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공정한 사회를 모토로 세대교체와 활력, 소통, 통합의 의미가 부여됐던 MB정부의 8.8개각이 실패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등이 지명된지 21일만에 한꺼번에 자진사퇴 했다. 부적절한 인사 검증시스템에서 기인한 결과다.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바탕 위에는 어떤 가치도 세울 수 없다는 반증이다. 강력한 친위체제 구축에 편향된 나머지 다양한 인재 풀을 배제하고, 특정 인맥 중에서 고르다 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도덕성 논란을 일으킨 근원이다. 공정성은 정의(正義)에서 비롯한다. 이번 인사파동은 그래서 낙마한 개인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에서 비켜 선 정권의 위험성과 그 정권이 지켜야 할 국민들의 문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正義)를 '사람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定義)했다. 정부가 내각을 개편 할 때 누가 어떤 직책을 과연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먼저 평가하도록 요구하는 지표다. 누군가가 장차 내각에 입성했을 때 주어진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할 것을 담보하는 선행 조건이다. 그 자격을 판단할 바로미터는 바로 도덕성이다. 그런데 MB정부는 개각 때 마다 한사코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을 보여왔다. 아무래도 ‘중도 실용주의’ 기조가 "도덕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왜곡된 인식의 틀을 구축한 탓인 듯 하다. MB정부가 추구해 온 '실질적인 쓸모'는 경제 논리에 치우친 정치적 지향점이다. 이 정부에서는 도덕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걸림 돌이 된다는 관점의 노출이다.

개각의 본질은 각 분야의 적임자를 찾는 일이다. 이 때의 '실용'은 적합한 판단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각이 각 분야의 정점(頂點)이고, 국가 최고의 정책을 심의하는 협의체인 국무회의 위원들이라는 점에서는 거기에만 머물 수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정책을 창출하고,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오랫 동안 훌륭한 정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내각에 입성하는 이에게 상벌을 앞세운 통제 수단의 지휘감독을 넘어서는 덕성이 있어야 한다. 조직 안팎이 그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고, 인정할 만한 자질이 요구되는 것이다.    

내각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임명 전에 국회의 의견을 듣도록 장치 한 것은 주어질 직분이 갖는 본질의 거름망을 통해 '최고'를 충족하되, 오류를 최소화 하자는데 있다. 다른 측면에서 인사권은 권력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장악의 주된 도구다. 기본조차 검증하지 못한 인사시스템으로 인사권자의 의지가 꺾이면 그 동력을 상실한다. 이렇게 되면 정권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고, 정국불안이 야기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내각 인사 발표가 번복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권의 위기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 청와대의 인사라인이 도덕성으로 재무장 해야만 하는 이유다.

주어질 직분의 실행능력과 비전을 제시해 갈 경륜을 평가하면서, 그것을 담고 있는 도량과, 인성이나 청렴성 등 그 바탕의 환경을 도외시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거듭된 MB정부의 내각 인사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21일간 우리를 불쾌감에 사로잡히게 했던 내각 인사청문회가 일단락됐는 데도, 그 체증은 풀리지 않은 진행형이다. 문제의 경찰청장 임명 강행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불안은 국가적인 손실을 낳는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 단시간내에 상처를 봉합해야 한다. 상처를 방치 한 채 2차 감염을 감당해야 할 만큼 MB정부에 경찰청장이 중요한 존재여야 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다.

국정 위기 감수할 실익은 뭔가

경찰청장 J는, 우리의 전 대통령이자 고인과 관련한 차명계좌 존재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현행법은 허위사실을 공표해 명예를 훼손 할 경우는 물론이고, 진실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타당한 이유 없이 공표해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공소권 밖에 있는 신성한 영역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경찰청장 후보의 발언은 법정으로 갈 수 없다. 유.무죄를 가려서 얻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故노무현은 우리들이 선택했던 전 대통령이다. 이는 고인의 유족문제가 아니라 그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부여한 국민의 문제다. 경찰청장 J의 발언은 특정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 해석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차지하고라도 경찰청장은 치안 총수로서 결정적인 결함을 노출했다.

그런 마인드를 지닌 자가 치안 최고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때 우리에게 닥쳐 올 불행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가 의심하지 않겠는가. 국정에 큰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다.

MB정부는 실패한 개각 시도를 재개해야 한다. 경찰청장 임명은 당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이 원하는 국무총리와 장관은, 추상적. 독립적인 자아를 지닌 이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연고적 자아를 지닌 이여야 한다. 편견과 독단을 '소신'으로 위장하고, 거짓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자가 도대체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MB정부는 이번 8.8개각 실패를 통해 두가지의 난관에 봉착했다. 우선, 여권의 분열을 불렀다. 자괴감이 결속력을 깨뜨렸고 일사불란한 일처리에 장애를 일으켰다. 임기말 MB 정부가 심각한 레임덕에 빠질 것이고,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또, 부도덕한 정권이라는 낙인이다. 이제 이 정권은 경찰청장을 내세워 사자(死者)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자에게 터럭만큼이라도 상처를 낼 수 있겠는가. 필경 정권을 위기로 몰아 넣을 경찰청장을 왜 끌어 안고 있는지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자문하게 될 것이다. 구멍난 내각을 채우는 것도 녹녹치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스로 부끄러운 지점에서 한 발 짝이나마 내딛을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회생이냐, 자멸이냐, 그 선택의 기로다.