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도 성묘 행차냐

4월 어느날 한 양반이 성묫길 날짜를 잡아놓고 계집종을 불러 ‘내가 내일 성묘를 가려 하니 너는 새벽밥을 지어라’ 일러놓고 그날밤 안방에서 잠을 잤다.

이에 계집종은 날이 밝기 전에 밥을 지어놓고 상전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데 동쪽이 점점 밝아져도 기침할 낌새가 없기에 창밖에 다가서 가만히 안방을 살펴보니 지금 한참 방사(房舍)를 즐기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년이 감히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물러나와 잠도 못자고 일찍 일어나 홀로 앉아 있음을 한탄하는데 이미 날이 밝아오고 닭들이 뜰 아래서 암수가 교합(交合)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여종이 입술을 삐죽이며 닭들을 보고 큰 소리로 ‘이놈들아 너희들도 성묘 행차를 떠나려 하느냐’ 하고 외치니 양반 내외가 서로 바라보며 부끄러워 아무 말 못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