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어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시장원리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미국의 리먼브라더스로부터 타전된 금융위기 또한 시장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을 반증하고 있었다. 20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대학은 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벤쳐가 대학에 침투했고, 대학이 제품을 생산해서 부가가치를 높여나가야 소위 우수대학으로 인정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세간에 서울우유는 서울대학, 연세대학은 연세우유를 먹고, 그렇지 못하면 지방대학은 저지방우유라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유머가 제법 시의적절할 정도다. 대학을 선택할 때 납부금이 얼마가 아닌 학생이 매월 대학으로부터 월급을 얼마 받을 수 있는가가 대학을 결정하는 중대요인이 될 때가 곧 올 것이다. 이렇듯 누구든 무엇이든 시장에 나가면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의 냉혹한 경쟁 앞에 옷을 벗어야 하는가 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원리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가정’이다. 여기에 시장원리가 도입되면 인간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질서는 상대주의와 경쟁, 선택의 대상이 아님을 누가 모를까. 내가 장남으로 태어나느냐, 차남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시장원리를 초월한 운명이라는 것이지 선택과 경쟁, 실력과는 일찌감치 인연이 없는 곳에서 각각 그 무거운 운명을 감당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가정의 안정적 질서인 것이다. 우연히 커피숍에서 만나 맺어진 다소 불만스런 인연을 운명이라 삭이지 않는다면, 연애시절 그 사람의 건강한 미소를 지금은 움푹 팬 말기암 환자의 당신 뺨에서 여전히 느낄 수 없다면 이 세상에 가정은 흔적조차 없이 살아졌을 것이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가정에 몹쓸 시장이 서기 시작했다. 가정만의 전유물이었던 서비스영역이 시장을 매개로 외부에 오픈되기 시작한 것이다. 외식산업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가정의 서비스영역을 점령하고, 자녀교육마져도 부모를 대신하여 사교육시장으로 넘어감은 당연시 된지 오래고,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사랑으로 생명을 창조 하는 가정의 전유물이었던 성행위가 가정의 담장을 뛰어넘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까지 묵인되고 있는 세태이다. 자식의 과외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고 변명을 하였다지만 남편이 출근을 한 사이 어엿한 주부가 한통의 전화로 시장바구니에 자신의 성을 담고 파트타임으로 팔러나갔단다. 이를 어찌 여인네 탓만 할 수 있겠습니까만, 일이 이 정도되면 운명공동체인 가정은 단순동거인이 기거하는 이익공동체에 다름 아니올시다.

가정이 더 이상 운명공동체일 이유가 사라질 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원한다. 우리의 아들, 딸들을 가만히 놓아두겠는가! 부모들이 이러한 시장의 매커니즘에 빠져들 때 자녀들도 극히 자연스런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다. 공동화된 원도심 보다도 더 황폐화 된 가정을 뒤로한 채 그들은 용감하게 독립선언을 하고야 만다. 이 딸들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상품이 그녀의 슬픈 성이라면 누가 아니라 할 것인가! 사실 원조교재는 누구 탓도 아니련, 순전히 시장 탓이다. 그 집의 아들은 대신 잭나이프를 들고 뒷골목 시장을 거침없이 배회하게 된다. 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시장원리에 삼켜져버린 가정이라는 것의 최후모습을 말해주고 있다면 지금 우리들의 가정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가정은 그렇지 않다고 강한 부정만하면 되는 것일는지.

그렇다면 왜 시장이 백주 대낮에 가정을 겁탈하려해도 아무도 저항 없이 이렇게 퇴각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들의 끊임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친화적인 ‘욕망 바이러스’ 때문인 것이다. ‘에릭 프롬’의 말처럼 끝없이 실망하면서도 한없이 욕망하는 현대인의 병리성에 기인한다. 아이폰이나 스마트폰으로 집약되는 핸디월드는 어디가 종점인가? 꼭 9시 뉴스와 아바타를 400Km로 달리는 특급열차 안에서 손아귀에 불안하게 놓인 요술상자를 통해서 시청해야만 행복하다는 말인가. 우리 집도 사교육비는 고사하고 핸드폰, 인터넷 등의 통신비만 월 80만원이 소비된다. 대학 갓 졸업한 조교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개인 병원 간호보조사의 한 달 급여에 해당한다. 인간들이 넘치는 욕망수준을 낮추지 않는 한, 어여쁜 자녀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엄마까지도 일터로 불려나가야 하고, 고사리들이 지쳐서 잠든 후에야  자기아파트의 비밀번호 단추를 눌러야 한다. 그러는 사이 어른들의 타성은 물론 미래 꿈나무들의 일탈은 가속화될 뿐이다. 게임 중독으로 사이버 세상에 취한 아들이 엄마를 살해하는 비극은 다 이런 제동장치 없는 욕망이라는 바이러스의 잔해들로써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보아라! 운명공동체인 가정이 욕망 바이러스 때문에 제반 서비스기능을 시장에 빼앗겨 버리고 거의 나체가 되어 뒷골목을 배회하는 몰골을 말이다. 그렇다고 시장더러 생산을 중지하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다. 냄새를 맡으려는 코를 어찌 유죄라 하련가! 냄새를 우선 없애야 하듯이 우리들은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부은 욕망을 구조 조정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재활용 코너는 일방으로 주기 위한 장소가 아닌 나도 쓸모가 있는 재화를 고르는 스와핑센타로 재인식되어야 산다.

이런 일련의 생활혁명들이 우리네 인간들의 삶속에 뿌리내려 질 때 무엇보다도  상대주의와 경쟁, 선택의 대상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가정의 건강이 새롭게 움터 올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흑사병이라고 할 정도의 교활한 이 ‘욕망바이러스’를 우리가 과연 대적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이 아침이 우울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