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가 방송 밖으로 뛰어나와 눈부신 잉여가치를 수놓고 있다. 최고의 음원수익을 내고, 흘러간 가수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몸값을 100억원대까지 끌어 올리는 등 각종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열광의 도가니는 무엇에 의해 촉발되었을까.

'나 가수'는 제작의도가 표방하듯이 실력파 가수들에게 색다른 미션을 부여하고 수행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형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험이었다. 음반과 공연시장을 아이돌에게 장악당한지 오래되었고, 매일 새로운 스타가 명멸하는 메스컴의 한 복판에 이미 축출되었던 가수들의 귀환이 가능하리라는 것은 몇몇 기획자들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몇회 지나지 않아 상식을 뒤집었다. 청순, 발랄, 파워, 섹시아이콘들이 일렁이는 음악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을 추월하더니, 최고의 시청율을 자랑하는 프로그램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전쟁터는 시청자들의 안방에서 카타르시스가 되어 일상으로 환류되었다. 그것은 보기드물게 방송이 확보한 진정성에서 기인한다. 노래나 퍼포먼스가 주는 감동의 정도를 순전히 시청자와 관객이 평가하도록 일임한 결과다.

이는 자본의 허위로 가득찬 우리 음악시장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실험정신이었다. 자본은 홍보와 음악프로그램 출연, 음악들려주기의 횟수를 결정하고 음반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자본에 의한 아이돌의 이미지 메이킹은 소비자들에게 다른 것을 접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조작에 가깝다.

하지만 '나 가수'는 전문가들과 음악애호가들이 선정한 한물 간 가수들을 무대에 세우되 버라이어티 형식을 빌어 자본과 맞서는 것을 피했다. 전통적인 음악프로그램이 구축한 아이돌 팬들의 시야에서도 절묘하게 비켜섰다. 이 혁명적인 프로그램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안방과 음원시장을 석권하며 천문학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브랜드 파워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혁명적이다.

기획자들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나 가수'는 기존 음원시장을 파괴하고 확장했다. 이로써 자본의 횡포에 밀려난 가수 뿐만 아니라 음악 마니아들의 귀환을 이루어내 음원시장을 확장한 것이다. 가수들은 소위 비디오형이 아니다. 목소리와 편곡, 호소력이 그들에게 주어진 도구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대중을 사로잡는 그들의 힘에 더 놀라는 것이다.

'나 가수'의 무대에 서는 가수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부를 곡을 편곡하고 공연을 준비한다. 그들은 무대위에서 가창력과 성량, 기교, 음악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평가 결과는 늘 예상 할 수 없다. 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애초에 한 시대를 풍미했었고, 탄탄한 기초를 갖춘 나름의 색깔들이 분명한 실력파들이었다. 우열을 가린다는 발상부터 과도한 의도였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가수들의 경연이야말로 '나 가수'를 인기 절정에 끌어 올리는 핵심이다. 그들이 무대를 준비하는 현장과 경연에 임하는 태도, 초조하게 공연 순서를 기다리는 장면, 상대 가수의 선전하는 모습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클로즈업되어 시청자들의 시야를 꽉 채웠다. 특히 '나 가수'의 카메라는 청중평가단의 표정 하나하나에 담긴 감동까지 클로즈업하며 '나 가수'를 향한 청중들의 경외심을 부각시켰다.

경연이 노리는 긴장감은 그런 클로즈업의 증거효과들에 의해 극대화되며 극명한 사실감을 확보했다. 청중평가단은 방송국이 선정, 초대한 음악 애호가들이다. 이들은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강렬한 리듬에 몸을 흔들고, 감미로운 선율 위를 미끄러지는 목소리에 눈을 감는다. 그들의 눈은 애절한 울림에 흔들리며 이내 촉촉하게 젖어들기도한다. 그들의 이같은 심취는 어느 때엔 공연보다도 감동적이다.          

게다가 자타가 실력을 공인하는 자존심 강한 가수들이 경쟁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경탄하는 장면들은 '나 가수'의 퀄리티를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나 가수'의 클로즈업은 감동에 대한 일체감 어필에 성공하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확인한다. 이것은 음악에 무관심하던 시청자들까지 깨우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런 '나 가수'의 사실주의는 무대에 임하는 가수들에게 변화를 강요한다. 발라드나 소울 이미지를 굳혔던 가수가 하드락을 부르며 헤드뱅잉에 혼신을 다하고, 비트가 강한데다 빠른 템포의 노래에 격렬한 춤을 곁들이는 파격이 시도된다. 더구나 자칫하면 탈락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멈추지 못하는 실험무대다. 시청자들이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는 포인트다.

또 있다. 가수들은 댄스곡을 발라드로 재해석하는 등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청자들에게 음악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음악의 공존을 재확인한다. 중년에 이른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은은한 설레임을 되찾았다. '나 가수'가 세대를 소통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분위기의 선봉에 선 것이다.

조작된 프로그램은 '단명'

그렇게 확보하는 방송매체의 공익성, 선뢰성, 공정성은 '나 가수'를 시청하는 사람들에 안도감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노래에 대한 평가는 그것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가수의 역량을 우선해야 한다는 중력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공정이 만연한 이 시대에서 '나 가수'가 확보한 공정한 게임의 의미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나 가수'에 집중된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는 그 이면에 필연적으로 같은 크기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은 우선 카메라에 클로즈업되는 모든 리액션이 계획될 수 있다는 자각을 촉발한다. 이 모든 감성 커뮤니케이션의 작용이 조작될 수 있다면 '나 가수'는 우후죽순 처럼 난립하는 유사 프로그램들에 의해 조만간 침몰하고 말 것이다.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오직 상품을 포장하기 위해 리엑션의 클로즈업을 조작하거나 의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멸의 길이다.

또 하나는 경쟁의 과도한 중압감이다.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 찢기고 터진 대중이 지지하는 가수와 함께 공유하는 과중한 스트레스가 사회문제로 비화될 공산이 높다. '즐거움'을 본질로 삼는 버라이어티쇼의 균형감을 잃는 순간 예상치 못한 역기능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