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의회 의원들이 달라졌다. 지난 29일의 제185회 임시회 본회의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공의롭지 못한 야합과 적당주의를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신념들이 충돌했다. 듣기에 좋았다. 의원들의 토론은 타악기의 공명처럼 지켜보는 이들을 달뜨게 했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의결을 앞 둔 네 건의 예산심사 결과에 대한 수정동의안 두 건이 제출되었다. 규모부터 익산시의회 개원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토론에 앞선 제안설명과 논박이 허용될 법한 수준에서 건강하게 맞섰다.

나아가 표결 결과는 의회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당초 박경철 시장과 집행부에 요구했던, '각 예산 항목에 대한 의견수렴과 시민적 공감대 형성 여부' 및 '건전 재정 확보'라는 예산심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낸 것이다. 의회는 상임위의 예산심의 단계에서부터 불통과 독단 그리고 무원칙을 정면돌파했다. 이번 의회의 구성원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유다.

송호진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은 소관 상임위에서 전액 삭감한 예산을 일부 부활시킨 예결위의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민간 교향악단 운영비를 비롯한 익산시 청사 보수보강 공사비, 함열출장소 노후청사 보수공사비 등은 전액 삭감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익산시가 민간 교향악단을 지원하기 위해 4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편성한 것은 재정비상체제를 망각한 행태라는 견해다. 또 그 바탕에는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익산시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있다. 이날 반대 토론 대상이 된 추경예산들은 대부분 6개월 전 본예산 심사에서 모두 전액 삭감됐는데 아무런 조율도 없이 그대로 편성한 것이다.

특히, 민간 교향악단 운영비의 경우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상임위는 물론 예결위원들간의 찬반 격론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본회의장에 수정동의안이 제출돼 전체 의원들이 투표를 거쳐 전액 삭감했던 예산이다. 이런 사정이나 의회의 의지를 번연히 알면서도 익산시는 똑같은 예산을 추경에 편성한 것이다.

함열출장소 노후청사 보수공사비의 경우도 본예산에 편성됐었으나 의회는 실효성 없는 취지와 역효과를 우려하며 전액 삭감했었다. 익산시 본청의 부서 일부를 함열로 옮기는 것이 북부권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되면서, 불특정다수의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북부권 농촌지역과 신·구도심 주민들간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익산시가 부서 이전 목적의 함열청사 보수비를 추경에 다시 편성하고자 했다면, 그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선결됐어야 했다. 그 결과 불특정다수의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강요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나와 강행할 명분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도시와 남부 또는 동서부 일원의 농촌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서로 충돌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조정하는 능력은 정치의 수준을 가늠할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익산시는 본예산에서 해당 항목의 예산이 삭감된 뒤 그 어떤 행정행위도 보여주지 않다가 똑같은 예산을 날 것인 상태로 추경에 편성한 것이다.

시장이 하려는 일을 의회가 사사건건 훼방놓는다는 익산시장의 비뚤어진 정서가 도드라지고, 의회를 동반자이거나 감시자로 인정하지 않는데다 길들일 수 있는 대상으로 삼는 부적절한 의회관이 노출된 예산편성안이었다.

박경철은 일찍이 의원의 시정질문을 상대하면서, 익산시가 후원하는 단체의 행사장에서 익산시의회 의장의 축사를 빼도록 지시하면서, 전 공무원들에게 시정질문이 예정된 본회의장에 불참하도록 지시하면서,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자기의 승인하에 제출하도록 해 의정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면서 부박한 의회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 삭감된 예산 항목을 일절 검토하거나 수정하지 않은 채, 이어진 예산심사 시즌에 편성하는 것은 의회를 경시하는 태도가 명백하고, 낙제 저급한 정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며, 정치의 시간을 역주행시키는 기제다.

임형택 의원이 수도정비기본계획변경수립용역비 4억원 전액을 삭감해야 한다는 수정동의안을 본회의에 제출한 것도, 의회가 익산시의 일방통행식 작태를 상대하면서 과도하게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을 우려한 일환이었다고 읽힌다.

익산시 신흥정수장은 농어촌 공사가 공급하는 어우보 물을 공급받고 있으며 정수시설에서 생산되는 수돗물은 최상의 수질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박경철은 취임 직후 수자원공사가 공급하는 용담댐 물로 수돗물을 교체하겠다면서 207%나 비싸지는 물 이용료 부담을 시민들에게 강요했다.

익산시는 이미 상수도 공급체계 변경에 따른 시민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당해 용역비를 본예산에 편성했다가 의회의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당했었다. 그 뒤로도 박경철은 의회가 사사건건 자기의 발목을 잡는다며 잔뜩 똬리를 틀었고 반면, 의회와 시민단체는 그 직후에 공청회를 열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기존의 상수도 공급체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시민들의 다수의견이었다. 익산시는 이런 현장을 번연히 지켜봤으면서도 그대로 똑같은 예산 항목과 예산액을 추경에 편성했고,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결위는 예산의 일부를 승인했다.

임형택 의원은 앞서 공청회를 주도했던 의원들 가운데 하나다. 그가 기획행정위원이면서 산업건설위원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소관 상임위의 결정이 시민들 의견에 반하기 때문이었다.

박경철이 상수도 공급체계 변경과 관련해 사로잡힌 아집은 신흥정수장을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뜻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런 발상부터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어우보의 물을 끊으면 신흥정수장 저수지의 담수도 끝나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마르거나 썩게 되어있다.

명분 아닌 감정 충돌의 분열 막아야

재정비상체제를 선언한 장본인이 비싼 용담댐 물로 신흥정수장의 저수지에 맑은 담수를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그 비용까지 시민에게 부담시키겠다는 것인가. 임형택의 수정동의안이 설득력을 획득하는 질문들이다. 두 건의 수정동의안은 표결을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고, 해당 항목의 예산들은 모두 삭감됐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이들 수정동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이 의회가 나아갈 방향성의 본보기였다는 점에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반대토론에 나선 의원들이, 상임위와 예결위간 상호존중 질서를 해치는 점, 혹은 상임위나 예결위의 결정을 본회의에서 무력화시키는 행위의 부적절성, 본예산 심사 때의 입장을 추경예산 심사에서 바꾼 입장의 모호성 등을 지적하면서도, 원칙의 문제를 토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상임위나 예결위가 원칙을 지표로 삼았다면,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본회의장에 수정동의안이 제출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원칙이 배제된 입장의 논리 또는 관계의 논리가 의회를 지배하게 된다면 모처럼 세운 대의기관의 위상이 물거품이 되고, 의원들간 패거리 형성과 감정적인 대립의 악순환을 낳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185회 임시회는 그런 희망과 절망의 조짐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한편으로 익산시의 의회를 경시하는 밀어붙이기 폭거가 의회를 교란하고 분열시키는데 성공하는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저어한다. 익산시의회는 시민이 부여한 권위를 누구의 방귀 소리가 더 큰지를 겨루는데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