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김경원

나무들이 빛을 받으려 하늘을 보고 있다. 긴 겨울에는 자연의 느낌을 가져오라 한다. 아름다움의 천착, 그 안에는 가난한 영혼을  불러내고 있다.

애상적으로 다가오는 안개 속의 자신들은 얼마나 깊은 지대에 있는 걸까? 해가 바뀌어도 국민들에게 환멸을 남겨주고 매서운 직격탄을 맞는 정치인들, 계속된 불황에 분식회계와 정경유착이라는 고질적인 먹이사슬에 얽힌 경제인...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검찰과 경찰도,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도, 그것뿐인가 심지어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카드빚에 내몰려 신용불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급증하는 가계 빚 때문에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런 와중에도 세상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물질과 효율을 내세워 권력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우리사회에는 이중성의 천국이다.

지식인 사회가 유달리 자정능력이 없고, 허위의식에 쉽게 노출되는 것도 같은 바탕에 이유가 있다. 가치 판단만 하더라도 한쪽에서는 종교적 도덕주의와 정치적 냉전주의의 경직된 틀이 다원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을 넘어 아직도 그 여세를 과시하는가 하면, 그 저변에는 천민 자본주의적 이기심과 도덕적 불감증, 그리고 정치 무관심의 늪이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해거름을 경계로, 그리고 배꼽을 사이에 두고 이율배반적인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러한 풍조에 대한 자지 모멸의 또 다른 속삭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자기모멸의 속삭임은 비판적 양심이 이중성의 구조에 짓눌려 제 음성을 낼 수 없을 때 들려오는 신음이다.

다시 말하면, 정작 가려운 곳은 두고 그 주위만을 맴돌거나 아예 남의 다리를 긁고 있어 시원하지가 않을 수 있다.

충분한 해답을 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만든다. 권력과 재력 앞에는 고작 또 하나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쉽게 자유로울 수 없는 작금의 몇몇 프로그램들은 철저한 자기반성의 전제 위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유혹하는 가벼움으로부터 스스로 몸을 털어내고 최소한의 무거움을 갖춘 좀 더 진중한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뉴스로부터 우리 사회와 우리 시대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자 하는, 나아가 그를 통해 좀 더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고자 하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람이 될 것이다.

마치 인류학자들과 함께 소수 부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 장기간 촬영하는 듯하다.

그들의 삶이 미개하고 원시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지켜보고 이해해야 하며 서구적 합법칙성을 도출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짜여 져 있거나 짜 맞추기 식의 보여주기 위한 한계를 탈피해야하며, 잔잔하고 생생한 감동을 던져주는 소리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해야 할 때이다.

민족이나 국가에는 역사가 있고, 지역이나 지방에는 향토사가 있으며, 마을에는 마을사가 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에는 역사가 있다. 한 개인의 삶은 더 큰 범위의 역사와 괴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맞물려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역사의 중심에 선 인물이 아닐수록 이야기는 보편성을 담보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고개를 동서로 남북으로 넘나들며 한반도의 등줄기를 달리고 있다. 달리고는 있지만 속도감은 전혀 없다.

지리산 록의 아이들이 놀이하면서 부르는 동요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산중에 들어와 화전을 일구며 살아온 할아버지의 삶은 함께 녹음된 매미소리로 더욱 안타깝고 그립기만 하다.

밀착된 소리가 건강하게 들려온다. 물리적으로 흩어져 있는 문화에서는 조성하기 힘든 지역 공동체 의식을 환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그 이상적인 그룹은 지나친 특수성과 지나친 일반성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그룹이다.

세상을 발밑에 두고 비웃거나 최신 유행만 쫓는 획일적 문화를 비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조화가 깨지고 마음의 결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할수록 그 마음의 구성들에는 새로운 발견과 희망을 맞이하고 평화의 싹을 틔우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