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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사건의 재구성, 국정원의 대국민 정보 해킹 논란 불길 지뢰폭발로 산소를 잃고 잡히다

편집국장 공인배

#scene 1

2015년 8월 5일 늦은 밤 이탈리아의 한 IT기업 사무실. 긴장한 기색으로 화상 회의장에 모여 앉은 임원들은 일제히 단말마적인 신음을 토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떨어뜨린다. 대형 화면에 고정된 그들의 시선은 자신의 끝장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들의 터질 듯 확장된 동공에는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스크롤되고 있다. 대형 화면은 누군가 검색하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보여주고, 스피커에서는 주마등을 쫓는 듯 조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우리의 프로그램 소스코드입니다. 프로그램 설계도이지요.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 우리의 내부정보가 통째로 인터넷에 공개된 것입니다"

화면은 곧이어 한 트위터 계정을 비춘다. '해킹당한 팀', 그리고 다시 이 회사의 로고를 비춘다. '해킹 팀'. 임원들은 다시 한 번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른다.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세계 최고의 해킹프로그램을 개발, 공급해 온 우리 '해킹팀'이 누군가에게 해킹을 당했고,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당한 팀'으로 바꾼 초유의 사태입니다"

화면은 이제 이 IT기업 해킹팀이 각국 고객들과 주고받은 음성파일명 및 이메일들을 훑고 지나간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롱당했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반인권 정부로 지목된 정부와 거래한 사실, 무기 금수 조처를 받은 수단이 우리의 프로그램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을 해킹하려 한 사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우리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으로 비판적인 언론인과 활동가를 사찰한 사실,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도청한다는 의혹을 받아 온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아랍에미리트·레바논 등이 우리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노출 되었습니다. 우리의 거짓말들이 들통난 것입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scene 2

대한민국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회의실. 국정원장과 여야의원들의 시선이 빔프로젝트가 비추는 벽 스크린으로 향하고 있다.

야당의원: 아르시에스(RCS), 즉 ‘원격 제어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감시대상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교류하는 모든 내용을 감시자에세 그대로 보여줍니다. 컴퓨터에 웹캠이 달려 있다면 사진을 찍어 보냅니다. 스마트폰 통화 내용을 녹음해 전송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사용자 몰래 이뤄집니다. 백신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위도는 물론이고 모든 운영체제를 해킹할 수 있습니다. 암호화된 메신저도 소용이 없습니다. 키보드 입력 단계에서 정보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사용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역시 입력하는 순간 노출됩니다.(야당 의원이 국정원장을 바라보며) 그렇지요?

국정원장: 네. 맞습니다.

야당의원: 감시 대상자의 무선공유기를 조작해 아르시에스를 설치하거나, 문서파일·파워포인트 파일 등으로 위장한 악성코드 설치 파일을 보내거나 일반 웹사이트로 보이는 변조된 설치 링크를 보내 감시 대상자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이 스파이웨어를 설치하는 방식이지요?

국정원장: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야당의원: 국정원이 왜 이런걸 구입했습니까? 그것도 국제 범죄집단 같은 민간 기업에서.

국정원장: 북한 해킹을 대비하기 위한 연구용입니다.

야당의원: (치미는 분노를 누르려는 듯 심호흡을 한 뒤) 여기 해킹팀 내부 메일을 보면은요. 2014년 3월, 한국 국정원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톡에 대한 해킹개발 기능에 대해 물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에 앞선 2013년 갤럭시S3 국내 모델을 이탈리아에 보내 몰래 음성녹음이 가능한지 살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봐서 국정원이 스마트폰 국내용 모델 해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로도 국정원은 갤럭시 최신형이 나올때 마다 기술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북한이 갤럭시S3를 사용합니까? 내국인에 대한 맞춤 해킹을 요구한거 잖아요.

국정원장: 대북 정보전의 일환으로 정당한 활동입니다. 내국인을 사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북 관련 정보와 국외 정보를 수집해 해외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야당의원: 외국에서 출시된 모델은 기본 애플리케이션이 국내용과 다릅니다. 국정원이 타깃으로 삼은 감시 대상자가 국내용 모델을 쓰고 있다는 걸 말해줍니다. 더구나 국정원은 해킹팀에게 안랩의 ‘V3 모바일 2.0’과 같은 국내용 백신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묻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 스마트폰 메신저인 바이버를 해킹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바이버는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사찰을 피할 목적으로 카카오톡 대신 쓰고 있는 메신저입니다.

