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내흉(外愚內凶)
- 겉은 어리석어도 속은 음흉함 -

한 생원이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안장을 갖춘 말을 타고 노복을 시켜 그 말을 몰게 하고 노복에게 말하기를 “서울의 인심은 맹랑한 일이 많아서 눈을 감으면 당장에 코를 베어가니 조심하거라” 하였다.

서울에 당도하여 숙소에 가는 중에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을 만나 그 집에 들어가면서 노복에게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노복은 즉시 말안장을 시장에 팔고 돈을 가슴 깊숙이 감추고나서 말 고삐를 잡고 양손을 팔장 끼고 옷소매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앉아 있었다.

생원이 나와 본즉 말에는 안장이 없고 노복은 옷소매 사이에 머리를 묻고 앉아 있는 고로, 소리 질러 말하기를 “말안장은 어디에 두고 어찌하여 머리는 파묻고 앉아 있는냐?” 하니 그 노복은 머리도 들지 않은채 대답하기를 “만약 머리를 들면 남의 코를 베이려고 그러느냐?” 나는 이미 그말을 들었으니 나를 속일 수 있겠는가? 하니 생원이 하는 말 “나다” 하니 이에 그 노복은 머리를 들었다. 생원이 묻기를 “말안장은 어디에 두었는고?” 이에 노복이 놀라며 하는 말 “코를 잃고 싶지 않아 단지 머리를 파묻어 코를 감추었을 따름이라, 말안장이 간곳을 모르겠습니다” 한다. “서울 안의 인심이 그러한 까닭으로 내가 신신부탁을 하지 않았더냐?” 한즉 노복이 말하기를 “코 베이는 것만 조심하라는 분부뿐이었지, 말안장 조심하라는 분부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방심을 했을 뿐입니다.” 하니 생원이 아무 말도 못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