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의 노동문화는 여유의 결핍을 앓고있다. 일상에서 조차 긴장을 풀지 못하고 움직여야 할 때는 천길 벼랑길 같은 험로를 택하거나 배수진을 친다.

자본이 보다 많은 잉여가치 착취의 지점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또, 노동과 자본의 중간지대에서 조정역을 수행, 암흑 속에서 두 진영의 접점을 비추는 촛불이 돼야 할 정치는 본령에서 벗어나 겉돌고 있다. 정치는 노동환경을 제어하는 시스템이지만, 정치와 노동은 서로에게 소외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는 자신이 필요 할 때만 노동을 찾고 이익을 취할 뿐이다. 

오히려, 노동은 본질이면서 정치현상에 억압 받는 역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의 협력을 받지 못하는 우리의 노동에는 무력감과 억울증, 분노 같은 것들이 숨어있다. 우리의 정치와 노동시장의 경쟁력이 허약한 이유다. 산업정책연구원(IPS)은 지난 17일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이 평가에서 한국은 노동시장 개방과 노조 문제에서 37위에 오르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정치가 및 관료 부문에서는 40위로 일본(23위)은 물론 중국(18위)에도 밀렸다.

다음날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평가에서도 한국은 노사관계 생산성(53위), 해고비용(49위), 고위 간부의 경쟁력(52위) 등 노동시장 관련 항목에서 줄줄이 최하점을 받았다. 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처음으로 20위권 안으로 진입했는데, IMD는 이런 순위 상승 요인으로 차별화된 산업전략을 꼽았다. 저가 제품과 노동집약 산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한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평가 결과들은 우리 노동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 내용은 우리가 체감하는 우리의 노동현장의 표피를 조명한 것에 불과하다. 분규가 발생하면 노조원 가운데 누군가는 높은데서 뛰어내리거나 불에 타서 죽는, 정치와 자본의 불감증이 짓누르는, 갈수록 처절해지는 몸부림과 좌절이 만연한, 그런 노동현장을 어떻게 평가할까. 거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력은 국가경쟁력 평가에 어떻게 반영될까.

오늘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 35m 고공크레인 위에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매달려 있다.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지난 1월 6일 올라간지 143일째다. 한진은 3천명의 노동자를 이미 정리해고 했고, 4백명을 추가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 네명이 여러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노동부는 현장에 없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동부 차관을 노동부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현 정부 3년 반 동안의 극심한 노동핍박과 노동탄압의 중심에 있었던 반노동적 성향의 인물이다. 정동영 의원은 지난 26일 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전태일 열사를 아는지, 전태일 평전을 읽어봤는지를 물었다. 이것이 우리 노동이 처한 현 주소다.

특히, 노동집약산업을 버리고 그 자리에 첨단장치산업을 급진적으로 채우는 우리 정부의 산업정책은, 자본가와 정부가 목축업을 위해 토착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생산자의 지위를 박탈하고 도시 노동자로 내몰았던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기의 그것과 흡사하다.

노동의 욕망과 그 때문에 자본에 복속된 노동의 지위를 생각해보게 되는 시점이다. 최근 우리는 감세와 보편적 복지를 화두로 안고 있지만, 본래적 노동의 가치를 상실한 마당에 그것을 이룰 공동선(共同善)의 동력은 미흡하다. 노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인정투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신묘년 노동절을 지나며 노동의 발자국을 반추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권적인 위상의 근거는 꽤 많다. 만물의 척도이고, 존재의 의미를 알며, 사유한다. 이런 인간중심주의의 기틀 위에서 '노동'은 모든 가치의 원천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는 세상의 주인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아니었던 스미스, 리카르도, 헤겔 같은 부르조아 사상가들이 정의한 명제다.

아담 스미스는 노동을 다른 것으로 환원 될 수 없는 절대적인 척도로 간주했다. 모든 부(富)를 비교하고 평가해주는 단일한 척도며 표상의 외부에 있는 불변적인 척도다. 그의 노동은 리카르도에 이르러 모든 가치의 기원이며 생산자라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노동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토지의 자연적 생산물로 충족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근본적이고 기원적인 희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벌이는 가치생산활동이 된 것이다.

합목적적 활동으로 돌아가야

이처럼 노동중심주의 사유체계 아래서 '가치'와 '인간'과 '역사'는 노동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모이고 응축된다. 그런 토대 위에서 헤겔은 노동이 주체의 합목적적 활동과정이며 자기를 입증하는 인간의 본질로 파악했다. 노동자는 노동을 하면서 세계의 실질적 주인으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획득한다.

하지만 '가치'나 '인간', '역사'와 같은 핵심 개념들이 노동이라는 개념과 결합적이고 종속적인 연관을 맺으며 확고하게 계열화됐을 때, 노동은 계열화된 입체적 공간 안에서 거꾸로 인간의 올가미로 역전했다. 인간의 합목적적 활동이었던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으로 변환되었다. 노동력은 잉여가치를 창조하고 자본을 증식시키는 수단이 된 것이다.

가치를 생산하고 싶다는 욕망,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치 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대신하고 대체했다. 자본에 의해 구매되어 자본에 의해 포섭되고 싶어하는 노동의 욕망은 곧 '자본의 욕망'이라는 역설을 지닌다. 기실, 노동의 가치는 시종일관 노동자의 것이 아닌 자본가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아이러니 하게도 노동을 어떻게든 가치화 하려는 노동자의 욕망이 합작한 결과다.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먼저 자본이 그 실천이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또, 노동자는 투쟁의 지평을 넓혀 노동의 근원적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원적 축적의 폭력과 노동을 위한 다툼이 노동시장을 계속해서 지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