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어느날 부터인가 양이 이빨을 갈았다. 풀을 뜯어먹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테지만, 어떤 맹수의 살이든 물면 깊숙히 파고들 것이다. 가능하면 목을 물어 동맥을 끊어놓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관성을 뛰어넘으려 한다. 이빨이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풀을 못뜯어 먹어도 죽지 않는다면 기회는 있다. 양이 늑대를 이기는 날이 온다면 양은 진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란이다. 늑대들이 원치 않는 일이고, 늑대에 복속된 무리들이 원치 않는 일이다. 항전하는 양은 세력을 구축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과 같은 의지를 가진 다른 양들은 늑대와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에 의해 와해 될 것이다. 그들의 위협에 따른 공포를 당장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양은 물러설 수도 없게 되었다. 양도 늑대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도 죽음과 싸워야 하는 처지다. 왜 이빨을 갈았는가. 늑대들의 광기앞에서 숨도 못쉬는 자신이 싫어서였다. 바로 죽이지 않고 아무때고 나타나 다리를 물고, 몇일이 지나 흐르던 피가 멎고 아물면 몸통을 물고, 또 피가 멎고 아물어 간신히 추스르면 문 데를 또 물고,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늑대의 그 잔혹성은 속성일 수 있지만, 광기의 원천인 희열은 자신의 무기력과 무대응이 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거리를 짓고 군림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고 그것을 즐길 지위를 갖기 위해서다. 동물의 본성 중 일부다. 폭력은 탐닉을 속성으로 지녀서 일단 빠져들면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당하는 쪽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할 때 까지 무자비한 폭력은 난무한다. 그것은 자의식이 강한 대상에게도 예외이지 않으며, 그럴 경우 맹수는 예기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된다. 폭력에 굴복하기보다는 자살을 선택하거나 저항하는 양을 맹수는 이해하지 못한다.

맹수에게 그런 양은 적자생존의 법칙을 거스르는 부적응자일 뿐이다. 저항하는 양은 단죄 대상이 된다. 맹수는 보다 집요하게, 조직적으로 물고 할퀴며, 집단가해를 암시한다. 양이 느끼는 공포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관심 조차 없다. 무조건 백기를 들때까지 무차별적이며 파상적으로 무참하게 짓밟고 몰아붙인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양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빨을 가는 것 밖에 없다. 본디 약육강식의 야생의 세계란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닌가.
우리는 알고 있다. 양은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약자는 정의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우화(寓話)다. 그래야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시대 학교의 현실이다. A 초등학교에서 1년 전부터 바로 몇일 전까지 버젓이 벌어진 상황이며, 진행형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지속적인 학교 폭력과 왕따가 우화로 재구성되는 쪽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본래부터 우화였다고 믿는 쪽이 편하고,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을 경우에 모르고 있었던 우리 내부의 심각한 장애와 맞닥뜨리게 되는 탓이다. 당장에, 발을 앞으로 내 디딜 때 마다 덜커덕거리는 관절들의 통증과 불편을 누가 선뜻 감수하려 하겠는가.

특히, 피해 학생의 부모는 자신들이나 자식에게 그 원인을 제공할 만한 장애가 있지않나를 먼저 성찰하면서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A 초등학교 케이스의 학부모들은 10개월 동안 줄곧 자신들의 내부와 피해학생의 행동거지를 관찰했다. 비록 자신들과 자식의 결함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제3의 눈으로 뜯어봤을 때 결함일 수도 있을만한 것에 대해서까지 맹성(猛省)하며 인고(忍苦)의 나날을 보냈다.

어린 자식이 병원에서는 밝혀내지 못하는 극심한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고, 우울감에 빠져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던져오자 부모들은 더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학교로 향하면서도, 공식적인 문제 제기로 인해 오히려 자식이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나약한 존재였다. 학부모가 학교나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인상을 줘서, 학교 내부에 교권침해 논란이라도 불러 일으키게 될까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자식이 갖게 된 피해의식을 해소하는 일,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 같은 처방은 그 근원인 학교 안에서 제시돼야 했다. 그런 확신이 이끌지 않았다면 학부모는 결코 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측은 학부모들의 간곡하면서도 지극히 절제된 학교폭력 신고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학교측은 구체적인 신고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조치했는지 피해학생측 학부모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가해학생 학부모측은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 피해학생측에서 인지한 것은 교감선생님이 문제의 교실에 와서 한 차례 왕따와 학교폭력에 대한 특강을 했고, 가해학생들과 피해학생을 나누어 반을 편성해 줬다는 것 뿐이다. 그렇게 7개월이 흘러갔다.

학교폭력, 관리시스템 부재

몇일 전 A 초등학교에서는 1박 2일코스의 극기훈련을 갔다. 그 전날 피해 학생은 여러 명의 학우들로부터 극기훈련장에서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집단폭행을 예고하는 수준이었다. 피해학생은 엄습하는 공포감을 부모에게 전했다. 담임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부모는 잘 살펴달라는 당부와 함께 피해학생을 보냈다. 하지만 극기훈련장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보란듯이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가해학생들의 온갖 언어폭력과 직접적인 폭력행위가 피해학생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결국 피해학생은 극기훈련장에서 담임선생에게 인계된 뒤 귀가조치됐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적법한 조치를 요구하자 학교측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해학생과 같은 반 학생들에게 피해학생을 어떻게 보는지를 쓰라고 지시한 것이다. 다음 날에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마주 앉혀놓고, 피해학생에게 가해학생이 돌을 던졌는지를 본 대로 제대로 말하라고 수차례 추궁하면서 윽박질렀다. 학교 안의 학생들은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맹수와 양이 공존하는 세계다. 학교측의 행태가 명증하는 사실이다.
적자생존에 부적응하는 양은 학교의 안녕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라는 태도다. 거기에서 축출돼야 할 대상은 복수의 가해자가 아니라 단수의 피해자다. 학교가 학교폭력을 공식화한 학부모와 피해학생을 오히려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양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