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장 / 김경원

세계적인 추상화의 거장 피카소는 그의 나이 스물다섯살에 다른 화가들이 평생 동안 그릴  그림들을 모두 그렸다. 그의 작품성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림이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갔다.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그는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가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를 지킨 것은 그림 그리는 도구였다. 열정 또는 내적동기로 부터 창조 조성이 발현되기 위한 중요성은 창조적인 사람들의 공통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일관된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할 따름이다. 이것이 내적동기이다. 이렇게 내적동기가 충만한 활동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불광불급,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새겨볼 만하다. 그 내적동기가 강할 경우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 된다. 과감한 도전에서 형성된 열정은 왠만해서는 금방 사라지거나, 실패나 시련에 의해 쉽게 좌절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자기 결정감을 가질 때가 중요한 동기가 발생되는 것이다.  모든 추상화는 단순화다. 피카소나 윌슨, 커밍스가 한 것과 같은 뛰어난 추상작업은 그 때까지 드러나지 않던 특성과 관계를, 단순화를 통해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그 결과 새롭고 다의적인 통찰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진실은 가장 단순한 추상이 파악하거나 고안하기가 가장 어려운 반면 가장 중요한 통찰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을 예로 들면, 수학은 오로지 추상의 장이다. 수의 개념은 언제, 어디서, 무엇에나 적용이 가능한 추상의 진수다. 우리는 수를 현실세계와는 별도의 장에서 다룰 수 있다.

“무” 그 자체는 하나의 추상인 zero 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인 동시에 모든 수의 기반이 된다. 모든 과학이론과 법칙은 중력장 안에서는 어떤 물체든지 모양, 크기, 밀도, 색, 조직, 단단함, 구성 등과는 상관없이 점집합으로 표시된다. 말 역시 추상을 빌어 발설된다. 수많은 단어들, 사랑, 진실, 명예, 의무 등은 대단히 복잡한 개념들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대한 텍스트에서 이런 저런 단어를 추출하여 만들어 낸다.

특히, 문학에서의 추상이란 그 이상의 깊이가 있다. 문학이 하는 일은 개체가 아닌 종을 들여 다 보는 것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속성과 주된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 종을 특징짓는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미한 차이는 무시해야 한다.

예술 작업의 보다 높은 단계는 단순화다. 없어도 되는 관습적 형식과 무의미한 세부를 골라내고,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몸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주 기본적인 셈법처럼 이질적인 문화 사이에서도 통용된다. 세계 어딜 가나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몸짓을 사용한다. 또한 우리는 일본의 “노”나 서구의 발레, 현대무용 같이 몸으로 표현되는 정화된 언어, 즉 몸짓하나 동작하나에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언어를 만나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조각가 헨리 무어의 말을 빌자면, 무용은 “가장 위대한 직접성과 강렬함”을 낳는다 라고 했다. 이 본질적인 직접성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의 헤드라인을 보고서 그 기사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식으로 추상에 의존한다. 학생들 역시 셰익스피어의 고전희곡 원본보다 요약본을 더 자주 찾는다. 케리커처 역시 추상의 일종이며 어떤 개인의 “이니셜”이라고 할 만하다. 심지어 경구도 추상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연륜이 가져다 준 지혜와 경험을 몇 단어로 축약해서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는 할 수 있어” 라고 혼잣말로 말하는 것도 또한 그 본질과는 다르지 않다. 이런 일은 매우 간단하다. 감각적 이미지를 인식해보자. 방금 열쇠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마음의 눈으로 보자. 읽고 있는 소설을 마치 영화로 보는 것처럼, 색으로 사고하지 않고서는 그림의 색을 고르지 못할 것이며, 소리에 관해 사고하지 않고는 피아노 건반 위의 선율을 짚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 단일한 학문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분석적이건 정서적이건 아니면 전통적이건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혁신의 기법이란 항상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다. 따라서 미래는 우리가 앎의 방법을 통해서 통합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우리가 찾아낸 직관, 영감, 통찰의 언어야 말로 빛나는 창조성의 원천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고 있다. 어제까지 진실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그 역(逆) 또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을 맞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며, 과거의 이념과 사고체계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이제는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우리의 머리는 하드 디스크와 같다. 잠시 짬을 내서 내 헤드 디스크에 어떤 프로그램이 깔려있고  어떤 자료들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자. 아마 그 허전함에 비싼 디스크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