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이 생겼다. 남편은 결혼식장에 갔다. 나까지 가야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자유부인이 되었다. 일 년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주말부부를 오래한 탓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요일을 같이 보내는 것이 철칙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도 없다. 평일엔 하루 종일 약국에 있고, 일요일은 남편과 같이 있으니 남편 휴대폰이 곧 나의 연락처인 것이다.

자유부인이 되는 날이면 혼자서 가까운 곳을 여행한다. 익산에 살면서도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로이 다니는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내 마음 쓰이는 대로 혼자서 하는 여행이 참으로 즐겁다.

정상에서 미륵산까지 가려다가 잠시 발을 멈췄다. 작년 여름 일 때문이다.

그날도 혼자서 두동교회에 갔다. 이 교회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지어진 교회다. 1920년대 건축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기역(ㄱ)자 교회다. 그 때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서 한쪽엔 남자가 다른 쪽엔 여자가 앉고, 목사님은 중앙에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커튼으로 중간 부분을 가려 남녀가 얼굴을 바라 볼 수 없게 했단다. 출입문도 두 곳이다.

교회는 작고 소박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속마음을 내 보이고 싶어졌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성당들과는 대조적이다. 몇 백 년 된 그곳 성당들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압감이 들었었다. 

거대하고 엄숙했던 유럽 성당들과 달리 두동교회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천정은 한옥의 대청같이 서까래가 다 보이게 백회를 발랐다. 이런 구조 때문인지 교회 안은 편안했다. 작은 것은 사람을 진솔하게 만드는지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교회 가까운 곳에 편백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그 숲에서 몸도 마음도 피톤치드 목욕을 했다. 나무에 익산 둘레길 리본이 묶여 있었다. 원래 계획은 편백나무 숲까지였는데 욕심이 생겼다. 둘레길을 걷고 싶었다.

둘레길은 잘 정리되어 있고, 산 속으로 걷기 때문에 덥지도 않았다. 복더위라서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도 잠시 임도가 나오면서 등산로가 끝났다. 리본도 없다. 왼쪽 방향으로 가야할까 오른쪽으로 가야할까? 오른쪽으로 잡았다. 조금 걸으니 또 갈림길이 나왔다. 우회전을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다. 동네도 나오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우회전을 했다. 두시간 이상 걸은 것 같았다. 

무섬증이 났다. 공포감이랄까 불안감이랄까. 처음 가보는 길이다. 얼마쯤에 숭림사가 있을까. 과연 숭림사가 나오기는 할까.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고, 여행의 즐거움은 더더욱 맛볼 수 없었다.

안정을 찾아야 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나는 밥부터 먹는다. 속이 든든해야 긍정적인 생각이 나온다. 긍정적 사고는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집에서 나설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내가 예쁘지 않아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부자가 아니라서 자유롭고 넉넉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아도 나이를 먹었어도 여자는 여자다. 처음으로 내가 남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좀 덜 불안했을까.

두어 시간을 더 헤매 웅포문화센터에 도착했다. 사무실 앞에서 내 또래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숭림사는 어디쯤 있어요?”

여기가 숭림사란다. 절은 보이지 않았다. 숭림사만 찾으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택시라도 불러 탈 수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나보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다며 자기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낚시를 왔단다. 아주머니는 마치 내가 환자인양 이것저것 챙겨주며 융숭하게 대접해 줬다.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무사히 그리고 편안히 집에 왔다. 혼자 길을 떠나면, 특히 초행길에선 알게 모르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 고마움을 표시할 어떤 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겁도 없고, 준비성도 없고, 예의도 없다.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그 날 뒤로 배낭에 종합 비타민제 한 갑씩 넣어가지고 다닌다.

작년 여름 일이 떠올라 미륵산으로 가지 않았다. 물론 이 길은 여러번 다녀 본 길이다. 이 코스도 사람이 없다. 조각공원에서 되짚어 용화산에 또 올랐다. 몇 번을 망설이다 사람들이 많은 조각공원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 남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