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돌고 돈다

▲ 원광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법학박사 / 장규원

죄와 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명제인양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말을 되새겨보면 많은 생각을 낳게 한다. 사람을 죽였다 해서 또 다른 생명을 앗아가는 사형이 과연 옳은 처사이고, 피해자 가족은 그로써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형사사법의 정의를 꾀하는 것일까.

명제인양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에 오히려 자칫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본질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인간만이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하여 누가 죽였는가를 밝혀내려하고, 수사와 재판이라는 복잡 요란한 제도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도 그럴까?

죄와 벌의 모습 중 죄의 모습은 어떠한가. 원죄(原罪, original sin)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죄보다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선행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음엔 더 잘하겠다고 맹세하며 용서의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살다보면 때로 그 기도의 응답을 받기도 한다.

한 친구가 도스또예프스끼 《죄와 벌》을 읽고 진실 된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자. 라스콜리니꼬프의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문제를 던져 준다.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지,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덕률은 어떤 것인지, 양심이란 무엇인지 등등.

《죄와 벌》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 작품이 윤리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어서가 아니라 작품 속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이 나의 삶과 중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곧 양심이 있다는 소리다. 약속이나 규칙을 어기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에 죄책감을 느낀다. 창밖에 퍼붓던 장마에 ‘이 비로 세상이 잠겼으면’ 하는 망상에 잠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고 나자 정말로 방방곡곡에서 홍수가 일어나 많은 수재민의 비참함이 뉴스에 보도되면 꺼림칙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하다못해 도둑도 훔치려고 한 물건을 훔쳐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꼬프가 만약 전당포의 노파를 죽이지 못했다면 아마도 더 깊은 죄책감에 빠졌을 것이다. 뼈저린 죄책감을 경험한 후에 사람은 진화된다.

사람 될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런데 벌 받은 사람은 착해질까?

형법은 아홉 가지 벌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징역과 금고, 그리고 구류는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 그래 자유롭지 못하게 구속하는 것이기에 자유형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의 집행을 행형(行刑)이라 하고, 교정(矯正)이란 용어가 같이 쓰이고 있다. 행형과 교정은 그 가지고 있는 뜻이 꼭 같지 않다. 교정은 형벌을 부과 받은 수형자에 대한 처우와 관리를, 행형은 형사소추ㆍ형사재판ㆍ형벌집행으로 이어지는 전체 형사사법체계의 한 구성요소로서 형의 집행이라는 의미가 보다 강하게 담겨있다.

형벌 받는 사람에 대하여 관련법은 “…교정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도모”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복귀는 옥살이를 다 했다고 그저 석방한다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복귀하여 죄짓지 않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재사회화의미를 담고 있다.

재사회화라는 글자를 곰곰이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그 뜻을 헤아리자면 사회화(社會化, socialization)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화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뜻을 새길 수 있다. 첫째, 한 인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익히는 과정, 즉 인간화 과정이다. 둘째, 한 인간이 그가 속한 집단의 규범이나 가치관, 또는 행위유형 등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 자라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화되어간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며 사람 되게 한다는 생각은 두 번째 의미에서 말하는 사회화의 관점이라 할 것이다. 재사회화는 일차적 사회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을 전제로 한다. 다만 범죄자의 경우는 이러한 사회화과정이 불충분하게 이루어졌거나 잘못 이루어졌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교정의 과정을 통해 사회화과정을 보충하거나 수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흉악한 범죄자를 사람답게 만들겠다고, 형법이나 교정학 교과서에서 상투적으로 떠드는 말처럼 ‘개선하여 사회복귀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곧 자유박탈의 근거로 충분한가?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틀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가지며, 개인의 자유는 사회 보호나 당사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때에만 제한할 수 있다. 모든 법의 기둥인 헌법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 나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다는 목적만으로 자유박탈의 근거로 삼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사회복귀를 위한 처분이라도 그것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부과되는 강제처분일 뿐이며, 이는 범죄자가 자신을 고치기 위해 원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보호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보호 대상은 어디까지나 사회이지 행위자가 아니다.

유행처럼 돌고 돈다

오늘날 인류는 지성과 이성에 있어서 최고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죄 지은 사람을 가두어 두고 처벌하는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도 사형이 있고, 조선 시대에도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 지금도 감옥에 가두고 뇌옥에 가뒀으며 동굴에 처박아 가뒀었다. 주홍글씨는 요즘도 활개를 치고 있다. 주물로 만든 족쇄는 첨단 디지털의 전자발찌로 나타났다. 벤담(Jeremy Bentham)이 꿈꿨던 파놉티콘은 카메라의 눈으로 도처에 깔려있다.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틀어막는 희생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필요악인양 받아들인다.

범죄의 질과 양이 종래의 형벌로는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 새로운, 다양한 제재가 논의되어 왔지만 그 참신한 제도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옛날옛적에도 있었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잔혹한 벌이 완화되고 정비되었을 뿐 응보나 복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죄와 벌의 모습은 면면히 이어져 왔고, 사고의 변화에 따라 처우의 다양화가 추구되었을뿐이다. 유행처럼 돌고 돈다.

법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살기 버거우면 남을 헤아려 줄 여유가 없다. 내 코가 석자인데… 죄와 벌은 같이 간다. 그래 죄도 벌도 유행처럼 돌고 돈다. 내 배부르면 흐뭇해져 어지간한 죄는 오죽하면 그랬겠노… 배고프면 짜증나 조그만 잘못도 큰 죄다. 무조건 벌 받아 마땅하고, 벌은 엄해야 한다. 귀찮아 내 눈에 안보이면 된다.

그러고 보면 현재 우리는 사는 게 참 힘든 것 같다. 소통이 존재하고 사람 향기가 전해지는 공간을 갖고자 하는 생각은 사치다. 그저 빡빡하다. 이래도 처벌이고 저래도 처벌이다. 어디 처벌을 담은 법률이 한둘이어야지. 이젠 너무 익숙하여 툭하면 처벌법이다. 힘의 사회, 통제의 사회는 무슨 수로 버텨나갈 수 있을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죄란 무엇인가, 벌이란 무엇인가를 시시콜콜 그 유형을 그 내용을 따지고 앞서 죄와 벌을 화두삼아 곰곰이 생각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