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선(善)과 악(惡)의 구분은 우리가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하는 갈림길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선인가 악인가는 고전적인 질문이며, 여러 경우에 해당되는 해답들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로에서 선택한 선은 늘 완전한 선이기 어렵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가치 기준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도덕률은 수정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선악을 구분할 때 결국 보편타당성을 규구(規矩)로 삼게되는 이유다. 당장 선택한 선이, 지나치거나 모자라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이더라도, 그것이 항상성은 확보하지 못한다는 역설이다.

따라서 우리가 단행하는 선악의 구분이 현재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한 끝에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종종 재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공익과 관련하여 구분한 선악은 짧은 시간 내에 평가의 대상이 된다. 공동선(共同善)의 속성이 반드시 이해관계를 수반하는 탓에 그 지향점을 정하는 순간부터 모순을 지니고, 갈등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서 비롯한다. 최근, 여러 근거로 악취 유발의 진원지로 지목받는 특정 대기업과 자치단체, 시민들간의 역학관계에서는 그런 모순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익산시는 기업을 유치해서 잘사는 도시로 만드는 것을 당면 과제로 안고 있다. 그러나 구토와 두통을 견디지 못해 악취 없는 곳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시민들을 외면 할 수도 없다. 세수증대와 양호한 환경은 모두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익산시가 악취의 진원지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런 모순적 한계를 직면한다. 익산시의 한 담당공무원은 최근에 공단에서 가동중인 대기업 L사의 폐수처리 구간인 폭기조 뚜껑을 열어 냄새가 났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그 냄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직접적인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냄새가 시민들을 괴롭혀 온 악취의 성상과 같은지 다른지는 간단하게 밝혀낼 수 있다. 폭기조에서 나는 냄새를 포집기에 담고 폭기조 내의 폐수를 채집해서 전라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익산시는 그런 행정행위의 역기능과 순기능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칫 L사가 나쁜 기업환경을 운운하고 나설 경우 상공인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도외시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읽힌다. 기업을 새로 유치하기 보다 하나를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사안을 미봉(彌縫)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개 악은 탐욕에서 나온다. 탐욕은 ‘지나침’을 병증으로 드러낸다. 선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 범람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며,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는 허기를 견디지 못한다. 또,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이익을 닥치는대로 집어삼키며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탐욕을 방치하면 반사회적인,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 악의 실체를 신속하게 밝혀내서 조기에 박멸해야 만 되는 이유다.

특정 대기업은 두 해 전, 전문기관의 검사 결과에 따라 익산의 주요 악취 진원지로 밝혀진 바 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시민들의 삶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악취는 이 회사의 폐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했다. 회사 쪽에서는 원인물질을 소각하는 등의 처리시설을 보강하는 것으로 악취를 없앨 수 있다고 공언했었다. 이 회사가 환경공해 저감시설을 하지 않고 비용을 절감한 댓가를 익산시민들이 여러 해 동안 대신 치른 것이다. 게다가 한 동안 잠잠하던 악취는 올 여름 들어 전례없는 기승을 부렸다.

악취가 공기중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은 악몽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동안 악취를 망각하곤 한다. 만약, 해당 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휘발성 높은 물질과 부패한 폐수찌꺼기의 냄새를 방출하고, 그것의 불쾌감을 잊어버리는 적정한 시간동안 틈을 두는 과학적이며 교활한 수법의 범죄를 자행해 왔다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희생양이었다. 아무튼 올 여름 악취가 출현 할 때면 해당지역 시민들은 그대로 지옥에 떨어졌다. "현생에 어디가서 또 이런 악취를 맡겠는가"라는 질문이 활화산 처럼 분출했다. 냄새가 안 나는 이 도시 밖 그 어디든지 뛰쳐나가 피하고 싶었다. 시민들이 악취를 망각하고 자각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행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깊어져만 갔다.

공장장 정도는 지역 연고자를

매월 삼백명 이상씩 익산을 떠나는 사람들이 단지 악취를 피할 목적을 지녔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주 인구를 지키고 늘리는 일은 복합적인 노력없이 성과를 낼 수 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고용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쾌적한 정주환경을 지속시키는 것 역시 필수조건이다. 굳이 등가를 환산하라면, 상대다수는 정주환경을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수도권에 연고를 둔 대기업의 지역 생산공장, 그 관리부서 직원들은 향토의식이 희박할 수 밖에 없다. 공장장을 비롯하여 직책이 높을 수록 수도권이 거주지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윤의 극대화는 기업이 추구하는 불변의 가치다. 그러나 거기에 탐욕이 도사리고 있을 경우 기업은 언제든지 범죄 집단으로 전락 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위험성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자치단체가 기업에서 기인하는 환경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파괴를 막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 때 관련 기업을 단죄하는 것이 결단코 악이 될 수 없다. 기업이 그런 자치단체의 자기방어를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적대적 행위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메스가 필요한 또다른 사회병리다.

대기업은 최소한 지역 공장의 최고책임자 정도는 지역 연고자를 선택하는 정도의 도덕성은 갖춰야 되지 않을까. 정당한 투자와 합당한 공정의 가동을 통해 얻어지는 이윤은 결코 시민의 행복할 권리를 잠식하거나 시민의 피해를 담보하지 않는다. 이윤을 내기 위해서 직접생산 라인 밖에 있는 배출 부문의 비용을 어떻게 해서든 줄이는 것은 부패한 마인드에서 비롯한다. 망설임 없이 척결해야 할 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