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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원광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법학박사 / 장규원

이성과 계몽
아주 옛날이야기 하나.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다른 생명체와 같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다.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에서 많은 이들이 여러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의미들 중의 하나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행위는 자신의 명령을 어긴 행위이기에 범죄인 셈이다. 그것은 선 자체인 하나님에 반하는 악이다. 결국 인간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그때부터 인간의 세계가 펼쳐진다. 선악과를 따 먹으라는 유혹은 뱀이었지만, 선악과를 따 먹은 결정은 인간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 곧 원죄라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인류 역사상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자유의지의 실현이다. 역설적으로 선악과 사건이 없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여전히 뛰어놀고 있었을 것이고, 인간의 문화는 없었을 것이다.
옛날이야기 둘. 유럽은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잔혹하게 처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 교황청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자 그 권위에 도전하는 많은 불순분자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암흑의 시대라고 해도 법은 존재하는지라, 무턱대고 그들을 때려잡을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어야 했다. 제거해야할 불순분자의 하나가 악마를 숭배했다는 이유로 처단되었다. 그러한 선례에 따라 악마를 숭배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마녀로 몰아 얼마든지 처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마녀가 이교도이거나 이교의 사주를 받았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녀로 몰아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마녀가 부린다는 요술도, 악마의 연회도 모두 상상의 산물이었기에 증명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고문을 통한 자백이었다. 피의자 마녀에 대한 고문이 눈감아지자 하늘을 날아 악마의 연회에 참석했다는 자백 등이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마녀사냥은 거침이 없었다. 역사 기록의 한 쪽에는 마녀사냥은 정당하다는 주장도 있었고, 그러한 주장들에 수백 년 동안 유럽 세계는 마녀재판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무지몽매함을 일깨워 밝은 빛으로 이끌겠다는 계몽사상의 덕택에 마녀재판은 사라졌다.
얼마 되지 않은 옛날이야기 셋.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은 확신에 찬 반유태주의자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유태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가정에선 자상한 아버지요, 성실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학살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은 중요치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유태인을 태운 수송열차의 출발 시간이 지켜져야 했고, 그의 모든 것은 상부의 지시였고,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굳게 믿었다. 추호도 자신이 끔찍한 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한 사회학자는 악의 평범성이라 하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조차 없는 무능, 제대로 말도 못하는 무능, 그리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무능이 곧 악의 뿌리라고 하였다.

결정론과 비결정론
이성과 계몽이 이 세계에 빛을 선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이성이 어떻게 광기를, 계몽이 어떻게 야만적일 수 있는가? 신의 섭리와도 맞바꾸고자 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믿을만한 것인가.
인류 역사와 함께 범죄 원인을 밝히려는 작업은 계속되어 왔다. 중세시대는 악마의 소행에 의하여 범죄가 야기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는 범죄원인이 된 악마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마녀재판이나 비과학적 방법으로 우연에 의하여 결과를 가려지는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중세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인간은 인간을 하나의 이성적 주체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신의 섭리가 지배하던 세상이 무너지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 자리를 채운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놓고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으므로 악을 이기고 선을 선택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이 비결정론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ㆍ심리학ㆍ사회적 특징에 의해 행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결정론이다. 어느 주장에 더 관심을 갖는가에 따라 범죄에 대한 생각과 범죄자의 처벌에 대한 논의가 좀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범죄자는 자유의지에 따라 악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악을 택함으로써 쾌락을 추구한 만큼 벌은 엄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면 죄를 짓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범죄자의 처우와 갱생을 통한 범죄예방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자유의지를 믿을 만한가
다양한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이야기한다. 법률의 관점에서 자유의지란 성년자로서 정신에 이상이나 장애가 없는 한, 선과 악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 상태라고 한다. 종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창조될 때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의지라고 그 의미를 새긴다. 철학의 관점에서는 외부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어떤 목적을 스스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라고 한다.
무리지어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윤리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윤리 의식에 대한 변화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사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본성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개개인의 행동 결과를 예측할 능력, 공감을 위한 능력, 사회의 도덕 기준들을 주관화하고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요구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자유의지를 설명할 때 쓰이는 요소들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윤리 기준에서 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어쩌면 생물학적 본성과 관련이 있다.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매양 같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둑질을 할 것이다. 굶지 않으려는, 그래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노력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굶어 죽어도 도둑질하지 말라는 숭고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윤리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덕담에 불과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진화론 관점에서 사회적 욕구보다 동물적 욕구가 오래되었다. 우리가 악이라고 규정한 것들 중에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도 생물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생각이 맞을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가? 자유의지가 없다면 행위의 책임을 제대로 따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