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박경철 시장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폭주하던 취임 초기에 나는 생각했다. '권위를 세우려는 것인가 보다. 공무원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 나갈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전술인가 보다'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행태의 묵살과 강압 일변도, 그런 '까라면 까'식의 막무가내에 기가 질린 공직사회를 지켜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린 생각이었다. "나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박 시장의 경고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그가 숨돌릴 틈 없이 잇따라 일으킨 생경한 사건들은 오직 무뢰배의 행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볼 때는, 박 시장이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공무원에게 "당신 이한수 사람이지"했던 것도 편가르기가 아니라 "나는 이한수가 아니니 내 스타일을 따르라"는 새로운 시대의 선포쯤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런 이해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길들이기가 공익에 기여하려면 공공의 질서를 준용해야 하는데, "나만 옳다"고 주장하며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공포감 조장이 장기화 되면서 공조직의 이성은 무너져갔고, 이내 본능에 충실한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이해의 한계에 봉착했다.

심지어 불법적인 일을 거듭 강요하고 공조직이 이를 수용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는, 박경철의 '신념'이라는 것은 '무지'를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특히, 실로 짧은 기간에 미증유의 부정적인 기록을 수두룩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성찰도 없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지체계의 장애를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행위의 정당성이라는 것이 뭐든 갖다 붙이면 확보되는 걸로 아는 유아기적 사고가 사건에서마다 적나라하게 투영되면서 그런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익산시의회의 시정질문을 보이콧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면서 그 골목대장식 대처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대외적인 이유란 게 시의회 의장이 행사장에서 박 시장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사전 고지도 없이 민간단체 행사의 식순에서 정치인들의 축사를 빼도록 지시해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와 정치인들의 반발을 샀다. 현장에서 황당한 꼴을 당한 익산시의회 의장이 불만을 토로했는데, 익산시는 즉각적으로 의장을 비난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회차원에서도 박 시장의 물정 모르는 행태를 지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익산시는 다시 성명을 냈다. 의장이 시장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 명예를 훼손했다며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론은 의장이 시장에게 욕설을 한 적이 없어 허위사실을 공표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보도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지금이 5공시절도 아니고.."라며 푸념한 의장의 지근거리에 있던 행사 관계자와 시민들에게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익산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성명에 적시한 대로 행동에 옮겼다. 의장의 사과나 사퇴가 이행되지 않은데 대한 응징으로 익산시의회의 시정질문이 예정된 본회의장에 시장 이하 모든 공무원들이 불참한 것이다. 소위 지방정부의 탈을 쓴 시민단체 같은 익산시의 유치찬란한 성명전과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불법행위를 박 시장이 진두지휘한 것이다.

더구나 그 단초를 제공한 박 시장은 정작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더 기가막힌 것은 대내적인 의회 불참 이유였다. 권위적인 익산시의회 의원들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한 신호탄으로 설정한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불법행위를 지시해도 먹히자 박 시장은 신이 난 듯 곧바로 이른바 의회 버릇 고치기를 구체화 했다.

의회가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자신의 승인하에 내주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다. 무엇을 점검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는 가운데, 박 시장의 만기친람은 의원들의 정당한 의정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검토할 자료들이 산적해서인지 의도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행정사무감사 자료조차 감사일정에 임박하거나 당일에 제공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의원이 감사할 기회를 빼앗거나 의정활동에 차질을 빚게 하는 박 시장의 자료 통제는 치졸한 수법이 명백하지만, 공무원들도 싫지 않은 눈치다. 의원들이 자료 제출을 독촉하면 "시장님에게 결재를 올린지 오래됐는데 결재가 나지 않았다"고 답변하면 그만인 줄로 안다.

의회민주주의가 이처럼 유린되는데도 책임지는 자가 없고, 책임의식도 없다. 상전 같은 의원들에게 끕끕수를 주면서도, 견제를 받지 않는 행정집행의 길이 열린데 대해 공무원들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겠다. 박 시장의 의장과 의원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말고는 달리 설명이 없는 이같은 행태는 '무지'의 소산이며, 자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대의민주제를 훼손하는 공격성은 지방자치제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이는 왜 민선 시장인가라는 질문이 없는 것이며, 기초자치단체의 '익산시장 박경철'이라는 이름을 바르게 하지 못한 소이다. 그래서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섬김과 기쁨이 일어나지 못하고, 공평무사의 질서가 깨지게 되며, 종국에는 공무원과 시민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생전 처음 공무원사회에 입성해 첫 번째 단행한 승진인사가 역대 초유의 발탁인사였고, 전보발령은 전임시장에게 총애받은 공무원들 솎아내기였다. 1년이 지난 것도 2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뭘 안다고"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부정의혹을 낳는 무모한 인사였지만, 전술적 경고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두 번째 단행한 인사는 더욱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숙청으로 이어졌다.

길들이기란, 어둠 속을 횃불을 들고 앞서 걸아가는 것

오랜기간의 경쟁으로 쌓아 올린 성적표들이 무참히 짓밟혔고, 익산시 인사담당 직원들과 간부들의 업무공간은 승진서열부 조작의혹으로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해관계와 등등한 적의로 혼란을 야기했을 뿐, 질서에 대한 하등의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인사에서 박 시장의 바닥은 백일하에 탄로되었다.

'무지'란 스스로 화를 부르지만 그보다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점이 더 큰 위험성을 내포한다. 박 시장의 기성 정치권을 향한 공격성향과 독선을 자극해 익산시 공직사회를 편가르기하고, 신진세력의 거두가 되어 실세를 휘두르며 이익을 농단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손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그런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조직의 암덩어리다.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는 자에게 마구 칼을 휘두르도록 부추기고 그 등 뒤에서 전리품을 챙기며 계속 날뛰어야 할 이유들을 기름처럼 부어대는 자란 얼마나 또 위험한가. 자고로 유식이 무식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언제 돌변할 지 모르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박 시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공무원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허탈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용과 교만으로 허비했다. 만약 대법원이 고법 판결을 파기환송하여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당 태종 이세민처럼 정적의 편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고 계략을 썼던 위징과 같은 인재를 기용하는 덕을 세울 수 있을까.

명군(名君)은 명신(名臣)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몰라서 무시당하는 게 이나라 모르면서 오히려 윽박지르고 면박주며 배우려 하지 않기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배우려는 태도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앎에 도달하는 바른 길이다. 그리하여 공무원과 시민들로 하여금 개혁과 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소란스럽지 않게 잡게 하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했는데, 허구헌날 내치고 짓밟은 뒤인 지금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있을 것이다. 박 시장 뿐만 아니라, 모든 잠룡들이 오늘의 지엄한 지표 앞에 경건해져야 할 것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후려치고 짓밟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을 횃불을 들고 앞서 걸어가며 길을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