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지속가능한 기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다음세대로 전달 될 유리한 유전형질은 무엇인가'. 그 진화의 주요 작동기제가 되는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속절없이 '제로섬 게임'의 야성에 휘말린다. 가만히 있거나 느리면 도태되고, 빠른자가 쟁취하며, 선점한 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우리 스스로가 자가발전 한다. 그런 우리의 유전자 지도에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오늘을 떨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포식자의 특질이 뚜렷하다. 우리는 그런 진화 기제에 힘입어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야성에 적응한다. 하지만, 진화는 약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점점 더 강해지려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유약하며, 진화는 그것을 명증하는 역설이다. 우리는 그 때문에 가끔 자신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곤 한다.

도킨스가 설파 했듯이 우리의 유전자는 '생존기계'다. 이기적 유전자는 비정한 경쟁을 통한 자기복제를 위해 봉사하며, 이타적 협력마저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에 불과하다. 생존현장의 잔혹사를 단적으로 함축하는 주장이다.

야성에서 포식자인 표범과 먹잇감인 가젤은 한 쪽이 빨라지면 다른 쪽도 빨라져야 하는 생존 명령을 오롯이 수행한다. 그러나 서로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전혀 다르다. 표범에게는 실패해도 몇 번의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가젤에게는 다음이 없다. 표범에게 전달된 유리한 유전형질은 순간 최대 속력이 가젤에 비해 더 빠르다는 것이다. 반면, 가젤은 최대 속력으로 오래 달릴 수 있는 유리한 유전형질을 전달 받았다. 각자의 강점들이 축적, 진화 하는 대신 표범은 쉽게 지치는 약점을 지니게 되었고, 가젤은 몰래 가까이 접근한 표범의 이빨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약점을 지닌다.   

두 주체가 맞닥뜨려서 생사의 질주를 벌일 때도 선택의 폭은 늘 표범에게 넓게 부여 된다. 서로의 강점을 잘 알고 있는 표범은 자신의 한계 지점에서 깨끗하게 포기할 줄 알며 실패를 툴툴 털고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가젤은 오직 속도에 몰입하여 표범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나지만 오랫동안 계속 질주하며, 무리속에 되돌아간 뒤에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몇일 동안이나 불안에 떤다. 그래서 우리의 진화는 표범을 지향하며, 가젤을 배제한다. 먹이를 쫓되 표범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구력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표범과 가젤의 성향이 뒤범벅 되어있는 우리 내부를 부인하지 못한다. 우리는 가해 환경에 노출되면서, 간혹 표범이기 보다는 가젤이 되어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에 떨며 질주하는 자신을 만난다. 이렇게 일단 포식자가 아닌 먹잇감으로 떨어지면 누구든지 여지없이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우선 오감(五感)이 확장되어 온갖 불안의 요소들을 단숨에 흡수하며, 내부에서 극대화된 불안은 자율기능을 옥죈다. 이런 과민한 의식 상태는 생존과는 전혀 무관한 일상의 사소한 부딪힘들에 질겁하고 달아나게 하며, 부적응을 초래한다. 이런 자학의 자가발전은 막연한 불안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여 주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안은 불건강한 자의 몫이며, 야생의 가젤이라면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는 쪽이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건강한 우리의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하는 행동은 의외로 무모하다. 표범의 공격의지를 꺾는 '가젤의 스토팅'에서 발견되는 양태다. 건강한 가젤은 저만치서 다가오는 표범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뛰어오르고 다시 노려보고, 울부짖으며 뛰어오른다. 심지어는 엉덩이를 내보이며 뛰어오른다. 이런 위험한 가젤의 스토팅에는 표범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신호가 있다. "나는 튼튼하고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자신을 쫓아 와봐야 엄청만 에너지를 낭비할 뿐 헛수고에 그칠 것이라는 메시지다. 표범은 가젤의 이같은 목숨을 건 신호를 믿을 수 밖에 없다. 허약한 가젤이라면 감히 그렇게 무모한 짓을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표범은 포기하고 조용히 물러선다.

만약 반대로, 표범이 건방진 가젤의 행동을 응징하려고 만용을 부린다면, 표범은 두 가지 치명적인 악재를 만나 전력을 손실하게 될 것이다. 쫓다가 약이 올라 극도로 흥분하면 야성은 통제불능 상태에 떨어지고, 그렇게 무분별하게 날뛰면 에너지는 급격하게 소모된다. 또, 그런 집착의 관성은 고착화되고 파멸을 쫓다가 결국에는 굶어죽고 말 것이다. 표범이 이렇게 생존이 아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응징에만 매달렸다면, 이 종은 빠르게 도태되었을 것이다. 표범이 건강한 가젤을 쫓다가도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재빠르게 포기할 줄 아는 이유다.

이타적 희생의 생존법칙

지척에 다가선 표범을 빠르기로 따돌릴 수 있는 가젤은 무리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병약하거나 혹은 어리거나 노쇠한 가젤의 집단은 다수가 표범의 공격권 안에 들어있다. 생존경쟁의 장에서 과시는 본래 약자 집단의 것이다. 대다수의 가젤은 살아남기 위해 질주해야 하고, 늘 주변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표범은 생존을 위해 먹이와 자신에 대해 관대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의 힘으로 구할 먹이가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표범은 한꺼번에 두마리를 잡을 필요가 없다. 먹이와 포식자가 균형을 이루는 이유다. 약한 가젤은 당장 표범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더라도 그 가젤이 언젠가는 표범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가젤과 표범은 더 빠르게 진화하면서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피차의 효율적인 종족보존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가젤은 격렬하게 울부짖고 뛰어오르면서, 그것이 표범에게 쫓기며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훨씬 적은양의 에너지를 쓰지만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 이는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증명이다. 하지만, 가젤의 그런 값비싼 신호는 '이타적' 행위였다. 애초에는 맹수의 출현을 알리는 경고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그것은 생존의 법칙에 순응한 결과다. 표범으로 살거나 가젤이 되어 살거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단, 어떤 관점으로 일상을 꾸려 가든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버릴 수 없는 조건이다. 가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경우라도 양지로 나아가 한사코 무리에 섞이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키는데 자신을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