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시중(市中)은 '체제'와 '진보'를 명제로 과열되는 양상이다. 진원지는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낯설고 먼 중국과 북한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 나라의 '체제' 문제가 공론화 될 때 마다 내부에서 '진보' 논란에 휘말려 극심한 갈등을 겪곤 한다. 왜 그럴까. 꿈에도 그리는 통일 때문인가. 빗장을 걸어잠근 북한은 눈 앞에서 중국은 그 배후에서 한반도의 비극을 조장하기 때문인가. 체제를 지켜야만 하는 소수, 그들만의 일그러진 국익 앞에 치를 떠는 반작용인가. 지금 '체제' 문제에 관심이 깊은 우리 사회의 주류들은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목하, 친북 세력으로 낙인 찍힌 채 뭇매를 맞고 있는 민주노동당 케이스는 그 직답의 단적인 방증이다. 민노당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언급은, 통일에 득될 게 없다는 취지에서,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논평 했었다. 극우 세력들은 늘 그랬듯이 연일 막말 비난을 일삼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진보로 구분되는 언론들 마저, "통일의 직접적인 장애가 되는 북의 후계 문제를 비판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식의 논조로 민노당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동안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은 방북 등의 적극적인 남북 소통을 요구하거나 행동으로 보이면서 통일을 위한 간극 좁히기에 투신해 왔다. 그런 맥락에서 민노당이 이번에 취한 정제된 입장은 다소 이질감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종북주의 딱지를 초래할 정도인가는 냉철한 판단을 거쳐야 할 점이다.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판하는 주장이나, 비판을 자제하려는 통일관(統一觀)은 서로 방법론을 달리 할 뿐, 목적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통일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북의 권력이동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런 내정문제로 북을 자극하는 것은 통일에 악영향을 줄수 있다는 논평이, 친북이냐 반북이냐의 이분법적 잣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은 부당하다.

통일을 지상 목표로 삼을 때, 표출하는 것 보다 인내하는 전략이 신중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는 좌향좌 우향우가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개별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인정하며 보장하는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간혹 특정한 지향점 앞에서 일사불란한 틀로부터 벗어난 대상에 대해 우향우를 강요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때, 그런 작용은 어느 '체제'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성찰해 봐야 할 이유다.    

요즘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에 국한하지 않고 좌파와 우파 논쟁, 이념 분쟁 같은 대치가 심화되는 양태를 보인다. 고정관념에 따른 탄압과 억압, 타자의 생각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사회 불안을 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아 공멸에 이르지 않고 위태하나마 지탱되는 것은 우리 체제가 지닌 '관용'에 있지 않나 한다. 흔히 '체제'는 유지되려 하고 '진보'는 변화를 꾀하는 관성을 지니고 있으니, 융합은 불가능하다. 차이점을 인정하고 상생의 길을 찾아가야만 서로 발전 할 수 있다. 그걸 위해서는 관용의 잣대인 화이부동(和而不同)이 필요하다.

사이좋게 조화를 이루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며 부화뇌동 하지않는 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국을 끓일 때 싱거우면 소금을 넣고 짜면 물을 부어야 한다. 간을 맞출 때 물과 소금이 조화를 이루지만 물이 소금이 되거나 소금이 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용'은 다르되 함께 하면서 서로의 존재의미를 최상으로 끌어 올려 최고의 결과를 추출하는 동력이다.

화이부동의 연원지는 중국이다.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방을 택해 단기간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 오른 저력은 그런 화이부동의 전략으로 발휘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반체제 진보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의 신병처리 문제를 '관용'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그 단적인 방증이다. 류샤오보는 2년 전 일당독재 종식을 골자로 하는 '08 헌장' 발표를 주도하다 체포됐으며, 국가권력 전복 선동죄로 징역 11년을 선고 받고 수감중이다. 중국은 자국의 죄수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노벨위원회에 "노벨 위원회는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고 노벨평화상을 '반중(反中)이라는 목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후 중국은 갈수록 경직되면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내 언론은 무거운 침묵 속에 가라앉았으며, 인터넷에서는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관련한 어떤 소식도 정상적으로 전파되지 못하고 있다.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劉霞)를 가택연금시켰고,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고 있다. 중국이 좌향좌한 결과는 서방국가들에 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 인류보편적인 인간의 가치 앞에 중국은 체제 때문에 웅크리고 그 체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류샤오보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면서 인권 개선과 함께 위안화 평가 절상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어정쩡한 화이부동의 경제발전 가속페발에서 발을 떼어야하는 국면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보'를 인정하라는 변화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북에 대한 관점의 지평, '인권'으로 확대해야

중국이나 북한은 '체제'유지의 논거를 찾으려 할 때 여러 여건상 군색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가장 취약한 것은 인권 유린을 정당화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이나 경제적 도약을 잣대로 체제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와 중국 뿐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중국 체제 수정의 명제로 삼은 국면이다. 우리가 '통일'을 전제로 북의 문을 두드리되 근원적인 문제인 체제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관점의 지평을 '인권'으로 확대해 국제사회에 노출되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민노당이 통일의 관점에서 북의 3대 세습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고 논평한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확보 할 수 있지만, 독재 철권 세습이 인권 탄압의 또다른 시작이라는 관점에서는 침묵의 견해가 담겨있는 민노당의 논평은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인권의 문제는 상대가 개선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를 고려 할 대상이 아니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인권은 바로서야 한다. 오늘 소위 '진보' 진영은 북한이 인권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체제 수정에 나서도록 투신해야 하는 당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