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활력있는 도시는 가난한 사람이 꿈을 이루는 곳이다. 가난한 사람이 빠져나간 도시에는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새로운 산업을 발생시키지 못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어가지 못한다. 가장 역동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청장년층이 기피하는 도시는 혁신을 계속 할 수 없다. 소규모 기업들의 왕성한 활동, 숙련된 시민집단의 열정과 창의적인 에너지, 그런 건강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력이 섞여 부대껴야 도시가 성장한다.

인구감소를 막고자 하는 자치단체들이 재정을 선택적으로 투입해야 할 이유다. 산업이나 생활기반시설을 신설하지만 빈 공장과 빈 집이 늘어난다면 이 재원은 사장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도시의 재구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이중 삼중의 비용을 유발한다. 특히, 멀쩡한 도시기반시설을 주기적으로 걷어내고 새로 교체하는 타성이 더욱 큰 문제다. 이는 재원을 낭비하면서 고정적으로 잠식한다. 사람이 경쟁력인 줄 알면서도 사람을 끌어들일 예산은 세울 수 없는 구조적인 장애다.   

익산시의 한 해 자체수입은 1,393억원이고,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는 극빈자는 모두 9,270세대다. 불가능한 가정(假定)이지만, 이 자체예산을 이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 한다면 한 사람당 1,500만원씩이 돌아간다. 익산시 세대수가 10만가구를 약간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10%의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 돈이 시민들의 생활과는 무관한 곳에서 녹아 없어지고, 인위적인 도시건설이나 인프라에 흔적도 없이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예산의 가장 바람직한 용처는 '고용 유발'이다. 고용없는 성장 문제는 수도권에서보다 지방에서 더 심각하다. 인구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인구를 유인할 요인들은 고갈시키는 탓이다.

몇 안되는 대기업 계열 공장들의 관리직은 대부분 수도권이나 타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문화적 목표를 지역에서 달성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래를 담보할 교육환경의 부재를 가장 큰 결핍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지역내 산업구조가 첨단 고부가가치 장치산업으로 편향돼있다 보니 공장 증설 같은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더라도 투자비에 비해 고용 규모는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여기에 인구 유인을 위한 '농업과 수공업 같은 1차산업의 부흥이 필요하다'는 역설이 있다.

극심한 빈부 차이는 기회의 독점이 부른다. 익산시가 안고 있는 이농(離農)현상은 기계화 영농이 주도하는 규모화와 대농화에서 기인한다. 소규모 경작 농가는 수지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한 채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도시나 농촌이 안고 있는 사회양극화는 사람을 배제하려는 기업화에서 비롯한다. 사람을 우선시하고 1차 산업의 노동력을 우대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지점이다.

첨단 산업이 국부에 크게 기여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국부를 유출시키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을 한 번 뜯어보자. 우리나라는 그 생산기술과 수출 부문에서 표면적으로 세계 선두그룹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휴대폰의 핵심 원천기술은 대부분 외국의 연구 및 개발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 중앙처리장치를 비롯한 응용, 구성, 동영상과 음원 구현 및 인터넷 연결 소프트웨어, 카메라 장치, 프로그램 언어와 텍스트 입력 프로그램, 임시저장장치, 심지어 베터리까지 모두 외국산 부품이다. 여기에 막대한 로열티와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비용이 지불되고 있다.

휴대폰이 급속히 멀티미디어화 되고 기능이 첨단화되면서 관련 신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국내 기업들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수입경쟁에 나선 것이다. CDMA 카메라폰의 부품 60% 이상이 외국산이다. 여기에 초기시장 진입비용, 유지보수비, 단말기 대당 지불하는 러닝로열티(경상 기술료)까지 감안하면 휴대폰 업체는 천문학적인 비용부담을 안고 있다. 이 부담은 또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휴대폰 산업의 미래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설상가상으로, 외국 부품 의존율이 60%인 노트북 생산업체의 경우 조립라인을 해외로 대거 이전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외국 제품에 국내 기업의 상표만 부착하는 역조(逆潮)가 심화되고 있다.

진정한 교육자치 시급

몇몇 특화된 재벌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산업은 이제 재편돼야 한다. 덩치 큰 기업들이 해체돼서 날렵한 중소기업들로 분화(分化)되는 기업의 패러다임 이동이 절실한 지형이다. 또는 고도의 전문성을 표방하며, 국제시장의 미세한 변화에 공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자사의 생산품과 관련해 정확하게 미래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벤처기업들이 필요하다. 지자체는 빈 공장에 이런 기업들을 유치하거나 창업을 유도해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육성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들 기업이 지역의 두뇌와 노동력을 흡수하고 첨단 제품과 그 브랜드를 개발해 낸다면, 그 파급력은 세계시장의 일부를 장악할 수 있다.

특정 벤처기업의 성공은 또 다른 벤처기업을 낳고, 이들 기업은 도시 내부에서 다른 업종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산·학·연간 협력으로 지역 공동체와 성과를 공유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인력의 다양성과 고급화가 충족된 인력시장이 필요하다. 휴대폰과 같은 첨단 전자제품의 원천기술은 기초과학의 소산이다. 지자체가 지역내에서 기초과학을 주도할 고등학교나 대학에 과감한 선행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역에 기초과학은 과학 기술 발전의 심장이며 공공재다. 지자체가 산·학·연에 참여하는 기업, 교수, 연구원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보상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교육은 곧 도시의 미래다. 가난한 사람들도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다. 교육이 발달한 도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발명하며,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끈다. 단적으로 교육이 우수한 지역은 인구가 집중되고 집값도 상승한다.

진정한 교육자치는 그래서 필요하다. 자주적 재원을 주민의 의사에 따라서 집행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자치단체에 귀속해야 한다. 정책입안권과 모든 학사운영권을 지자체와 학교에 이관해야 한다. 학부 중심이 아닌 연구중심의 대학을 양성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