 고위급 장군, 언변으로 명성을 얻은 정치인, 훌륭한 작품을 쓴 시인일 수 없었다.

그 나마 큰 바위 얼굴에 근접했다는 시인이 백발의 노인이 된 어니스트의 언행을 보고 어니스트야 말로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이라며 마을 주민들에게 알린다는 교훈적, 상징적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니스트는 본인이 아닌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의 등장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자칭 큰 바위 얼굴이라며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은 무수하게 많다. 특히 정치권 언저리에는 자신들이 국민과 시민을 위해 가장 올바르게 일할 수 있는 선량이라며 유력정치인에게 줄대기를 하며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역량을 키우고 내공을 다지기 보다는 서울만 바라보며, 중앙의 정치권 인사의 낙점만 바라는 쉬운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가 모름지기 백성을 위한 것이라면 진지한 성찰, 시민의 자리로 내려가는 헌신성, 깊은 고뇌와 결단이 요구됨에도 껍데기만 번지르르 한 채 내실이 없는 가짜 큰 바위 얼굴이 넘쳐나고 있다.

자칭 큰 바위 얼굴이라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부끄러운 자화상이 되고 마는 사람들이 허다한 현실이다.

호손의 작품인 큰 바위 얼굴과 같이 우리 시대에도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을 찾기가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스스로 허상을 쫓고 거짓과 술수로 포장된 정치 상품을 큰 바위 얼굴이라며 오판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물 뒤집어 보기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야말로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을 찾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 각성과 지혜가 큰 바위 얼굴을 찾아나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평원군 전에도 큰 바위 얼굴이 주는 교훈과 유사한 고사가 실려 있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엽에 조나라의 혜문왕이 강대국인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국력이 약했던 조나라의 혜문왕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초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기로 하고 자신의 동생인 재상 평원군을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기로 했다.

당시 평원군에게는 약 3,000명의 식객이 머무르며 평원군의 은혜를 입고 있었다. 20명의 수행원을 선발해 초나라로 떠나기로 한 평원군은 열아홉을 선발하고 나머지 한 사람을 선발하는데 애를 먹었다. 

대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지혜롭고 유능한 수행원을 원했던 평원군의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이 때 모수라는 식객이 수행원으로 가겠다며 자청을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평원군이 잘 알지 못하는 자였다. 모수의 됨됨이가 궁금했던 평원군은 “자네가 내 집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모수가 대답하길 “3년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평원군이 실망하여 말하길 “탁월한 재능을 갖춘 사람은 뾰족한 송곳처럼 주머니 속에 감춰있어도 그 끝이 뾰족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법일세.

하지만 자네가 내 집에 3년 동안 머물러 있었지만 이름도 듣지 못했고 뛰어난 평가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자네를 믿고 큰일을 맡기겠는가”라고 면박을 주었다.

이에 모수가 답하길 “제가 3년 동안이나 재상 어른의 은덕을 입는 식객으로 살았으나 여지껏 단 한 차례도 재상어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해 제 능력을 뾰족한 송곳처럼 드러낼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 때가 되었으니 재상어른의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하면 뾰족한 끝 뿐 아니라 송곳의 손잡이까지 모두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라고 여쭈었다. 모수의 답변이 빼어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어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합류시켰고 그 결과 초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아 원병을 얻어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고사에서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가 나오게 되었다. 낭중지추는 능력 있는 훌륭한 사람은 숨어있다 해도 자연스럽게 그 됨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라고 설쳐대는 마당에 국민들이 낭중지추의 뜻을 되새기며 평원군의 사람 보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선량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표리부동하지 않고 모수와 같이 낭중지추의 지혜와 역량을 보여 줌으로써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진정한 큰바위 얼굴이었으면 한다.

시절이 어수선하기에, 나는 여전히 내가 아닌 우리의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낭중지추의 미덕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