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부 교수 / 이강래

21세기 문명의 한계와 정신적 갈등 속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그 대안문화를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 북미 인디언이 하나의 화두로 등장했다. 수많은 백인 팬들이 모여 우리의 마당 굿과 비슷한 인디언의 ‘파우와우’를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인디언들은 끈질기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고 모든 생명 가진 것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생의 아름다움을 애써 노래한 나도 시인들이었다. 어머니 대지의 품속에서 사물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들에게서 음식과 옷, 약과 도구를 빌려쓰는 현자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자연 그 자체였고 오직 빌려다 쓰는 마음으로 깨끗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지혜였다. 그런 그들이 사라졌기에 감기우는 향수는 더 쓴가 보다.

인디언에게 교육은 온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나 할까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자연에 있고 ‘위대한 신비’라는 절대자는 따로 군림하기보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자연이 신전이며 바람이 그 손길이다. 어머니 대지와 위대한 세계가 펼쳐놓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디언의 생활이며 삶인 셈이다. 또한 한민족의 정서처럼 은근과 끈기를 중요하게 가르쳤고 힘든 것은 이겨내고 부족함을 참아야 했다. 학교 건물과 책이 따로 없는 이들에게 숲은 곧 학교였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산꼭대기에서 대지를 바라보며 명상과 환희를 체험하게 함이 필수과목이었다. 이를 통해 존재의 큰 행복 있음을 발견하고 그 근원을 사모하게 한 것이다.

태교의 경우에도 사뭇 종교적이었음을 본다. 이는 회임 후 몸가짐에 지극히 조심했던 우리 선조들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젖을 떼는 무렵까지가 아이들에게는 조심스런 영적 배양 기간이었다.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은 이 중요한 시기에 따로 사람과 떨어진 한적한 자연에 머물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눈 안에 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3-7살 까지는 지적성장시기 그리고 7살 이후부터는 평생교육시기로 진입한다는 교육학자들의 평설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들에게는 문자와 시계도 없었다. 신비가 깃든 자연을 ‘기호’따위로 가둬두기 싫어했으며 자연의 흐름에 살포시 기대온 그들에겐 시와 분으로 쪼개진 시간이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 만나러 올까요?”라고 묻는다면 “해가 저 나무에 걸리면”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연 현상을 중심으로 일출과 일몰, 달이 기울었다가 차는 기간 등을 사용했고 ‘9월’을 “단풍이 들 때”로 해서 자연 리듬에 따른 생물학적 시간에 맞춰져 있었으니 스마트폰을 꼭 챙기고 외출해야 하는 우리네 젊은이들은 요행인가 불행인가 말이다!

“미타쿠예 오야신”

이말은 ‘삼라만상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나의 친척이다’라는 다코타족 인디언들의 인사말인데, 저 유명한 동물학자 ‘시튼’은 세상만사를 모두 신성하게 받아들였던 그들의 높은 영적 수준에 주목하며 ‘태초의 만물은 산에 마음에 있었다. 모든 피조물은 다 영(靈)이었다-’로 시작하는 인디언 창세기를 떠올렸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슴 한 마리를 잡아도 깊은 애도의 옷깃을 여몄고, 절대 필요 이상으로 사냥하는 일도 삼갔다. 부(富)를 죄악시해 재산이 늘면 축제를 벌여 요즘의 아름다운 행렬 이상으로 골고루 나누기에 힘썼다. 인디언에게 친구는 ‘나의 슬픔을 지고 가는 사람’을 의미했을 정도로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비장한 가치였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그들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에 소유개념도, 빈부차이도, 감옥도 없었다. 죄인에게 가장 큰 형벌은 오로지 수치심이었다. 시튼은 ‘이들의 종교는 신학 보다 더 건전했고, 이들의 정치는 정치학보다 더 성숙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건강한 인간 공동체의 전형을 오늘에 그들에게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여유로운 삶 속에서 공존과 조화의 자연 사상을 실천해 내고 순수와 존엄의 영혼을 간직하며 면면히 이어온 인디언 조상들의 숨결이 촉촉이 베어들어 온다.

  미국 서북부에 위치해 깨끗한 바다와 사철 푸른 전나무 숲으로 경관이 매우 수려한 시애틀은 이 지역 산하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추장, 시애들(1787~1866)의 이름을 따 명명된 도시이다. 무자비한 살육과 보호구역이라는 회유로 어쩔 수 없이 이 땅을 내주면서 마지막 추장, 시애틀은 “우리가 어떻게 공기와 대지의 따뜻함을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이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사람이 땅을 헤치는 것은 곧 그들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대들에게 이 땅을 주노니 우리가 보살폈듯 애써 보살펴라.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땅과 공기와 강물을 보살피고 간직하라”고 말했다 한다.

이런 단상들이 일정 정도 장애자나 다름없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신선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원형적인 생활과 삶의 본질에 대하여 심한 갈증을 일으켜 주었으면 소망해 본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무엇하나도 선물 아닌 것이 없음을 왜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일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인디언 민속촌에서 하루를 묵어가고 싶었는데 소박한 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