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논어 미자(微子)편에서 공자가 길을 물었다. 바른 정치를 설파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주유하던 기원전 489년 경이었다. 회하강을 건너 채나라 도읍 신채(新蔡)로 가기 위해 회하강 동남쪽 언덕 위에 도착한 공자 일행은 강변에 있을 나루터로 가는 길을 찾기 어려웠다.

전란 때문이었다. 군대와 유민들이 강 상류와 하류 쪽을 어지럽게 오가면서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었고, 시야에 들어 온 길들은 어느 지점에서 수풀 속으로 꼬리를 감추곤 했다. 공자 일행은 막 초나라의 부함을 떠나왔다. 거기에서 초나라 제후 심제량(沈諸梁)을 만나 대륙 전역에서 벌이지고 있는 무모한 전쟁은 극단까지 치닫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하룻 밤 자고 나면 국경이 바뀌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약탈과 무자비한 살육을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초나라 인구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떠돌던 유민들은 각 나라의 변경에 몰려들어 갈팡질팡했다. 초나라는 채나라와의 접경지역인 부함을 식민지 건설의 전진기지로 삼고 현지 총독으로 심제량을 파견했다.

심제량이 채나라 백성과 여러나라 유민들을 대상으로 유민 포섭정책을 펼쳤으나 지속되는 인구 감소세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공자 일행이 부함을 방문한 것이다. 심제량이 환대하며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라도 막을까요?"

공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들도 찾아 온다"고 일러 주었다. 백성들의 마음 속에 지도자의 은혜가 스며들게 하면 기뻐하며 따르게 되고, 그런 성의가 쌓이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오게 되어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병법과 법술에 능한 군사전문가 심제량은, 공자의 "내치를 잘 하지 못하고서 외교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천리장성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공자의 가르침은 지도자가 깆추어야 할 교양이며 다스림의 한 측면에 불과할 뿐,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장에서는 무용하다며, 그의 관점에서 실정에 어두운 공자를 비웃었다.

공자가 서북쪽으로 회하 강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지극히 피곤했던 이유다. 제후들이 실천의 덕목을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여기는 한계에 번번이 봉착했기 때문이다. 저 아래 어지럽게 난 전장의 길들은 백가쟁명의 시대 제후들의 확신에 찬 폭력의 족적이었다.

그렇듯 순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공자 일행은 사람들에게 나루터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질문은 세상 밖의 은자들을 만나 뜻밖의 힐난과 조롱을 불렀다. 미친척으로 현실에서 도피 중이던 접여는 공자를 향해 "썩은 세상 정치를 좇는 자는 위태롭다"고 했다. 또 밭을 갈던 장저는 "노나라 공구라면 나루터를 아실 꺼다"라고 비웃었다.

밭 갈던 걸익은 공자의 문도라고 밝히며 나루터를 묻는 자로에게 "무도함이 도도히 물흐르듯 한결같이 흐르는데 지금 이 세상을 그 누가 고칠 수 있겠는가. 세상을 주유하는 선비를 따르기 보다는 세상을 피해서 숨어 사는 선비를 따르면 어떻겠는가"라고 권유했다.

은자는 '실천'을 주창하는 공자의 반대편에 있다가 기회가 주어지니, 공자를 허명과 권세라는 욕망을 위해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는 사람으로 매도한 것이다. 어리석은 군주나 노회한 권신들은 공자의 말을 듣기라도 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소명(召命)을 저버리고 불의에 맞서기를 포기한 은자들이 오히려 공자를 위선자라로 몰아세웠다.

정작 그들은 길을 묻는 이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길 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그 방관자들에게 나루터란, 불가능한 줄 알면서 허황된 것을 전하러 가는 공자 일행이 당도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인류의 진보를 믿지 않은 채 사람들이 무지와 핍박의 압제 속에 갇혀있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자기만 거기에 속해있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는 소이연이었다.

반면, 공자가 전하는 길은 인(仁, 평화의 본질)이다. 그냥 나루터처럼 현실 속에 있다. 사람은 쉼없이 자기를 수양하여 인(仁)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기를 완성한다. 그러한 이는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고(忠), 남을 위해 진실로 애쓰는 마음 닦기(恕,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를 그치지 않는다.

이처럼 인을 추구하는 이들이 세상에 많아져서 그들이 예(禮)로서 협동(協同)하고, 의(義)로서 협덕(協德)하고, 인(仁)으로 협치(協治)한다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에서 대동(大同)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공자가 제시하는 바른 정치의 방향성이다.

이렇듯 정치는 늘 평화를 위한 바른 실천이다. 공자의 정치는 구도의 길을 가되 그것을 위해 세상을 피하지 않으며, 탁류를 정화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공자는 은자들 즉,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며 무위무욕한 삶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은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비판을 존중하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었다.

하지만 자신의 길에 한 점 의혹이 없었던 공자이기에,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었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했다. 맑은 물에서 먹으며 맑은 물에서 노니는 용이나 흐린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아닌, 맑은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노니는 이무기의 삶을 선택했다.

부작위로 협잡을 일삼는 민낯

공자가 나루터를 물었을 때로부터 2490년이 흐른 오늘도 여러모로 이 세상은 전쟁터다. 이 나라의 노동시장, 교환시장, 온갖 경쟁시장에서는 유민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시장과 일상 그리고 그 변경(邊境)에는 혼란과 갈등의 족적들이 무수한 길들을 내놓고 있다. 정치는 조작하고, 숨기고, 훔쳐보고, 편가르고, 협잡하는 모든 악행을 동원해 천리장성을 쌓고 있다.

익산지역은 그 폐해가 더욱 극심하다. 구닥다리 무소속 시장이 오직 무지(無知)를 감추기 위해 부린 난동이 더해진 탓이다. 충돌과 배제로 일관하는, 아주 낯선 네거티브 정치를 지난 1년 동안 시연했다. 지역의 대표 권한을 남용하는 그의 원맨쇼는 무수한 길들을 만들었고 그 조차도 길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광란의 포연으로 가득하다. 공자의 생(5.11)몰(9.28)일 중간 지점에서 목하 정치의 폭주를 제어하겠다며 스스로 존재하는 언론의 민낯을 생각한다. 한사코 혼란의 중심에 있어야 할 그들은 사회의 의제를 애써 외면하며 참으로 엉뚱하게도 존재의 이유를 생계수단에서 찾고 있지 않은지.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불의와 부작위적으로 손을 잡고 세상의 질서를 교란하고 악이 득세케 하며 선량한 이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은자가 된다.

실천하는 정치 혹은 실천하는 언론을 향해, 지나친 욕망·위선적인 표정과 야심을 버리라고 충고하는 용들, 정작 야합과 부적절한 거래로 보통사람들이 이룬 피땀의 결실을 약취하면서도,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낚시에도 낚이지 않으며, 화살의 사정권에도 없는 비범한 용들.

미친 시대,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루터를 묻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