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마술사나 발명가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에게는 의외성이 돈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으며 인류사를 수정해 나가는 사람들은 많다.

보편적인 인식의 틀을 깨고 확장하는 데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은 기네스북에서 넘친다. 그들은 상상이 실현될 때 열광하며 피워낸 우리들의 꽃의 꿀에 취하고 싶었다. 그들은 상상도 못했던 것을 목도했을 때 기겁하면서도 동시에 더 놀라운 것을 꿈꾸는 인간 군상들이다.

인간은 어쩌면 중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본능에 이끌려 문명을 창도해 왔다. 그러나 인간은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허공에 씨앗을 심을 수 없고, 유리로는 다이아몬드를 자를 수 없다. 기술이건 능력이건 결국 중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 있다.

인간이 시간여행을 하거나 죽지 않는 세계란 상상의 유희 안에서만 가능해야 한다. 공간 속에서 이미 물리적으로 소멸된 것이 거슬러 올라간 시간 속에 존재해서도 안 되거니와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번식 행위도 절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시간의 부재와 생명현상의 정지를 야기하는 역설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상상도 못했던 초월이라 하더라도 역산해 보면 예측이 가능해야만 한다. 사실 인류에게 중력이 없는 세상이란 가정해 볼 수조차 없다.

인류가 원자 이전의 혼돈의 시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중력의 이해와 중력 아래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데 계속 도전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 생명현상 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깨달아 가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따라서 중력을 아예 바탕에 두지 않는 픽션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노고를 달래고 심적인 보상을 하는데 필요할 따름이다. 이렇듯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며, 무기력한 자기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별적이며 동시에 전체적인 이 상상 꿀통에 빨대를 꽂고 있는 집단이 우리 사회안에 있다. 정치집단이다. 그 구성원들은 인간이 현실에 기반한 화법보다 현실을 조소하는 허무맹랑한 화법에 더 쉽게 현혹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의 입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거나 지극히 실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단순한 해법이 쏟아져 나온다. 정당들도 자기 속사정에 따른 정치행위를 하면서 유권자들의 상상력에 기대 밑도 끝도 없는 '다름'을 내세우기를 일삼는다.

그들 정치집단의 명제가 마치 '정치란 현혹'인 듯하다. 비근한 예로 더불어민주당은 전정희 초선의원을 컷오프 시켰다.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혁신안을 준거로 삼아 가늠해 볼 때 딱 한가지에는 걸린다. 경쟁 후보에 지지율 면에서 근소한 차로 뒤진다는 점이다.

최근 몇 차례의 여론조사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전정희 의원은 의원으로서 자질 또는 의정활동 평가 등 전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 현역의원을 축출한 자리에 영입된 인물을 채울 것이다. 말 안 해도 안다. 대두되는 인물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틀림없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올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공천될 그 인물은 상대 당 후보인 조배숙에게 경쟁력이 있을까. 대한민국 최초 여검사이고 판사를 역임했으며 3선 국회의원인 그다. 스펙으로 그를 덮을 경쟁자가 있을까. 단, 조 후보는 19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전정희 의원을 대신해 조 전 의원과 겨룰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면 그것은 조 전 의원의 기회주의적 행보와 낡은 이미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정희 의원이나 영입된 인물이거나 조건은 같았다. 다 차치하고라도 당 대 당의 승부라 하더라도 조건은 다르지 않다.

전정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계파가 없기에 중앙당의 입지를 굳히는데 익산을 이용하려는 당리당략에 희생되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정당은 이러한 정치역학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것은 새롭다' 혹은 '새로운 것이 바꾼다'는 명제를 상상에 접목하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정치행위가 유권자들에게 납득된다는 프레임을 신봉한다. 상상의 유희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소치다. 역산해 보면 내용이 없다. 기만행위다.

익산시장 재선거의 정당 경선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견지에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익산시민들이 예측하지 못한 후보를 영입했고, 경쟁 당 후보는 물론 지역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다른 후보와의 경쟁력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는지도 의문이다.

고위공직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대 당 후보에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을 것이라는 점 말고는 고민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재정난에 허덕이는 공기업을 구한 위기의 리더십이 빛나기도 하지만, 상대 당 후보가 재정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가 별반 커보이지 않는다.

특히, 익산이 분열과 반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 부정적 기류에 쌓여 급속한 퇴행을 겪고 있는 도시라는 데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 점은 크게 아쉽다. 익산은 당장 무엇보다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곳이다.

새 인물이 결코 더 나은 세상의 지표 아닌데

영입 인물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환상 심어

익산지역 사정에 밝고, 포용력을 발휘해 지역사회 각 주체들을 아우를 인물이 더민주당 예비후보 가운데 없었던 것도 아니다. 5선 도의원에 3선 도의회의장의 관록으로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엄연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절차를 중시하는 대의기관의 수장으로서 민주적 리더십을 십분 검증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불안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새 인물을 영입한 이상 경선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정당은 공정한 경선을 표방하지만, 새로운 것의 출현은 예측 불가능해도 된다는 반중력적 상상으로 유권자들의 틈을 파고든 정당은 거리낌 없이 새인물 공천을 내정했을 공산이 높다. 익산지역 예비후보는 공상유희의 정치적 일반화에 항로 밖에서 격침될 것이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더 큰 문제는 익산지역의 상당수 유권자들이 그런 함정에 빠져 정당의 정치살인을 용인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이 오류는, 오래된 것은 낡고, 새로운 것은 가치가 있다는 중력의 법칙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익산지역공동체의 4.13 선거판 화두인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은 그런 중력의 법칙과 하등의 관련이 없다.

일말의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경륜과 새로운 것(무능 또는 참신) 사이에서 정당은 얼마든지 장난을 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마술을 좋아하니까. 속는 걸 알면서도 속이는 화려한 기술에 심취한 나머지 그 너머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런 환희를 일상에서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