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12월에 매화가 피었다는 곳이 많다. 겨울답지 않은 이상고온이 계속되었던 탓이다. 엄동설한을 견디고 봄 눈 잦아드는 즈음에 피는 매화가 아직 추워 본적이 없는 겨울에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땅과 하늘 사이에서 생존해 온 매화가 계절의 주기를 모를리 없건만 때를 착각 할 정도로 따뜻했고, 지금도 평년값을 웃도는 따뜻한 날씨는 계속되고 있다.

뜻밖의 선물에 사람들 가슴은 설렌다. 매화 곁에서 축연을 여는 이도 있고, 벌써 봄을 만난듯 월동의 무장을 해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봄은 아직 반분기 쯤 뒤에서 걸어오고 있고, 추위를 감내하지 않는 매화 향기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한다.

이른바 '겨울의 실종'은 '슈퍼 엘리뇨'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아메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수온이 오르면서 생기는 이상 기상 현상이다.

이 지역의 기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으면 엘리뇨가 발생하는데, 온도가 2.5도 이상 높아지면 슈퍼 엘리뇨로 분류한다. 올해는 무려 3.1도나 높은 것으로 계측됐다.

엘리뇨는 지구 곳곳에 홍수, 가뭄, 폭풍 같은 자연재해를 일으키는데, 우리나라는 이상 난동 현상으로 덮친 것이다. 올해 엘리뇨는 역대 최고 규모로 발달했다.

기상청은 이번 겨울철 우리나라의 이상고온 현상이 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서둘러 핀 매화는 이상고온의 재앙을 웃으며 뺨치듯 알리는 전령사다. 생육 초기에 추워야 투지가 강해지고 결국 왕성하게 생장하는 겨울 곡식과 채소인 보리, 마늘, 양파의 생산량이 대폭 줄고, 따뜻한 공기에 노출된 곶감은 1/3 이상 썩어버렸다.

지자체의 겨울축제들도 줄줄이 취소됐다. 가평 자라섬 씽씽축제, 인제 빙어축제, 홍천강 꽁꽁 축제, 우리나라 겨울 대표축제인 화천 산천어축제와 평창 송어축제 같은 추운 겨울의 낭만과 추억을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즐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방한용품 업계의 치명적인 타격은 물론이다.

가족들의 겨울 속 나들이가 사라질 위기다. 아빠의 책임감과 엄마의 품을 체험 할 야생의 학습장을 잃어가고 있다.

부모들이 행하는 일상의 노동과 희생을 따로 생색낼 필요가 없이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자식들을 보듬는 것 하나라도 가족들의 연대의식은 두터워지는 법.

축제라는게 놀고 먹고 즐기자는 것 아니던가. 노는 것이 노동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연 체험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가까이 해야 할 것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히 버무려 이익을 창출하는 상술의 패러독스 때문일 것이다.

그런 해학성이 체험자로 하여금 알면서도 속게 하고 상술을 귀엽게 봐주게 하는 힘이 아닐까.

그래서 축제를 만들고 참여할 겨울이라는 시간과 겨울이 뛰어 놀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재화를 교환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 일부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면 인간과 인간이 분리된다. 인간의 덕성은 사라지고 전략형 인간들만 득시글거리게 된다.

인간들이 자연과 분리되고, 그것도 모자라 자연을 예속화하며, 자원을 남용해서 초래한 결과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만행을 저지른 대가로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응징의 가마솥 안에 떨어져 갇혔지만, 서서히 올라가는 수온의 끝을 예상하면서도 지금 잘 살고 있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영속을 꿈꾸는 개구리 신세가 되었다.

패도정치 공동체의 말기증상을

그들만 모른다

이 나라의 정치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국민을 대상화한 매뉴얼이리라.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빙자한 권력의 남용과 소수 인간들의 이익추구에 혈안이리라.

탐욕이 그들만의 정치공동체의 오존층을 파괴하여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패도정치에 중독된 그들은 자신의 말기증상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만의 선민의식은 안하무인적 자기만족을 좇고, 영원한 세습을 숙명으로 노정한다. 누란(累卵)위에서 갈수록 비대해지는데도 폭식을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모습들은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다.

모든 국민이 골고루 배부르다면 누가 좀 더 많이 먹는다고 역정을 내는 이가 있을까만, 가로채고 빼앗아 필요이상 먹어대니 눈에 띌 수 밖에 없지 않나.

더구나 자기는 언제나 옳고, 자기를 낳은 부모도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2세대들의 근거없는 집착은 고립을 자초하고, 반발하니 몽둥이를 들고, 말을 듣지 않으니 칼을 들고, 그래도 대드니 몽둥이는 허리춤에 걸어두고, 총을 들어 공포탄을 쏘고, 물대포를 쏘고, 무기들은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리고, 그 행색이 단골레보다 화려하다.

그들 발아래 누란은 국민인데, 국민을 최후의 무기 삼아 저항을 누르는 아이러니가 운명의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겨울 속으로 나가 겨울을 견뎌보지 못한 자들의 한계다. 겨울 속에서 다른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모르는자들의 위태로움이다. 그들은 맹추위 속에서도 거들먹거리는 춤사위로 한껏 웃으며 얼어가리라. 추위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4월은 아직 멀었고, 겨울이 실종된 익산에 철모르고 핀 꽃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패도정치 공동체의 영속을 믿는, 열매를 맺지 못할, 혹은 여물지 못할 꽃들이다.

감기바이러스만 창궐해도 말라비틀어질 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