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원광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부 교수

나이 들면서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더욱 또렷해지는 것은 유전자(DNA)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과 침팬치의 유전자가 1.08%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 조그마한 차이가 인간과 침팬치를 차별화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삼라만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정한 규칙처럼 인간에게도 누구나 다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23쌍의 염색체를 간직하고 있다.
이 염색체 유전자의 미세한 코드차이에 따라서 우리는 불가항력도 장수의 축복도 누리게 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계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성장한 아들에게서 내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내 인자(因子)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궁극적으로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과 또 자연이 나의 확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저 이 모든 것이 큰 엄마의 품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연출이라는 푸념인 것이다.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저항하고 기획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축에 든다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 인간적인 삶이었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인생’이라는 엄숙한 흐름 앞에 나란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새삼 깨달을 때가 많아 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라는 문제를 2-30대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모색하게 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삶과 연관해 ‘생명체’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답이 쉬울 수도 있다.
생명이 있기에 삶이 있으며, 생명의 본질이 있으므로 그에 따른 삶의 형태와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이 들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인식은 우리의 본태인 DNA와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사람이 외양으로는 많이 변해 가면서 성장하며 완성되어지는 것 같지만 정작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인간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DNA이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퇴락해 버리거나 조금씩 진화해 나갈 뿐이다.
빗물이 강물에 떨어져 흔적이 없어 보여도 물의 본질은 그대로인 것처럼, 또 강물이 흘러 바다가 되면서 강물은 흔적도 없지만 여전히 물인 것처럼 기본 인자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 인생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도 세상을 살면서 사춘기 소년처럼 투정을 해본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을 하게 되면 혼자서 몹시 투덜거린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매번 속상해하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삶이었다. 소중한 사랑이요, 불변의 가치였다.
삶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점심이 되어 다시 점심밥을 먹는다. 또 얼마 지나 저녁이 되어 배가 고프면 저녁밥을 먹고 퐁퐁을 내려 설걷이를 거든다. 그것이 일상이요 대단한 삶이었다. 우리가 하루 세끼 같은 식사를 하는 것 같지만 같은 식사이면서도 또 다른 것이듯 나날이 다른 삶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똑같이 반복하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는 긍정의 씨톨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내가 계속 실망하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에 애정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내 속에서 ‘용서’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이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결론을 모두가 내리고 살아 간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나쁜 한 사람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속내는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이 많았다.
저널리스트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는 저서 ‘단순하게 살아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사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진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말 요즘 말하는 “슬로우 시티”는 가능한 것인가!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운전대만 천천히 돌린다고 슬로우 라이프가 우리에게 펼쳐질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마음과 환경 가운데 빠른 욕망바이러스가 꿈틀대고 있는데 무엇을 어쩌잔 말일까. 마허는 사람들이 생명현상의 모든 순환고리가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복잡한 삶 속에 허덕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삶 속에서의 단순함이란 순수나 솔직함이요 마음의 본원 자리로 늘 돌아가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기에 단순한 삶이란 기본에 충실하고 자신이 지닌 장점과 가능성을 아끼며 무겁게 쓰는 토대 위에 진정한 자유로 근검과 절제로 영글어진 자연스런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인간적인 삶의 요체가 되는 것임을 스스로 밝게하고 있다.
인생이 뭐 대단할 것도 없다. 이제 뭐 그리 대단한 타겟이 있을 것인가! 타겟을 세우자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냥 사랑의 마음으로 왔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어느 날은 별안간 의기소침하다가도 다시 친구가 그리워진다.
어느 날은 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끌어안고 다 포용하는 마음으로 나를 비운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DNA를 새삼 떠올려 보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