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낯선 선생과 학우들이 교실을 메웠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다. 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 이상이 되면, 칠판을 향해 앉아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눈동자를 고정 한 채 정숙하는 수업시간은 익숙하다. 학생들은 수업태도를 통제당하며 소위 전문가가 정교하게 고안하고 측정한 숫자의 문턱에서 측정당하고 각 단계를 넘는다.

우리사회 교육의 기저에 흐르는 서열주의는 그렇게 고착화 된다. 학교가 교육에 관한 선의(善意)를 독점하고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초.중.고교는 입시기관으로 자리를 굳힌지 오래되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 밖 가정생활을 포함하는 모든 활동이 교육수단이 되는 것을 단념하고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을 학교에 맡기고 만다.

교육제도와 학사(學事)행태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론화되지 못하고 터부시 되는 것은 그런 전적인 의존에서 기인한다. 학생에게 학교가 공포와 억압과 우울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사자의 문제일 뿐이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의 부모들은 먼저 근원적인 원인을 자신의 자녀에게서 찾으려는 관성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다수의 가해 학생들이 아닌 소수의 피해자가 관찰대상이 되고 결국 문제아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더구나 경험이 일천한 초임선생의 경우는 그런 오류에 더 폭넓게 노출되어있다. 소수의 문제로 치부했을 때 부담이 적고 봉쇄도 쉬운 탓이다.

더구나 학교는 문제학생들을 모아놓은 특정한 반이나, 다루기 어려운 학년에 갓 임용된 선생들을 투입해 문제를 방치하기도 한다. 그런 반을 맡은 선생들은 학교의 폐쇄성을 강화하고 억압을 수단으로 삼기 쉽다. 교직자 편의주의의 한 단면이다. 교육 현장이 입시기관화를 포기하지 않는한 학교는 피해 학생에게 문제를 풀어주는 주체가 되기 어렵다. 늘 문제적이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일 수 밖에 없다. 학교는 감시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감시되는 상태를 구축한 '파놉티콘'이 된다. 잘 길들여진 수용자는 스스로 피감시자가 된다.

실제, 학교의 파놉티콘화를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해석하는 관점들이 지배한다. 그 편의성 때문에 선생이 학생을 지배하기 위해서 세계와 현실을 고찰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파괴하고 세계를 신화화하는 일이 일상화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조작한다. 학생들에게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생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신화를 심어주는 방식이다.

이런 억압의 세계가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피억압자들의 문화를 모두 파괴해야만 한다. 피억압자들이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억압자의 관점을 취하게 만들어야 가능하다. 이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피억압자들이 내면에 억압자의 모습을 가지게되면 자신이 억압에서 벗어나 억압자가 되길 원한다. 학교는 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된 인간들을 배출한다.

최근,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은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저항의 단면으로 여겨진다. 주민 발의로 제정하려는 이 조례안에는 '학생을 존중하는 교육'을 비롯해 '폭력없는 교육' '소통하고 참여하는 교육' 차별 없는 교육' '개성과 사생활이 존중되는 교육' '자발성의 교육' 돌봄의 교육' '인권을 서로 존중하는 교육' 등이 담겨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며, 학생들과 함께 의식하고 행동하는 선생이 실재하는 학교를 요구하고 있다. 42년 전 프레이리(Freire, Paulo)가 1970년 '페다고지'(피억압자들의 교육학)를 통해 요구한 '해방의 교육'이 여전히 유효한 현장이다.

교육현장에서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선생이 지녔다는 착각이다. 그것은 학교가 진화한 파놉티콘적 '통제사회'라는 믿음에서 기인하며, 선생이 감시자로서 학생 개개인을 파악하고 판단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반한 오류다.

하지만 '통제사회'에 갇힌 학생은 정작 학교에서 자신의 전부를 보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한다.

감시의 시선을 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이 보는 학생은 억압에 길들여져 정형화된 개체일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생은 그릇된 정보를 적립하고 학생은 그저 그 정보만을 수거하는 수동의 위치에 머물러 있을 따름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이 한정된 자기실현에의 지향성을 탈피하도록 하기 위해 선생들은 학생에 대해 '전혀 모른다'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화와 합의가 주도하는 교육현장이 절실하다. 그것은 선생과 학생이 누릴 자유의 기제이며, 선생 자신 역시 피억압자의 신분에서 벗어날 단서다.

소수 위한 다수의 희생 '시장윤리'

한 때 우리사회도 억압자로서 피억압자임을 인식한 선생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인간화 교육을 위한 의식화'를 외치는 그들의 방식은 편향이며 위험하다며 그들을 교단에서 몰아냈었다. 선생은 학생들이 중립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도해야 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리처드 숄에 따르면, 교육에서 중립적인 것이란 없다. 교육은 젊은 세대를 기존 체계의 논리에 통합시키고 따르도록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유의 실천'으로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우리는 금세기 말에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숙명론, 즉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소수가 대부분의 이득을 취하는 시장 윤리에 대해 결단코 반대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경쟁할 수 없는 자는 죽는다는 윤리다. 그것은 잘못된 윤리며, 사실상 윤리가 부재한 윤리다. 나는 계속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장한다" 도나우두 마세두의 말이다.

그의 역설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학교, 선생과 학생들이 모두 공론의 장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