국정원장: 국내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이 갤럭시S3를 쓸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야당 정치인을 타깃으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야당의원: 6.4지방선거를 석달 앞둔 2014년 3월께 오간 해킹팀의 출장보고서를 보면, "국정원의 주된 관심사는 원격의 안드로이드 아이폰에 대한 공격이며 특히 6월에 안드로이드 공격을 이용하길 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국정원이 해킹팀 쪽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보낸 설치 파일 링크들입니다. 네이버 맛집 소개 블로그, 벚꽃축제를 다룬 블로그, 삼성 업데이트를 미끼로 내건 주소들이 나옵니다.(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흔들면서) 이래도 간첩 잡기 위한 해킹이라고 주장할 겁니까.

국정원장: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외전략 차원에서..

야당의원: (말을 자르는, 분노한 목소리) 애니팡2 ·모두의 마블·드래곤 플라이트 같은 인기 애플리케이션에 악성 코드를 심는 실험도 진행했죠?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제목의 워드파일을 보면은요. 진보매체 기자의 천안함 보도 관련 문의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천안함 관련 연구진이랑 서울대 출신 고위관계자 등이 감시대상이었다는 정황 아닌가요?

국정원장: 남파 간첩들이 카카오톡을 쓰고 있습니다.

야당의원: 이슬람국가(IS) 같은 반 국가단체들도 암호화 된 메신저를 쓰는 마당인데 그걸 우리더러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국정원장: 예. 믿어야지요. 우리는 오직 종북 좌파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아시겠지만, 정부의 천안함 수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왜곡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협하지 않았습니까?

야당의원: 백번 양보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남파 간첩이 카톡을 썼다고 칩시다. 그런 경우에는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서 카카오톡 서버를 통째로 열어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스파이웨어를 심어 감청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처벌 받아야 합니다. 그걸 감수한 것은 결국, 영장 발부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상대를 도청하려 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 아닙니까.

국정원장: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동통신사에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설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야당의원: 합법적일 경우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잖아요.

국정원장: 북한은 상존하는 사이버테러 위협국입니다. 국회가 이동통신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해서 북한의 야욕을 사전에 분쇄하는데 동참해 주셔야 합니다.

야당의원: 논점을 흐리지 마시구요. 해킹팀의 내부 이메일에서는 "동시에 많은 타켓들을 성공적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전국을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언급도 있는데요. 국정원은 더 광범위하게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전 국민이 메르스로 공황상태에 빠졌던 지난 6월에는 메르스 정보 링크를 위장한 악성코트를 해킹팀에 요청하기도 했잖습니까.

국정원장:..

야당의원: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 감시대상이 누구였습니까? 심지어 포르노 사이트 세 곳에도 해킹 프로그램을 심었는데, 간첩들이 포르노 사이트에 일상적으로 접속한다는 겁니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작위적인 피싱 아니었습니까?

국정원장:(입을 굳게 다문다)

#scene 3

과학수사대와 기동대 버스를 포함한 경찰차 몇 대가 국도를 달려 한 마을의 회관 앞에 멈춰선다. 선두차에서 경찰들이 내렸고, 먼저 도착해 있던 남자가 경찰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남자: 김허수 팀장님이시죠?

김허수: (어색하게 낯선 남자의 손을 잡으며) 네.

남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불된 임과장하고 함께 국정원에 근무하는 박지우 입니다. 우리 둘은 사적으로도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 친구 저와 이곳엘 자주 왔었는데, 그 친구 차가 여기서 발견됐다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김허수: 아 그러시군요. 두 분이 이곳에 자주 온 이유가.. ?

남자: 아 예. 낚시터, 이 야산 북쪽에 저수지가 있는데요. 거기가 꽤 손맛이 나는 낚시터죠.

김허수: 하지만, 행불자는 산 중턱에 있는 것으로 연락을 받았는데요.

