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법학박사 / 장규원

옛날 옛적 공자 왈,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글을 쓰다 보니 한자(漢字)가 날로 가물거려진다. 그러나 한자는 표의문자라 글자 하나마다 뜻이 담겨있고, 그 글자를 풀어서 새겨보면 풍성한 생각을 갖게 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인을 꼽는다. 공자 말씀이다.

한자풀이를 해보자. 인(仁)은 두(二) 사람(人)이 어우러진 꼴이다. 어질 ‘인’은 곧 사람 ‘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이라는 글자에서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라는 뜻을 새길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사랑이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공자는 충과 서를 꼽는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어우러졌다. 마음의 중심이 올곧음을 나타낸 것이니 진지한 마음,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성을 의미한다. 서(恕)는 같을 여(如)에 마음 심이다. 내 마음과 남의 마음을 다르게 보지 않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하기의 마음이다.

남을 이해하고 또 남의 처지를 헤아리며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않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아집을 드러내지 않으며 남의 의견과 주장을 신중하게 생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군자(君子)다.

주변을 돌아보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거나, 내 편이 아니라 하여 따돌리거나, 내 말을 잘 듣는다 하여 그 사람의 됨됨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마냥 감싸 도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가? 요즘에 화두가 되고 있는 관용(寬容, tolerance)의 덕을 떠올려 본다. 열린 마음(open mind)이 있을 때만 참된 비판을 할 수 있고 관용을 베풀 수 있다. 열린 마음이란 자신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남을 말을 들을 줄 아는 자세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과도 같다.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는다. 조화를 이루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군자는 화이부동의 사람이요, 소인배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공자의 말씀을 헤아려보면 지위의 높낮음, 나이의 많고 적음, 여유와 빈곤, 지식의 많고 적음 등에 관계없이 사적 이익에 밝은 사람이 소인(小人)이고, 의로움에 밝은 사람은 군자라 하였다.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을 더 중히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의로움은 또한 이로움이다. 나의 생각과 이웃의 사소한 이익이 맞지 않아 충돌했을 때 그로 인해 주위가 시끌시끌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평화로운 공동체가 깨진 것이다. 그래서 의로움을 꾀하는 것이 결국에는 개인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문제는 고르지 못함이 아닐까싶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타나는 소외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불평등은 소외의 문제를 야기한다.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힘 있는 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가진 자가 솔선하는 관용의 덕, 군자의 충서가 요청된다.

이런 저런 생각들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말이, 말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되는 여러 조건들이 들어맞아야 한다. 예를 들어 행위가 아닌 범죄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죄를 논할 때는 당연히 ‘범죄는 행위이다’라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사람의 행위여야 한다. 지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현상이나 동물의 행위에 의해서도 형법에서 말하는 죄의 결과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침해는 인간의 과오가 결합되지 않는 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한편 어느 누구도 생각만으로는 처벌되지 않는다.

예수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하셨으나, 속세의 법은 간음 ‘행위’를 했을 때를 다룰 뿐이다. 속셈을 따지지는 않는다. 예수의 말씀은 마음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리라.

빈자리에 놓여 있는 잘 빠진 스마트폰을 슬쩍 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 범죄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의 경우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그 속셈이 마음속을 벗어나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면 때에 따라 달라진다. 뭔가를 준비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과 속삭이며 같이 죄를 짓자고 꼬드겼다면 일컬어 침해의 위험성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 생각이 발설되어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한 사람의 생각이 여러 사람의 생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 생각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고 한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건의 현상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다만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했다. 뜻이 먼저 있고 그 뜻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불바다’라고 말했던가? 무더위 때문인지 불바다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는 것조차 무덥다. 쉽게 말해 까불면 로켓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불같은 협박이 오르내린 적이 있다.

만약 그들이, 아니 우리가 저 사람이 나랑 다른 이념을 가졌고 생각도 다르지만, 내 형제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졌다면 싸움은 함부로 못하는 것이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폭탄을 떨어뜨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혹시나 그것도 모자라서 통쾌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 사람이 전혀 나와 상관없는 타자로 보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가 나와 한 핏줄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다면, 어떻게 차마 그런 짓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늘조차 무더운데…

마음공부

우리의 모든 생각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서 온다.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앎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많은 공부 중에도 마음공부라는 말이 참 좋다. 머리만 가지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을 닦는 공부라고 하겠다. 결국 깨달음을 위한 공부가 아니겠는가. 영어로 ‘깨닫다’를 리얼라이즈(realize)라고 하는데, 이는 ‘깨닫다’는 말로도 ‘실현하다’는 말로도 쓰인다. 나를 깨닫는다는 것은 나를 제대로 실현한다는 이야기다.

무슨 일이던 반드시 한 마디는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컬어 일언거사(一言居士)라 할 수 있다. 말이 많으면 탈도 많다. 그래서 “말 친구도 좋지만 글 친구도 좋다”는 생각이다. 글로 벗을 만나고, 벗을 만나 사람됨이 깊어진다고 한다(以文會友 以友輔仁). 논어 안연 편의 구절이다.

간서위락(看書爲樂)이라, 책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저서자오(著書自娛)라, 글을 쓰며 스스로 즐기면서 생각을 가다듬어 마음공부한답시고 자적자락(自適自樂)이라. 스스로 자적하고 스스로 즐길 따름이다.

그래 틈틈이 짬내어 남의 글 하나하나를 읽어보면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순수한 열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편협하지 않는 열정을, 나 아닌 다른 이도 헤아려 줄줄 아는 관용을, 충서의 덕목을 가슴 깊이 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