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용(龍)의 해 임진년이다.

용은 12간지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실존하지 않는다.

무한한 상상력을 허락하며 막힌 처지에 자유의 나래가 되고 힘의 원천으로서 희망을 나눠준다.

우리 민족의 정서 가운데 짐승격 보다는 인격의 이미지로 자리잡은 용은 존귀한 지위를 차지한다.

북한의 정권이나 재벌의 세습 말고는 처음부터 타고난 용은 없다. 올해는 수많은 이무기들이 쏟아져나와 용이 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치르고 국회에 등원하는 이들과 용상에 오르는 이가 갈릴 것이다. 

출사표를 던진 그들이 능력에서 비록 개인차를 보이더라도, 큰 뜻을 품은 순간부터 자신을 갈고 닦으며 원숙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일로매진했다는 점은 같아야 한다.

개인에 국한한 삶을 도모하는 일이 아니니, 그런 단정은 당연하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높은 도덕성을 요구 받는 것은 순수이성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사유의 폭이 깊고 넓으며 바른 길을 가고 오직 국민의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것은 절대평가 대상이다. "그래도 누구보다 낫다"는 식의 모호한 태도는 스스로 무책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책무를 다하지 못할 것 같으면 새 해 벽두에 욕심의 끈을 놓고 발길을 돌릴 것을 무수한 이무기들에게 제안한다.

스스로 공익의 지표가 없으면 삿된 관계를 지어 많은 용들을 사사로운 탐욕 앞으로 돌려 세우는 결과를 낳는다.

일당백의 지위에 있는 용들이 한눈을 팔면 국민이 입는 피해는 심대하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용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과 그들이 패거리를 지어 사욕을 쫓는 일은 도적질과 다르지 않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각성한 30~40대가 이 나라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용꿈을 꾸는 이라면 침잠하던 그들이 왜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를 살펴야 한다.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태도가 변화의 물결을 가로막은데서 비롯한다.

철옹성 같은 거대한 둑 안에 고이고 고여 상류 쪽으로 거슬러 차오르던 물이 결국 넘쳐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저둑 너머 아래에서 무엇이든지 마구 뒤섞여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소수가 독점하고 남용해 온 권력과 경제 시스템은 깎아지른 둑 아래로 곤두박질 쳐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

물살이 거친 숨을 고르고 양양한 물결을 이루는 지점부터는 함께가는 네트워크에 촘촘한 소통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노동할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 받고 누구든지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이 새 시대의 정신이다.

그들은 공권력이 인권을 유린하지 못하는 세상의 도래를 굳게 믿는다.

불통하는 권력과 재벌에 맞선 저항이 설 지점을 늘 벼랑끝으로 선택 할 수밖에 없는 단절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권력형 비리는 사면받고 생계형 범죄는 끝까지 단죄 당하는 어불성설의 제도가 더이상 존치되지 못하리라고 확신한다.

감당할 수 없는 빚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계속 빚을 늘리고 그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기생족' 양산이 중단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픈 열망이 충만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치부를 들여다보는 눈과 그걸 들춰내는 목소리를 병적으로 거부하며 '괘씸한 죄'에 여러 다른 이름을 씌워 여지 없이 처단하는 부정한 권력을 기피한다.

부(富)의 사회 환원에 반하며, 부가 정치적 동반자이길 원하는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라 안팎의 재벌을 돕기 위해 노동자를 탄압하며 국민을 핍박하는 뿌리 없는 권력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자각, 계속 숨죽이는 태도가 '군림'의 자양분이 된다는 엄혹한 현실 인식이 새 시대를 움직이게 할 동력이다.        

새 시대는 팔을 걷어붙이고 허위와 위선의 거품을 걷어낼 것이다.  

용을 꿈꾸는 이들이 모름지기 미숙(未熟)을 큰 허물로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나서지 말라

민주주의 품에 안겨서 실질의 온도에 부화한 이무기여야 새시대에 부응하는 용이 될 수 있다.
용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에 수년 동안 천문학적인 예산(14조 원)을 쏟아 부으면서 국가 예산 전반을 경색시키고있다.

사후에 닥칠 재앙은 안중에도 없다. 벌써부터 그 전조가 다각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통상과 사법주권을 포기한 한미FTA늑약은 역진방지 장치에 걸려 다시 협상할 수 있는 여지란 없다.

식민지에서 국민이 겪을 고통을 모르는 미숙이 부른 결과다.

생존투쟁에 나선 노동자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영세상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용의 책무가 국민을 섬기는 것인줄 모르고 '길 들이는 것'으로 잘 못 안 결과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비롯한 경제 분석, 각종 현안들에 대한 비판과 행동은 모두 범죄행위로 취급했다.

언로가 막힌 나라는 독재치하이며, 그 반작용이 억누른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탓이다.  

불행히도 이 모든 미숙에 의한 부작용은 현재 진행형이다.

토건 재벌들의 권력지분은 여전히 공고하며, 보수의 친미는 그들의 인식표로 자리잡았다.

금권은 국가 체제 위에 군림하면서 불로소득, 과잉이익을 주도하며 부정적인 사회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미숙한 용은 미숙을 가리기 위해 끊임없는 공작과 폭력을 멈추지 못하는 속성을 지닌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나서지 말라" 이것이 임진년 벽두의 이무기들에게 던져진 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