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청년이 박제화되고 있다.

누군가 열정과 도전 정신을 그 내부에서 깡그리 긁어냈다.

껍질만 남은 청년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서서히 잊혀져간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은둔형 외톨이들은 올해 들어 43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공식 집계다.

무직 상태에서 취업 의욕이 둔화된 113만명의 '니트족' 안에 포함된 새 문화종(文化種)들이다.
니트족의 가파른 증가추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더라도 70만명이 예비 무위도식자들인 셈.

니트족은 '갈라파고스 거북'처럼 고립상태에서 독자적으로 폐쇄일로의 진화를 거듭하는 고유종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경쟁에서 일탈해 무위도식자로 이행해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느날 부터인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게 된 그들의 사연은 여러가지다.

혹자는, 조직 구성원으로 당하는 심신의 고통을 피한 것이 그 처음이었다.

다른 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현실이나 사람, 장소 등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는 경쟁에서 밀리고 척박한 생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도피한 것이 그 시작이기도 했다.

압도당한 절망, 그것은 장기화되면 필경 파멸을 초래한다.

밀어붙이는 시장(市場)의 완력에 대항하다 힘을 뺀다는 건 틈을 보이는 것이다.

버티는 것을 포기한 순간 다시 버틸 기회를 포착하기는 어렵다.

좁은 방에 내동댕이쳐져 무능력을 자학하는 시간은 짧을 줄 알았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인데, 방문턱을 다시 넘지 못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회나 어떤 상황이 기대하는 자신의 역할이 깡그리 없어졌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시장'과 '나'사이의 돌이키기 어려운 간극은 결국 '나'가 벌렸다.

'나'는 또 부모들이 양산한 괴물이다.

온실에서 양육하며, 미래 예측과 설계와 실행을 함께해 온 무한 희생의 결과다.

'나'로부터 자신감을 앗아간 주체는 '나'를 중심으로 도는 가족이었다.

더구나 가족은 '나'의 능력을 검증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환대한다.

'나'는 안전한 은신처가 있고, 밥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의 폐쇄성을 어찌할 바를 몰라 자조하며 주저앉아 고립무원에서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가상의 세계를 접속해 좁은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며 부자유를 자유로 치환한다.

니트족들은 스스로 불행하지 않을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자신이 문 밖으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나가려했던 기억 조차도 어느 지점에선가 잊어버린다.

온실을 자처하는 부모들이 만들어준 문화다.

단절감이 키운 이기주의가 '나'에 대한 맹목적 과보호와 간섭의 근원이다.

무위도식자가 늘어나면 사회적인 부담과 불안이 가중된다.

지난해 12월 집안에 틀어박혀 게임에만 몰두하던 청년이 행인을 이유 없이 살해한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3년 전에는 경제적 압박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남자가 고시원에 불을 질러 무고한 사람 여섯이 숨졌다.

우리 사회의 니트족은 청년 실업자에 견줘 3.4배에 이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몇달 전 학계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다.

학력이 높을 수록 니트족의 비중은 높게 나타났다.

대졸자의 실업율 대비 니트율은 3.1배에 달한다.

부모의 간섭에 많이 노출된 층일수록 니트족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방증한다.

특히, 고학력자들은 실업상태를 받아들이기 꺼리면서 장기간 취업준비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40~50대 비경제활동 인구와 달리 일을 해본 경험도 없어 갈수록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노동시장에는 고학력자를 흡수하는 기능이 저조한 중소기업과 신규채용에 인색한 기업들이 태반이다.

따뜻한 부모와 냉혹한 시장은 니트족을 자발적으로 취업을 기피하는 무위도식 상태에 빠뜨리는 근원이다.

니트족 문제, 공통의 의제로 다뤄야

청년 니트족의 증가는 중산층 붕괴와 빈곤층 확대를 야기한다.

나아가 국가 경제의 활력 약화로 이어진다.          

청년노동력 손실과 직결되는 니트족 문제를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의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가뜩이나 자생력이 약한 니트족은 가혹한 노동시장에서 좌절을 겪으며 소통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산업제일주의 정책의 과실은 일자리 생산에 재배분되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지만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는 기형적 현상의 원인이다.

상대적으로 극미한 일자리 공급으로 취업시장은 과열되고 9급 공무원 경쟁률이 100대 1에 이르는 악순환 고리다.

거기에는 청년들의 높은 취업 기대치, 노동강도와 소득편차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이 뒤섞여있다.   

고시준비생이나 취업준비생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반듯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편견도 한몫 한다.

이 나라에 노동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넘쳐나지만 전문인력은 없는 이유다.

힘든 일을 두려워 하지않는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일본의 '자립기숙사' 처럼 사회참여 의욕과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니트족들의 도전정신을 기르고 노동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삶의 가치를 드높이는 방법이다.

대기업들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도록 책임을 지우는 공공정책이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