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 나라의 전직 대통령을 바위 절벽 아래로 떠민 검찰은 주체 할 수 없는 권력의 맛에 도취되었던 것일까.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한명숙은 그 연장선상에서 검찰을 만났다.

급부상하던 유력한 대권주자는 5만달러 뇌물수수 혐의를 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침몰했다.
언론은 정보의 출구를 장악한 검사에 의해 놀아났고, 이 과정에서 한명숙은 범법자로 낙인 찍혔다.

그 시작은 돈을 줬다는 진술이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그 진술은 오락가락했고, 전적으로 입에 의존했던 검찰의 패배는 처음부터 예정됐었다.

무리한 '표적수사'라는 여론을 의식했던 것인지,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에 열상(熱傷)을 입었던 것인지, 법원이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펄쩍펄쩍 뛰었다.

선고를 하루 앞두고 특정회사와 자회사, 회계법인 따위를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비상타격대 같은 수사를 벌려 석달 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명숙을 또다시 기소했다.

집요했다. 1년 3개월 동안 5차례의 공판기일 준비와 23차례의 공판이 열렸다.

법원의 172쪽에 달하는 판결문은 한명숙을 어떻게든 엮어보려 했던 검사의 집념을 단적으로 반증한다. 

하지만 검사의 그런 의지는 앞선 뇌물사건 때와 똑같은 이유로 좌절됐다.

한명숙의 불법정치자금수수 여부를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지난 달 31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완력만 믿고 설친 검사에게 '입증 실패'를 선언했다.

'표적수사'라는 비난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면서까지 한 사람을 연달아 두번씩이나 법정에 세운 검찰을 그냥 간과하지 못하게 된 지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불속에 들어갔던 검사는 만화에서 처럼 방화복을 입고 걸어나와 우리의 시야에서 유유히 사라질 것이다.

당초부터 검사는 확신 없는 수사결과로 한명숙을 기소했다.

재판과정에서 돈을 건넸다는 쪽의 진술이 바뀌자, 그의 회사 채권회수 목록이나 달러 환전 내역 등 증거확보에 허둥지둥했던 검사의 잔상이 그걸 명증한다.

'무리한 기소'를 넘어 '의도한 기소'라는 세간의 의혹에 무게를 실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수사에 착수하거나 말에 의존해 기소하는 것은 명백히 검찰권 남용이다.
그런 시스템이 작동할 경우 국가권력은 검찰을 국민 혹은 정적(政敵)을 겁박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다.

그 뿐인가, 이런 검찰은 부패한 세력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다.

두개의 사건으로 한명숙을 기소한 검사들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뒀다.

국민의 알권리에 편승한 검사는 뚜렷한 물증이 뒷받침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지속적으로 기자들에게 흘렸다. 그 결과 다수 국민들은 한명숙이 범법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오인했다.

검사는 이로써 우선 '무리한 수사 착수'라는 한명숙 지지세력의 반발을 잠재웠다. 평소 한명숙을 청렴한 정치인으로 인식했던 국민들이 가면 벗겨진 '가증스러운 한명숙' 앞에 개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명숙의 인격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철저하게 짓밟혔다. 만약, 국가권력의 상층부가 '정치인 한명숙' 제거를 의도했다면 제대로 성공한 꼴이다.

이들에 앞선 문제의 검사들이 승승장구하며 건재한 것을 보면서, 그런 가설이 진실의 지위로 이동한 경우를 우리는 무수히 발견한다. 

하지만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는 없다. 그들을 기소할 주체가 없는 탓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 등 엉터리 표적수사로 기소했던 사건들이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났지만, 책임지는 검사는 없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우리의 사회윤리의식은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정치검사는 성역에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의식구조다.

법무부훈령 인권보호수사준칙을 무색케하는 검사들의 도를 넘어선 폭력행위를 단죄해야 하는 이유다.

표적수사니 정치탄압이니 수면 위의 논란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전제된 근원적인 사법개혁이 필요하다.

이 나라의 검사들은 자신들을 정권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준 전직 대통령도 죽음으로 몰았다. 그 동기라는 게 정권에 다시 빌붙어 스스로를 속박하기 위해서였다.

원칙무시 검사 사이코패스보다 더 위험

권력이 이성을 잃었을 때 사이코패스보다 더 위험하다. 검사의 정신과 양심을 점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법에 앞서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국민은 상식에 기반해 합의된 우리의 법을 공감한다. 

법정에 선 피고인은 범법자로 의심을 받고 있을 뿐, 확정 판결이 있을 때 까지 무죄다.

우리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이다.

누구든지 특정인의 추정되는 범죄사실을 공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피고인이 자백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증거에 의하지 않고는 유죄의 이유로 삼을 수 없다.

증거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

법관이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유죄라는 의심을 갖게 됐더라도, 검사가 제시한 증거에 객관성이 없으면 무죄를 선고해야하는 근거다.

사람은 누구나 모함이나 무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법률과 법절차에 무지한 사람이 사법기관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아무 까닭이나 실속도 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에는 법관의 개인감정 개입을 차단하고 오판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가 담겨있다.

하물며 검사의 법집행을 상식으로 예측하기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떻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 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