남자: 지름길을 택한 거겠죠. 근데 그 길은 좀 험합니다. 이 길에서 산 아랫길로 이어진 길을 따라 일킬로미터 쯤 가면 저수지가 나옵니다.

김허수: 그래요? 같이 가실까요?

남자: 저는 팀원들이 도착하면 뒤따라 가겠습니다.

김허수가 장비를 든 경찰 몇과 수색대를 불러 모아 길 아래로 내려가자, 남자는 민첩하게 야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다. 그가 산중턱에 다다르자 마티즈가 모습을 드러냈고, 남자는 차 안에서 숨져있는 임과장의 상하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차 안을 수색한 뒤 자리를 뜬다. 남자가 사라진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경찰이 허둥거리며 현장에 도착한다.

경찰이 임과장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을 때 어느새 뒤따라 온 견인차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티즈를 싣고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폐차장에 내려진 마티즈는 곧장 분해되고 압착되어 고철덩이 속으로 던져진다.

#scene 4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장.

벽 스크린에는 국정원 임과장의 유서가 비춰지고 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켜 자료를 삭제했다'

야당의원: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지난 18일 오전 11시 55분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한 야산 중턱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 다음날 국정원 직원들은 그가 2012년도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실무판단하고 주도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이라고 공개했습니다. 국정원은 그렇게 허술한 기관입니까? 직원 한 사람이 자료를 송두리째 삭제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까? 또 시스템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술합니까? 더구나 임과장은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원 해킹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요주의 인물인데요.

국정원장: 전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야당의원: 그래서 지난 17일의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않으셔도 되겠군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해킹 프로그램을 평소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했어야 맞는 것 아닙니까? 임과장 죽음으로 국면이 전환될 것이라고 낙관하실 것 같은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겁니다.

여당의원: (자리에서 벌쩍 일어서며) 근거없는 의혹으로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빠트릴 것이 아닙니다. 국정원 현장조사와 일정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신속히 확정해 의혹을 규명하고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scene 5

2015년 8월 3일, 야당 사무실.

야당의원: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임과장 사망현장이 오염된 게 분명합니다. 또 현장에 먼저 도착한 국정원 직원이 원격 자료 삭제 기능이 있는 MDM을 작동시켰을 공산이 높습니다. 국정원이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했다면, 이는 테러보다 더 위험한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진상을 밝혀야 할 엄중한 책임이 국정 최고 통수권자에게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책임을 방기한다면,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압박해야 할 책무를 우리가 이행해야 합니다.

#scene 6

2015년 8월 5일, 공영방송국 메인 뉴스의 엥커의 새된 목소리가 지뢰 폭발 장면을 보여주는 동영상 위에서 허둥거린다.

2015년 8월 4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군당국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군의 수색로 통문 안쪽과 바깥 쪽에 북한군이 넘어와 목함지뢰를 설치했고, 수색하던 우리 장병들이 이를 건드려 폭발했습니다. 군당국은 북한의 도발행위는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위반한 비열한 행위이고, 북한군에 응당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며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남북한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 조준사격해 격파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군당국은 북한이 만약 도발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응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scene 7

2015년 8월 6일 국내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위기감을 높이는 소식들을 쏟아놓는다.

남북 관계가 시계 제로의 불안정한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당·정·청은 일제히 포문을 열어 북한을 비난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북한의 맞대응이 가시화될 경우 군사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자막

노이즈가 섞인 목소리

수사팀은 국정원이 대선기간에 댓글 수백만개를 생산 유포한 혐의를 포착했습니다. 댓글의 내용들이 대부분 박근혜 당시 후보를 유리하게 했다는 점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이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든 것입니다.

국정원이 노무현 정권의 남북 정상회담 기록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남북 배타적 경제수역에 관한 노 대통령의 태도가 부적절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이 여야간 진실공방으로 이어졌습니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기소를 직접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파문에 밀려 중도 하차했습니다. 윤석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검사가 다른 곳으로 전보됐습니다. 댓글사건 국정조사를 주도하던 문재인 최고위원이 여권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이고도 집요한 '종북 좌파 숙주' 공세를 받고 강공에서 협상으로 돌아서는 모양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