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배 편집국장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남을 바로잡지 못한다"

맹자가 제자 진대에게 '틀린 방법으로 정도(正道)를 세울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 대목이다.

맹자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개는 불의(不義)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후에게 스스로 나아가 왕도를 펼치지 않았다. 진대는 그런 맹자의 원칙이 대의(大義)에 뜻을 두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법도에 얽매인 것에 불과하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는 스승에게 한 자를 굽혀 여덟자를 바르게 할 수 있다면 나아가 제후들을 만나 봄직도 하다고 진언한다.

맹자는 진(晋)나라의 유능한 사냥수레 몰이꾼 왕량의 고사(古事)를 들어 공리적(功利的)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제자에게 자신의 소신을 설파한다.

진나라의 대부 조간자는 왕량에게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해(奚)를 따라가 새 사냥을 돕도록 했는데, 해는 왕량과 함께 종일토록 사냥을 다녔으나 단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했다. 해는 돌아와 조간자에게 '왕량은 천하에 하잘 것 없는 수레몰이꾼'이라고 평가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량은 조간자를 찾아가 다시한번 해의 사냥마차를 몰도록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왕량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번 매달린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번 사냥에서는 아침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열마리도 넘는 새를 잡았다. 뛸듯이 기뻐하던 해는 조간자에게 복명하기를 '왕량은 알고보니 천하에 둘도 없는 수레몰이꾼'이라고 했다.         

조간자도 기뻐하며 왕량에게 앞으로 해의 사냥수레를 맡아서 몰라고 일렀다. 그러나 왕량은 그자리에서 거절하며 말했다. 시경(詩經)에 수레 모는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화살을 쏘아 다 맞힌다고 했는데, 처음 사냥을 나갔을 때 원칙대로 수레를 몰아 도왔지만 해는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법도를 무시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사냥감을 만나게 해주니 아침나절에 새를 열마리나 잡았다는 것이다.

왕량은 해를 가리켜 원칙대로 모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인'이라고 했다. 오로지 반칙으로 도와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모시는 것은 익숙치 않다고 했다.

맹자는 그런 왕량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비추며, "나의 원칙을 버리고 부르지도 않는 제후에게 나아가 반칙을 강요당할 수는 없다"고 정리한 것이다.

원칙은 맹자의 덕목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곧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군중 속의 한 개인에게 활력을 불어넣거나 삶의 의미를 지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시티의 대형시장 한 구석에서 매일 같이 좌판을 열고 양파를 팔아 온 인디언 노인 '포타라모'에게서 그것을 발견한다. 어느날 시카고에서 날아 온 백인 여행객이 그에게 다가와 양파 가격을 물었다. 노인은 한 묶음에 10센트라고 답했고, 여행객은 세 묶음을 25센트에 팔라고 요구했으나 노인은 거절했다. 좌판에 있는 것을 한꺼번에 팔면 얼마냐는 질문에 그렇게는 팔 수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백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양파를 팔러 나온 것 아니냐고 물었다. 노인은 담담한 어조로 "나는 여기 양파만 팔려고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사려고 나와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북적대는 사람들, 붉은 모피, 햇빛, 흔들리는 종려나무.. 그런 것들을 담고있는 시장을 사랑한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시장통 아이들과 소란스레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날마다 느낀다고 했다. 이게 바로 자신의 삶이라고 했다.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양파를 팔고있는 거라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들을 몽땅 팔아치운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이 나지 않겠소"

인디언 노인은 우리에게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 혹은 팔 수는 있지만 팔아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있다. 노인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와 그것을 행하는 용기를 지녔다. 그리고 회유와 압박을 이겨낼 원칙을 따랐다. 팔 수 있지만 팔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원칙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석가탄신일을 지나면서 중국의 한 현자와 인디언 노인을 떠올리는 것은 '부처'도 중력(원칙)을 인정하고서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하늘과 땅 아래 나 홀로 존귀(尊貴)하다는 선언은, 보다 높은 목적과 원칙들에 자신을 맞추어도 거뜬히 지킬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인간정신을 천명한 것이 아닐까. 이 세상 사람들을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집착에서 벗어난 가장 기쁜 상태에 도달한 것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나아가 삼라만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기쁨은 공유된다는 원칙을 발견한 자 '부처'는, 그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달리 명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누구나 원칙을 지키면 고통을 딛고 기쁨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 불멸의 진리가 된 게 틀림 없다. '깨달음'에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지라도,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로서는 거기까지 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중은 리더의 자존감을 바란다

혼돈과 급류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가 삶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기초는 원칙이다. 따라서 원칙을 삶의 한가운데 받아들여서 실천하는 그 자체가 삶의 가치이기도 하다. 원칙은 실패하지 않는다. 원칙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믿음의 끈인 탓이다.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대통령, 도시를 위기에 몰아넣은 자치단체장, 부패한 관리들은 하나같이 원칙을 경시하는 특성을 지닌다. 스스로 불안한 역사를 쓰면서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다. 박쥐같은 원칙으로 무원칙을 가리고, 스스로 잃은 신뢰를 남탓으로 돌리는 리더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대중은 세상과 호흡하지 않고 자존감이 없는 리더를 원치 않는다. 어둠속에서 탐욕을 채우며 그 댓가를 타인(他人)에게 전가하는 자는 결국 원칙의 빛에 의해 사멸된다는 것을 각성하게 되는 오늘이다.

원칙은 차가운 머릿속에 있고 뜨거운 가슴속에도 있다. 나아가고 머무는 것을 원칙이 통제하거니와, 혹은 뛰어넘는 것 조차도 들끓는 고통과 함께 뒤엉켰다가 풀려나야 가능한, 그 원칙은 불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