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 나라에는 화(和)가 없다. 충돌이 끊이지 않고 그에 따른 소음으로 각 주체들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저마다 말을 하지만 상대방이 듣지 않으니 더욱 커지는 목소리들이 뒤엉켜 길을 잃었다. 그 틈에서 살려달라는 목소리 하나는 뚜렷하다. 묵살과 강행 일변도의 리더들이 불협화음과 불통의 근원이다.

상하 또는 각 집단의 리더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주장에서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그 생각의 실행 과정에서는 모두가 지존(至尊)이다.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며 진격 앞으로를 외치는 지존들 천지다. 우리의 대통령은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 4대강 사업을 위시한 여러 독단의 흔적들이 그걸 여실히 방증한다.

리더들이 한사코 지향하는 것은 부(富)다. 그들은 부의 길을 내기 위해 거대한 로드롤러에 올라 크고 작은 돌들을 짓누르고 평탄한다. 신자유주의의 길이다. 이는 무한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부의 집중과 빈곤의 보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힘을 가진 리더가 부의 집중을 부추기면서 이 나라는 위기에 떨어졌다. 

과거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던 경제통 조차도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의 체제가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마당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세습이 되면 자본주의는 반드시 붕괴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부자들에게 부과하는 직접세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큰 종부세 폐지와 같은 감세정책 기조아래 가난한 사람들이 더 부담해야 하는 간접세 중심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구나 조세 규모로 보아서 우리는 OECD국가 중 가장 세금을 적게 내는 나라에 산다. 담세율이 소득의 20%에 머문다.

복지수준이 형편 없을 수 밖에 없다. 800만명이 1인당 최저생계비인 월 53만원도 못버는데, 이중 140만명 정도만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 경제성장과 수출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과 재벌들은 그에 따른 혜택도 독식하고있다. 벌어들인 만큼 세금을 내지도 않으며 돈도 쓰지 않는다. 빈곤화 성장이 심화되는 이유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소비다. 공존을 위한 선순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대기업들의 저축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쌓아둔 돈이 100조원에 이른다. 자기자본의 12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신규든 증설이든 시설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고용율은 낮고 실업율은 높다.

2005년 907만명 정도였던 저소득층이 2009년 1,173만명으로 늘었다. 4년새에 266만명의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런데도 수출주도국가의 정부는 모든 경제정책을 대기업에게 유리하게 운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한 군데로 집중되고 대다수가 더 가난해지는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우리 정부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대기업이 호황과 저물가를 누리며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 조류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의 방편이다. 정부의 수출주도형 반(反)자유시장체제 구축은 수많은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좌절을 안겨준다. 필연이다.

하지만 정부가 빈자들에게는 무한경쟁의 이념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경쟁력있는 기업은 더 잘하도록 도우면서, "힘없는 서민은 경쟁에서 낙오하면 도태되어야 마땅하다"는 이중잣대가 작동하는 한, 정부의 대기업 지원을 위한 시장개입 정책 역시 부당성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정부 스스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까닭이다.

권력의 수혜를 입은 재벌이나 그들과 공존하는 관료들 사이에 만연한 의식을 보자. 그들은 일찌감치 권력에 집착하고 자기성취에 취하여 세상을 공정하게 보는 시각을 잃어버렸다. 성공은 전적으로 자신의 성과물이며,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열등하기 때문에 그 댓가를 충분히 치러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이로인해 그들은 보편적인 등가의식과 판연히 다른 가치기준을 지닌다. 보통사람은 1km를 전력질주해서 남보다 먼저 도착해야 간신히 쟁취하는 것을 자신은 손만 내밀어도 얻을 수 있어야 공정하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노동자, 비정규직, 실업자, 집값, 의료, 복지 등속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방증하는 의식이다.

티끌에 섞여 부드러워지는 빛 처럼

정부가 시장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이익의 재분배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해서 빈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이 잘 되면 다 잘된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균형을 잃은 체제는 위태롭다. 성장과 분배의 틀을 다시 짜기 위해 화광동진(和光同塵)이 필요한 때다.

부자가 먼저 자신들의 빛(지위나 힘)을 감추고 세상과 어울려야 한다. 화광동진은 본래 '빛이 티끌에 섞여 부드러워진다'로 새긴다. 부자가 지금처럼 자신의 빛을 지나치게 발광하여 빈자가 바라볼 수 조차 없는 조건이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상속세로 인해 자신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였던 빌게이츠가 상속세 폐지를 끝내 반대했듯이 부자들이 바뀌어야 한다. 자신이 축적한 부는 자본주의 덕택이었으므로, 벌어들인 만큼 세금을 내는 것는 자본주의를 지키는 마땅한 행동이라고 했던 빌게이츠 처럼, 부자들이 자본주의에 빚을 갚아야 한다.

혁명이 일어나 체제가 붕괴되기라도 한다면,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벼랑 끝에 몰리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이제 부자들이 탐욕을 내려놓고, 군림하는 속기를 버려야 한다. 공동체 안으로 내려와 어떤 유형의 물질이나 재화도 같은 댓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대체로 고르면 가난한 사람이 없고, 화합하면 모자라는 일이 없으며, 편안하면 망하지 않는다. 도덕경에서 화광동진에 이르는 길은, '입을 닫고 머릿속의 의도를 닫고,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빛을 누그러뜨려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부자들이 귀천이 없는 땅에 내려서야 할 때다. 보편적 가치의 척도로 세상을 바라봐야만 할 순간이다.

기회불균등에 의해서 얻어진 재화는 부당이득이다. 기회불균등에 의해서 소외된 빈자는 그 반작용의 소산이다. 죄를 묻지 않는 때에 속죄를 분배로 대신 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