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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우물 밖 개구리를 기다리며

편집국장 공인배

#1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거북이

"이보게 거북이,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우물 벽 위로 뛰어올라 몸을 말리며 노닐다가 깨진 우물 벽 틈에 들어가 쉬며, 물에서는 헤엄치다가 피곤해지면 겨드랑이를 수면에 걸치고 턱을 물 위에 내놓고 쉬노니, 뻘 속에 뛰어들면 몸과 발등을 숨겨 위험을 피할 수 있지. 장구벌레나 올챙이, 게를 둘러보아도 나 만한 자는 없다네. 게다가 우물을 독차지한 즐거움이란 더할 나위 없는 것. 자네도 아무 때나 와서 둘러보게."

"개구리여, 내가 바다에 대해 말해 주겠네. 천 리의 먼 거리로도 그 넓이를 재지 못하고, 천 길의 높이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네. 우왕(禹王)의 시대, 10년에 9년 동안 홍수가 쏟아졌지만 물이 불어나지 않았고, 탕왕(湯王)의 시대, 8년에 7년 동안 가뭄이 타들어 갔어도 줄어들지 않았지. 시간이 흘러도 그만, 물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만이라, 이것이 바다의 큰 즐거움이라네."

#2 적통자와 우물을 떠난 양자

"여보게 양자, 얼마나 철두철미한가 나는! 오직 노무현의 적통자들만이 퇴행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복원할 수 있으니, 한시도 그들을 지키는 일에 소홀할 수가 없네. 노무현은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딛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나는 당 대표로서 호남을 새롭게 하고 수도권과 영남을 아우르는 과업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네. 혁신안은 노무현 정신의 완성인데 각 계파의 방해가 극심한 지경이니 내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 끝에 당도할 수 없다네. 이 같은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나는 드문 행운아가 아니겠나."

"그대여, 내가 국민에 대해 말해주겠네. 그 마음은 햇빛과 같아서 삼라만상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물에게까지도 생명의 기운을 나눈다네. 자고로 국민을 지표로 삼은 지도자는 흥했고 없수이 여긴 지도자는 망했다네. 골고루 굶주리지 않게 하는 일에 노심초사하고, 독식하려는 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이가 지도자가 되도록 국민은 허용한다네. 이것이 여민동락의 참된 즐거움이라네."

#3 사토리(달관한 자)의 촌평

"여보게 블루칼라, 틀린 인생은 없고 다른 인생만 있다네. 우물 안 개구리나 바다의 거북이나 한 생을 사는 거지. 자족한다면 둘 다 즐거움이 매한가지 아니겠나. 외려 우물 안 개구리가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거지. 우물 안의 세상은 모른 채 바다만 아는 거북이가 더 불행할 수도 있지 않겠나. '자신만의 삶을 살면 된다'는 게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를 쓴 장자의 뜻이 아니겠나."

"은둔자여, 정치란 부조화를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 아니겠소. 정치의 실천은 태양이 하는 일과 같은데 태양이 무엇을 지배하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야말로 독점을 즐기고 있지 않던가. 우물 안에 다른 개구리 한마리가 뛰어들어도 그 평온한 즐거움이 깨지고 만다네. 한낱 이름에 갇힌 채 무기력한 자와 그로인한 지리멸렬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양자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네."

#4 삼려대부 직을 잃고 멱라수(汨羅水) 변에 선 정치가 굴원(屈原)

굴원: "어부여!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이 홀로 깨끗하고, 온 세상이 취하였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으니, 이 때문에 추방을 당했노라."

어부: "성인은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변하여 옮아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거든 어찌하여 그 진흙을 휘젓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거든 어찌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나 마시지 않고,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높이 행동하여 스스로를 추방을 당하게 하였소?"

굴원: "내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하였는데,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겠는가?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인가?"

어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5 에필로그

사실, 굴원과 어부는 동일 인물이다. 이 어부사는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하기 전에 굴원이 남긴 마지막 독백인 셈이다. 정치인이 현실 정치 안에서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풍진을 뒤집어써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굴원의 말이다. 현실 밖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자기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다. 창랑에 부서지는 그의 조소가 떠오른다.

독점을 즐기거나 찬양하는 것은 스스로 지배를 승인하는 것. 승자독식의 세상을 적극적으로 도와 만드는 것. 섬기지 않고 짓밟는 것에 동의하는 것. 그러한 자의 우물에 불간섭이나 자족이 있다한들 얼마나 지속될까. 언제든지 공룡의 발이 단번에 뭉개버릴 세상인데, 그걸 내다보지 못하니 즐겁기도 하겠다.

정치가 필요한 건 세상을 홀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시간의 흐름을 쫓고 축적된 의식에 부응하는 것. 그래서 바다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와 얼음을 말하지 못하는 여름 벌레의 공통점은 불안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단절. 전하며 확장하는 앎의 속성을 제거하는 것. '함께'의 결핍에 절멸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모르는 것.

그렇다면 우물을 떠난 양자는 우물 밖에 있는 것일까. 자신을 가둔 것들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를 면치 못한다. 영역을 구분하여 선을 긋기를 두려워하는 태도가 그 파괴의 시작이다. 활도(活道)의 정치란 계속해서 더 많은 함께를 위한 큰 우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장자의 시대, 개구리는 우물 밖과 안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는데, 벗어나려고 조차 않는 것은 우물 안에서 배운 가르침에만 얽매여 있는 탓이다. 이 시대, 필요한 일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새로운 대비책을 세우려는 자는 자기를 생물학적 불변논리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가변성에 자신을 던질 줄 안다.

그렇다고 '변질'이 '변화'로 통용될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불신을 받는 정치인의 설 자리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