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당장 휘청거리고 있는 경제 위기 국면에서 군부가 불안하다. 검찰은 경찰과의 밥그릇 싸움에서 밀린 뒤 자중지란에 빠졌다. 국회는 재계와 충돌하며 빈약한 인파이팅력을 드러내 서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청와대는 강경일변도로 치달아 온 독단의 누적 탓에 급속하게 노쇄했다.

국민 대다수는 접힌 오금과 휜 허리를 펴지 못한다. 오히려 가파른 물가 오름세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계 빚과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는 집값 등속의 생활고에 짓눌리고 있다. 극심한 피로감 그 자체가 각가지 사회병리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불안정한 안보는 우리를 벼랑끝으로 내몬다.

비극은 뜻밖에 오는 듯 하다. 천안함 침몰이나 북측의 연평도 포격이 그렇다. 예상이나 예고는 있었더라도, 그렇게 무모한 일이 벌어지리라곤 꿈에서라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난 4일 한 해병대 병사가 총기를 난사해 동료들을 살해한 일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한다.

사고의 원인으로 대두되는 부대내 왕따행위 근절은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살인죄에 대한 처단 역시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해병대의 왕따행위인 '기수열외'가 시사하는 바는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않된다. 기수열외는 해병대의 전통이다. 그 대상자는 선임병들이 지정한다. 부대원들의 눈 밖에 난 특정 사병에게 하급자까지 동참하는 가혹행위가 그렇게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부대가 스스로 위계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다.

질서는 긴장을 요구한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대의 위계질서는,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지키려는 관성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극한의 훈련이 전투력 증강 못지않게 전술운용에 필요한 결속력을 추구하는 이유다. 대열에서 낙오나 항명이 잇따르면 그 대오는 순식간에 무너져버린다. 그것은 재앙을 부른다.

기수열외는 낙오자를 짓밟고 항명을 조장하는 질서파괴 행위다. 이렇게 위험한 군대가 또 어디에 있는가. 군대 안에서는 자아를 조직의 일부에 끼워넣어야 한다. 신체의 건강과 강한 정신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주체를 객체로 치환해야 되는 불가항력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또, 폐쇄성이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다.

조직의 일부가 결함이 생기면 즉각 복구하는 것이 유기체의 본능이다. 그러나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현장이 우리의 해병대였다. 총기참사를 일으킨 병사는 그 반작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리는 제자리를 맴돈다. 어쨌든 기수열외가 전통이었다면, 앞선 왕따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견디고 무사히 복무를 마쳤던 것일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떨어진 비극의 이면에는 극도로 예민해진 일촉즉발 상태의 심리가 있다.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병사의 저항이 누군가를 죽이고 자살을 기도할 만큼 절박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개인차로 몰아가는 것은 미봉(彌縫)이다. 미세한 차이 일지라도 선을 넘게 된 그의 의식은 나비효과의 결과물이다.

과거에 그가 경험했던 세상과 현재 그가 속한 부대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그의 시선을 피해서는 이번 총기참사의 본질을 마주할 수 없다. 살인마가 된 병사는 불안과 성격장애, 정신분열 등의 증상을 지닌 요주의 관심병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군생활 일년 남짓 된 상병이다. 그가 입대하기 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면 그 몇해 사이는 광란의 파동에 몸살을 앓았다.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PD와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체포되는 필화사건이 잇따랐고, 농성중이던 주민 6명이 희생된 용산참사는 대한민국을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었던 1970년으로 되돌려 놓았었다. 직전 정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현 정부 초입에서 바위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MB정권은 앞선 정권에서 합의·종결 됐던 세종시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파업 과정이 보여주듯이 사선을 넘나드는 극강의 저항 없이는 해법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권은 청문회에서 난도질 당한 장관후보들을 어떻게든 기용하려했고 상당수를 기용했다. 노무현과 김대중 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부도덕성이다.

그런 가운데 군부 안에서는 장성 2명이 사령관 음해 혐의로 구속되고, 해안 초병이 민항기를 향해 오인 경고사격을 하는 등 군 기강해이 사건이 잇따랐다. 게다가 법치국가의 검찰 간부들이 수사지휘권 조정과 관련된 형사소송법 개정에 불만을 품고 집단 사의를 표명하는 하극상으로 법치(法治) 일선이 흔들리고 있다.

총기참사, 고립감과 피로감의 산물

재벌이익 재분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도탄에 빠진 서민경제를 구제해야 할 국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입법으로 승부를 하지 못하고 재계를 향해 무의미한 고함이나 지르며 쇼를 하고 있다. 국민들은 맥이 빠지고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강요하는 힘이란 특정한 주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 왜곡을 허용하는 사회 내부의 부조리한 정서가 조장하는 것이다. 적당히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불의와 야합을 일삼는 위선자들은 그 산물이다.

그런 부적절한 관용은 해병대의 '기수열외'가 싹튼 토양과 맞닿아 있다. 해병대 정신은 '맞아도 참는게 남자'라는 왜곡된 마초이즘(남성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깨는 행위는 곧 해병대를 와해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악습 '기수열외'는 거기에서 자랐다. 예외적 폭력이 허용되면 다른 폭력을 제어할 방법이 없게 된다. 서로의 폭력과 부정을 눈감아주고 만연케 하는 왜곡이다. 관행을 고치고자 하거나 저항하면 도태된다.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타살과 자살사이에는 어떤 노력으로든지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 할 수 없다는 한계인식이 있다. 중재와 조정력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있다. 민주주의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정부가 주도하고, 또는 협력하며, 국가안보와 사회안녕을 지키는 핵심권력들이 탐욕으로 부글부글 끓는다면 더 기대 할 것이 있겠는가.

고립감과 피로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총기참사를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